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만사새옹지마

두 번째 휠체어

by taesu

정말 인생만사 새옹지마라더니 출국을 열흘을 앞두고 네 번째 발가락을 다쳤다.

원인으로 말할 것 같으면 다칠 때가 되어 다쳤다. 내가 부주의한 것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나 아이를 데리고 외국까지 나왔으니 어지간히 긴장을 하고 살기도 했지. 몸도 적응되고 마음도 적응이 될 즈음 수면장애 때문에 먹는 약이 떨어졌다. 한국에서 가지고 온 약이 떨어지고, 전혀 수면을 할 수 없는 밤을 두 번 겪고 난 뒤 캠프에 온 엄마 중에 비상약으로 받아온 수면제를 받아먹은 것이 화근이었다.


잠결에 화장실에 갔다가 나오는 길에 비틀거리며 화장실 문 앞 단차가 있는 타일에 발을 부딪혔다.

잠이 확 달아날 만큼 아파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발을 감쌌다. 이전에도 몇 번 발가락을 다치곤 했는데

어쩐지 싸한 느낌이 들더란 말이지.


아직 동이 트기 전이라 어디 말할 곳도 없고, 일단 아이가 학원부터 가야 병원에 갈 수 있다.

일단 기다리자. 아픈 발을 부여잡고 근처 병원을 검색했다.

학원에서는 가까운 병원이 있다고 들었는데, 난 영어도 못하고 태국어도 못하는데, 어쩌지.

나 혼자 병원을 다녀올 수 있을까? 가까운 거리라 택시를 부르긴 좀 그런데 오토바이를 타고 갈까?

돌아올 때는 또 어쩌나, 오만가지 경우의 수를 계산하다 보니 아침이 왔다.


아, 아무리 생각해도 도움을 청하는 것이 맞다. 아, 신세 지는 건 딱 질색이지만 방법이 없다.

학원에서는 학생이 다치면 선생님이 오셔서 병원에 함께 가주시고, 여행자보험 관련 서류까지 살뜰하게 다 챙겨주신다. 아이와 함께 보호자의 여행자 보험가입 여부도 출국 전에 학원에서 확인했으니 도움을 주실 수 있지 않을까? 아이를 등교시키고 학원선생님께 메시지를 보냈다.

학원에서는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전화가 왔고,

한국어가 가능한 태국인 선생님께서 병원에 동행해 주셨다.


잠옷으로 입고 자던 세상 화려한 색의 코끼리바지를 입고 태국의 병원에 오게 될 줄 누가 알았겠냐고...

학원 선생님께서 차로 호텔까지 픽업을 와주셔서

편하게 병원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주차장 입구 정류장에 앉아있으면 골프카가 와서 병원 건물까지 환자들을 태워주었다.

차에서 내려 다리를 저는 나를 보자 골프카 기사님은 무전을 보내셨고, 건물 입구에 들어서자 앞에 계시던 직원 분은 마치 귀빈 대접하듯 휠체어를 펼쳐 앉기를 권하셨다.


아니, 발을 다치긴 했는데 이 정도는 아닌데...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온화한 눈빛으로 내가 앉기를 기다리는 직원분과 학원 선생님을 기다리게 할 수 없어서 민망함을 무릅쓰고 휠체어에 앉았다. 그렇게 나는 자연분만 후 처음으로

휠체어를 타게 되었다.


Thainakarin Hospital

걸을 수 없는 정도는 아니었으나 병원의 규모가 생각보다 꽤 커서 걸어 다녔다면 오히려 민폐가 되었겠다 싶었다. 겉만 보고 낡고 허름할 것 같다는 내 오만과 편견과는 달리 내부는 매우 깨끗했다.


(부정하고 싶지만 이럴 때마다 나라는 인간도 어쩔 수 없는 편견 덩어리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약간의 자기혐오의 감정이 느껴진다. 네가 뭘 안다고 함부로 판단하나-경각심을 갖고 살자.)

긴 가운을 입은 의사와 간호사 모자를 쓴 간호사.

어릴 때 병원놀이하면 쓰던 간호사 모자를 쓴 걸 보니 어쩐지 반가워 내적환호를 했다.

엑스레이를 찍고 진료를 보고, 수납까지 학원 선생님께서 다해주셔서 정말 수월하게 진료를 봤다.

(여행자보험에 필요한 서류까지 챙겨주심)

갓 스무 살이 아닐까 했던 그녀는 구수하게 저 8*생이예요.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진료를 끝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선생님 실례가 안 된다면(실례다, 이 아줌마야.)

혹시 나이를 여쭈어 봐도 되나요,

대학생 같으신데 운전도 잘하시고

영어랑 한국어도 하시고 너무 멋있어요. "


라고 했더니


"하하, 어머니 저 8*생입니다~"


하시며 웃으셨다.


아니 정말 아부가 아니라 너무 동안이기도 하고,

아줌마바이브라고는 전혀 없어서 몰랐다.




그 아줌마 바이브라는 것은 주로 출산 후에 나타나게 되는데 출산 후에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제멋대로 구는 어린 인간으로 인해 여기저기 민폐를 끼치는 삶에 자괴감을 가지게 되었다가

결국은 인생 내 맘대로 안 되는구나 하고 해탈하게 되고, 이후 타인의 실수에도 너그러워지며 용서하며

덕을 쌓아 나중에 나에게도 그런 너그러움이 돌아오길 바라는 삶이다. 그 특징으로 낯선 이와 스몰토크가 가능해지며 모르는 사람 후드 뒤집어주기, 꼬인 책가방 끈 풀어주기 등이 있다.

(*출처:어디에 나와있지 않다. 내가 지어낸 말이니까.)

평소에는 울산에서 지내고, 방학 때마다 아이와 함께 캠프에 와서 아이는 영어캠프를 그녀는 아이들을 인솔하고 케어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아이는 선생님이 한국어와 영어, 그리고 태국어까지 하는 아주 똑똑한 사람이라며 자기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며 부럽다고 했다. 선생님이 셔틀을 타기 전에 아이들 머리수를 셀 때 하는 태국어를 아이가 따라 하고 나도 배웠다.

"선생님, 오늘 정말 감사해요. 그리고 선생님 정말 멋있어요. 영어도 하시고, 한국어도 하시고,

그리고 선생님 덕분에 **이와 저 태국어로 숫자 셀 줄 알아요. 능쏭쌈씨하오쨉!"

(이런 주접이 바로 아줌마바이브이 가장 큰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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