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이 야무진 아이
부꾸미는 부드러운 반죽 안에 고물을 넣어 반을 접어 만드는 음식으로
지역에 따라 재료나 만드는 방법이 조금 다르다.
보통은 반달 모양으로 소를 넣기도 하지만
우리 집은 소를 넣지 않고,
화전처럼 둥근 모양으로 부꾸미를 만들었다.
주로 찹쌀로 부꾸미를 만들어 먹었는데 익반죽한 찹쌀가루를
새알처럼 굴려 납작하게 누른 다음 호박씨와 잣,
그리고 예쁘게 오린 마른 대추 순서로
둥글게 띠를 만들어 장식한 뒤
기름을 살짝 두른 프라이팬에 구워 먹었다.
어린 시절 나는 손이 야무지단 칭찬이 좋아
부꾸미 굽는 일을 열심히 했다.
왜냐하면 명절이 되면 내 미미한 존재감을 조금이나마
드러낼 수 있었기때문이다.
아니, 사실, 활개를 치고 다녔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꼬치산적도 잘 끼고, 전 테두리도 고르게 잘 구웠고,
동그랑땡도 일정한 간격으로 잘 빚었고,
때로는 말린 문어를 끊어지지 않게 꽃 모양으로 잘 오리기도 했다.
부꾸미 역시 나만큼 잘 굽는 사람은 없었다.
불이 너무 세면 부꾸미 위의 고명을 장식하기 전에 타버리고,
너무 약하면 말라서 끝이 갈라진다.
기름을 너무 많이 넣어도 안 되고, 너무 적어도 안된다.
기름을 두르고 키친타올로 골고루 펴 바른 프라이팬에
일정한 크기로 둥글게 만든 부꾸미 반죽을 일정한 간격으로 펼쳐놓는다.
아래쪽이 너무 타지 않게 살피면서 빠르게 말린 대추와 호박씨,
잣을 일정한 간격으로 올려주고,
또 부꾸미를 적당한 타이밍에 뒤집어 익혀준다.
뒤집은 후에도 긴장을 놓칠 수는 없다.
너무 꾹 누르면 그을려서 색이 예쁘지 않고,
그렇다고 덜 누르면 속까지 익지 않는다.
지금 생각하면 그깟 차례 음식이 뭐라고,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그렇게 정성을 다했나 싶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아주 시원하게 태워 먹고
등짝이나 한 대 맞고 놀러나 나가라 해 주고 싶다.
그렇게 정성을 다해 빚었지만, 조상님들은 딱히
대단한 부귀영화도 복도 주시질 않았다.
아, 아니다. 어쩌면 어린 내가 열심히 제사음식을 차려낸 결과
차례도 제사도 지내지 않는 집으로 시집을 와서
방바닥에 붙어 몸만 뒤집는 명절을 보낼 수 있게 된 게 아닐까.
(진짜 그렇다면 우리 집 조상님들은 꽤 양심이 있으신 분들이시구먼)
시댁에서 차례를 지내지 않으니, 명절에 기름 냄새 맡을 일은 없지만
가끔은 작게 찍-소리를 내며 익는 부꾸미의 담백한 맛이 그립기도 하다.
다음 명절엔 부꾸미나 한번 구워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