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쟁이의 최후
할머니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볼까.
최무량심 보살.
사실 법명과는 다르게 할머니는 너그러운 할머니는 아니었다.
어디 나가서 자식들이 못한다는 소리 듣는 걸 가장 싫어하셨다.
자식들만 들들 볶는 것이 아니라 자기 관리도 뛰어나
80이 넘어도 루주(립스틱)를 발랐다.
90이 다 되어 요양원에 누워서도 하는 잔소리라고는
”미정이 니는 와 입술도 안 바르고 돌아댕기노,“ 였다.
(할머니와 달리 나는 미용 쪽엔 전혀 관심이 없다)
최 씨 아니랄까 봐 고집도 어마어마하게 셌다.
아빠가 지은 내 이름이 맘에 안 드신다고
평생 나를 자기가 지은 이름으로 불렀다.
나는 박 씨인 주제에 할머니를 닮아서인가
만만찮게 고집이 셌다.
두 고집쟁이 1차 전쟁은 왼손 전쟁.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할머니 손주 중 나만 왼손을 썼다.
지금은 왼손잡이에게 꽤 너그러운 편이지만
라떼는 말이야, 왼손을 쓰면 학교 선생님들이
병신이라고 부르던 시절이었다.
실제로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학기 첫날
내게 칠판에 이름을 써보라고 하셨고, 왼손으로 이름을 쓰자
반 아이들에게 나를 가리키며 얘는 왼손을 써서 병신이다.라고 하셨다.
그런 시절이었기에 학교에 가기 전에
왼손을 고쳐놓고 싶으셨던 것 같다.
할머니는 내 왼손을 묶어놓고 쓰지 못하도록 했다.
묶어두면 오른손으로 젓가락을 쓸 거라는 할머니의 기대와는 달리
나는 숟가락만으로 식사하거나 반찬을 먹지 않았다.
그리고 두들겨 맞으면서도 글자를 쓰지 않았다.
그리하여 1차 전쟁은 나의 승리로 끝났다.
2차 전쟁 발발은 호박 때문이었다.
어느 날은 할머니가 내 편식을 고치겠노라 맘을 먹으셨는지
곰탕을 끓이는 들 솥에 늙은 호박죽을 한가득 끓이셨다.
나는 단 것도 싫어하고, 호박 냄새도 싫어했다.
할머니는 이틀 동안 밥을 하지 않았고, 오로지 호박죽만을 내놓으셨다.
제 년이 배고프면 별 수 있나, 이거라도 먹겠지.
라는 할머니의 바람과는 달리 나는 이틀을 굶었다.
아무리 고집 센 할머니라도
10살이 되어도 20킬로가 안 나가는 나를
더 이상을 굶길 수가 없었는지
사흘째 되던 날 곰탕 솥을 패대기치시며
“아이고, 저 독해 빠진 년!”이라고 하시며 쌀을 씻었다.
결국 2차 전쟁도 나의 승리로 끝났다.
그 외에도 몇 번 편식을 고치시려는 시도는 있었으나
그때마다 며칠을 굶거나 안 먹어서 앓아누워버리는 바람에
할머니는 더 이상 어떤 시도도 하지 않으셨다.
호박에 대한 기억은 저것이 전부라 나는
늙은 호박, 애호박, 단호박에 이어 호박고구마도 좋아하지 않는다.
얼마 전 지인의 집에 방문했다가 간식거리로 구운 단호박이 나왔다.
예의상 하나라도 먹어야지, 그냥 삼킬 요량으로 하나 집어먹었는데
웬걸, 생각보다 맛있었다.
그냥 에어프라이어에 굽고, 꿀을 뿌린 것뿐인데
호박 특유의 냄새는 나지 않고 그냥 달달한 고구마 같은 맛이 났다.
돌아오는 길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돈 주고 단호박을 샀다.
어휴, 우리 할매는 크면 이렇게 다 먹게 될걸,
뭘 그렇게 몽둥이로 패면서 먹으라고 했는지 싶다가
넌 쪼끄만 게 주면 그냥 먹지 무슨 독이라도 먹이는 줄 알고
그렇게 버티고 안 먹어 할매 속을 태웠냐 한다.
정말이지 그 할매의 그 손녀가 아닐 수 없다.
(밉다. 밉다 했지만 할머니와 내 얼굴은
징그럽게도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