휘어질지언정 부러지지 않는
날이 추워지면 채소가 귀해진다.
시어머니는 호박이나 가지를 말려두었다가
나물을 해주시기도 하지만
우리 집 어린이의 최애 채소인 오이 같은 건
구하기가 어렵다.
그래도 겨울이 깊어져야 더 맛있는 채소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섬초다.
섬초는 신안이나 비금도 같은 섬에서
나는 해풍 맞고 자란 시금치다.
비슷한 것으로 남해초나 포항초가 있지만
모두 먹어본 결과 가장 맛있는 것은 섬초다.
아이가 시금치 무침을 워낙에 좋아해서
추워지면 인터넷으로 섬초를 박스째 산다.
섬초는 해풍을 맞으며 자라기 때문에
다른 시금치에 비해 키도 작고 단단한데
꼭 그 모양이 냉이나 봄동처럼 잎이 사방으로
쫙쫙 뻗어있다.
작은 고추는 맵고, 작은 시금치는 맛있다.
주인공이 수많은 시련을 극복하고 끝끝내
성공하는 영화가 감동을 주듯
차가운 겨울의 눈과 바닷바람을 이겨내고 자라난
섬초의 맛은 일반 시금치보다 훨씬 달고 진한 맛이 난다.
(초록빛 섬초 위에 눈이 오면 얼마나 멋있을까!)
3인 가족이면서 섬초 한박스를 산다고 하면 사람들은
이걸 언제 다 먹나 하며 걱정하지만 걱정하지 마시라,
세상은 넓고 레시피는 많으니까.
아이가 좋아하는 나물로 무쳐 먹고,
된장국에 넣어 먹고,
시금치 카레도 빠지면 서운하지.
보통 시금치 카레는 시금치와 토마토로 만드는
인도식 카레지만 우리 집 레시피는 조금 다르다.
카레를 다 만든 다음 불을 약하게 하고
섬초를 듬성듬성 썰어서 넣어 버무려
숨을 죽여주면 끝.
맛있는 거에 맛있는 것을 더하는 맛이랄까.
(시금치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만들어 먹어보길 적극 추천한다)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는 나지만
가끔은 달달한 섬초가 먹고 싶어
겨울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이토록 모든 것에는 장단이 있고,
이유 없는 시련은 없다.
차가운 바닷바람과 눈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라는 섬초처럼
또 그렇게 나는 나의 하루를 견뎌야지.
그러다 어쩌면 나도 섬초처럼 단단하고
성숙하고 멋진 어른이 될지도?
(아니면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