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겨울의 전투식량
“자기는 꼭 본격적으로 추워지기 시작하면
소고기뭇국을 끓이는 것 같아.”
커다란 무를 썬다고 고군분투 중인
나를 보고 남편이 말한다.
그렇다. 일기예보에서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된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면
나는 소고기뭇국을 끓인다.
내 고향은 벚꽃도 빨리 피고,
5월이면 여름옷을 입는 도시다.
따뜻한 남쪽에서 삼십 년 넘게 살다가
북쪽으로 올라오니 정말 추워서 못 살겠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북쪽의 겨울을 버티려면 국을 끓여야 한다.
한겨울의 전투식량 그 첫 번째는
바로 경상도식 소고기뭇국이다.
군인들이 전투하기 전에 무기를 점검하듯
나는 겨울과의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
뜨거운 국을 준비한다.
제철을 맞아 달달한 겨울 무는 생채로
먹어도 맛있지만 무조림이나 국을 끓이면
달달하고 시원한 맛이 정말 일품이다.
기름을 두른 냄비에 파와 마늘을 넣고
기름을 낸 후 소고기를 넣고 달달 볶는다.
소고기의 핏기가 사라지면 고춧가루로
크게 세 스푼 넣어 달달 볶아 고추기름을 만들고,
숭덩숭덩 썰어둔 무를 넣고 함께 볶아 준다.
무가 어느 정도 투명해지면 무가 잠길 정도만
물을 부어 팔팔팔 끓여준다.
바글바글 끓어서 서걱거리던 무가 스르르륵 잘리면
물을 좀 더 추가하고 국간장과 참치액젓 등으로
간을 한다.
소고기뭇국은 집집마다 재료를 추가하는 양을
달리하여 자기집만의 스타일로 변경이 가능한데
우리 집 스타일은 대파를 크게 썰어 넣는 것이
특징이다.
푹 익어 물렁물렁해진 파는 제철 무만큼이나 달달하다.
매운맛이 부족하다면 청양고추도 두 개쯤 넣어준다.
벌겋게 끓어오르는 냄비를 내려다보며
거품을 걷어내면
한 겨울의 전투식량이 완성된다.
(채소를 끓일 때 올라오는 거품은 그냥 둬도 되지만
고기를 넣고 끓이는 국의 거품은 걷어주는 게
좋다고 한다.)
이열치열도 좋지만,
모름지기 뜨거운 것은 추울 때 먹어야 한다.
삼한사온은 옛말, 삼한사한인
북쪽의 미친 날씨에서도
소고기뭇국만 있다면 무섭지 않다.
겨울 아침, 밤새 공기가 차가워졌지만,
환기를 먼저 한다.
전날 저녁에 끓여둔 국을 데우면
얼큰한 냄새가 퍼지며
주방의 공기를 데운다.
알맞게 간이 밴 소고기와 큼직하게 삐쳐 썬 큰 무와
축 늘어진 대파, 맑고 빨간 국에 흰밥만 있으면
다른 반찬도 필요가 없다.
서울 토박이 남편은 처음 빨간 소고기뭇국을
끓인 나를 보고는 소고기뭇국이 왜 벌겋냐 하더니
결혼 10년 차가 되니 겨울엔
역시 빨간 소고기뭇국이라며 엄지를 추켜 세워준다.
동장군이 아무리 난리부르스를 춘다고 해도
나는 두렵지가 않다.
칼칼한 소고기뭇국 몇 번 더 먹다 보면
어느새 봄이 오겠지.
볼을 간지럽히는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올 때쯤엔
아마도 코끝이 시리게 추운 날 뜨끈한 국에
밥을 말아 먹던 이 계절이 그리워질지도 모르겠네.
그런 의미에서 밥 없이 국 한 그릇 더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