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숙

사실은 사랑하는 마음.

by taesu

지금은 비록 과체중이라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어린 시절에는 뼈가 보일 정도로 늘 말라 있어서 자주 아팠다.

특히 기관지가 약해서 감기에 한 번 걸리면

한 달씩 기침을 해댔다.


편식이 심하면서 고집은 또 세서 잘 안 먹어

안 낫는 나를 두고 저년은 제 성질에 못 이겨

자꾸 아프다고 하면서도

기침에 안 좋은 음식을 피하게 하고,

목에 좋은 음식들을 해 먹이셨다.


그중에 특히 자주 해서 먹이던 것은 배숙이다.

배숙은 조선시대에 개발되었는데

배나 꿀 등이 그 당시 귀했기 때문에

주로 궁중에서만 만들어졌다고 한다.


배숙 중에서 크기가 작은 배의 껍질을 벗겨낸 후

통째로 사용하여 만든 것을 ‘향설고’라고 하는데

…..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이나

『조선요리제법朝鮮料理製法』에 배숙을 만드는 조리법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배의 껍질을 벗긴 후 통째로 또는 굵게 저며서

작은 배는 네 쪽으로 자르고, 큰 배는 여섯 쪽으로 잘라서 배의 바깥쪽에 통후추를 박은 후 배를 먼저 맹물에 익히고 설탕이나 꿀물을 넣거나 아예 꿀과 생강을 넣은 물에 끓이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외에도 잣을 같이 넣고 끓이기도 한다.

요즈음에도 배숙은 한정식 요리에 후식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출처: 한국민속대백과 사전>


수고로움의 결정체인 배숙은 안타깝게도 어린 나에게는 너무 맛이 없었다.

생강 향도 싫고, 대추 맛도 싫고, 꿀도 싫고 익은 배는 더 싫었다.

그렇게 밤새 기침을 해대면서도 먹기 싫다며

울며불며 겨우 배숙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그게 얼마나 수고로운 일인지,

또 아픈 아이가 좋은 것을 먹지 않는 것이

얼마나 애가 닳는 일인지 알게 되었다.

아이는 나를 닮아서인가 기관지가 약했고,

어린 나처럼 기침이 오래갔다.

나도 할머니처럼 배숙을 몇 번 해서

먹여보려 했으나 실패했고,

죽어도 입을 안 열던 아이를 통해

거울 치료를 당하게 되었다.


그래도 어쩌나, 나는 엄마인걸.

배숙 대신 배도라지 즙을 사서 먹인다.

과수원에서 배도 팔고, 배즙도 파는데

일 년 내내 배즙은 떨어지지 않게 한다.

날이 쌀쌀하고 감기가 들어온다 싶으면

중탕해서 먹였다.

나의 노력 덕분인지, 배즙의 효과인지 아이는

일 년에 겨우 한번 감기에 걸릴까 말까 하는

건강한 아이로 자라주었다.


꼭 너 같은 별난 가시나 낳아보라 하던

할머니의 저주를 떠올리며

나는 할머니에게 미안해진다.

꼭 나를 닮아서 편식이 심하고,

기침도 잦고, 겁이 많은 아이를 키우며

골고루 잘 먹고 건강한 것이

가장 큰 효도라는 걸 이제서야 새삼 깨닫는다.


비록 엄격하고 무서운 할머니였지만

그래도 별난 가시나를 위해서

배숙을 달이고, 죽을 끓이던 우리 할머니,

최후련 여사에게 늦었지만 죄송하고,

감사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할매, 보고 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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