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단 하나의 은유에서도 생겨날 수 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으며 문장 아래에 줄을 긋는다. 문장을 혀 위에 올려놓고 낯선 맛의 사탕을 먹듯이 천천히 굴려본다.
누군가와 오래오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오직 두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은유가 만들어진다. 자주 하는 말장난, 당연하다는 듯 이어지는 문답 같은 대화, 단어만 듣고도 추측할 수 있는 맥락. 사랑은 은유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렇다면 누군가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무언가를 볼 때마다 내가 떠오르게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요즘의 나는 어떤 사람일까. 어떤 비유와 은유에 나의 존재를 의탁할까.
누군가 나에게 “어디 살아요? “라고 물으면 ”전주에 살아요.”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그럼 전주 오기 전에는 어디 살았어요?”, ”원래는 어디 살았어요? “라는 질문까지 이어지면 잠시 침묵한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제 전주에 온 지 3년이 되어가는데, 그전에는 동두천에서 2년을 살았고, 서울에서 3년을 살았으며,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잠시 머물렀고, 수원에서도 2년 정도를 살았다.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 신장 우루무치 위구르 자치구에서 12년을,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디에서 살았다고 하면 좋을까. 어느 정도를 내 보이면 서운하지 않을 만큼 무겁게,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가볍게 다가갈 수 있을까.
순환하는 비처럼 살았다. 머무름과 떠남은 삶의 태도 어딘가에 자리 잡아 나를 가볍게 만들었다. 가볍고, 가볍고, 가벼워져서 어딘가에 오래 머무를 수 없도록 만들었다. 장소가 바뀔 때마다 형태와 모습이 바뀌었고, 그 모습을 오래 유지할 수가 없어 다시 떠났다. 사람을 대할 때도, 장소를 대할 때도 어느 정도는 꾸며진 모습으로 나갔다. 솔직하게 산다는 것이 어떤 건지 알 수 없었다. 비는 나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유목민처럼 떠돌며 살지만 투명하고 치열했다.
pluviophile이라는 단어가 있다고 한다. 의미는 ‘비를 좋아하는 사람’. 사전에 검색해 보니 예문과 함께 실려 있었다. The pluviophile finds peace of mind in the rain.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비를 맞으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언젠가 나를 소개하는 자리가 있다면 이 단어로 소개하고 싶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아한 얼굴을 한다. 옷과 양말을 젖게 하고, 무거운 우산을 들게 하고, 날씨도 기분도 흐리게 만든다는 것이 비에 대한 인상이니까. 나는 비의 은유만큼이나 비의 물성을 사랑해서, 비와 장마, 우산, 장화, 비와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사랑해버리곤 했다. 비의 물성에는 사람의 윤곽을 허물어뜨리는 묘한 마력이 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사람과 배경의 경계가 흐려지고 너와 나의 경계가 사라지며, 몸을 경직되게 만들던 긴장과 자아의 윤곽을 뚜렷하게 만들던 기준이 슬며시 녹아내린다. 락피쉬웨더웨어의 레인부츠를 샀다. 비가 오는 날이면 반바지에 레인부츠를 신고 밖으로 나간다. 우산은 들지 않는다. 오늘치의 낭만을 즐긴다.
비의 마음을 상상한다. 비는 은유가 되어 나에게 머무른다. 비와 나를 구분하지 않게 된 후로 사람들은 비에서 나를 찾아내곤 한다.
월아와 만났다. 오랜만에 만나 처음에는 서로 낯을 가렸지만 이야기를 하면서 점차 익숙해졌다. 저녁쯤에 소품샵에 갔는데, 유독 DIY를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키링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월아가 나에게 선물한 키링은 세 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rain or shine, a little sunshine, h. 월아가 말하길, h는 내 이름의 이니셜이자 happy의 첫 글자이기도 하다고 했다. 색감은 짙은 초록빛과 흰색.
마호한테 연락이 와서 동아리방에 오면 방명록인 소소록을 보라고 했다. 시험 보는 날 아침, 동아리방에 가서 봤더니, “사실 저는 비가 오는 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비를 좋아하는 언니 덕분에 저도 비 오는 날을 좋아하게 됐어요.”라고 적혀 있었다. 마호는 일본으로 돌아갔다. 한동안은 sns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시를 보내기도 하고, 안부를 묻기도 하며. 마호가 잠깐 한국에 들렀을 때 나에게 선물을 주고 갔다. 투명한 유리병에 담긴 연한 초록빛 잉크였다. 편지를 들고 침대에 앉아 찬찬히 읽었다.
“언니에게 주고 싶었던 것들도 있어서 가져왔어. 그중에서도 제일 주고 싶었던 게 만년필 잉크인데 그걸 찾았을 때 바로 언니가 생각났어. 잉크 이름이 ‘시또시또しとしと’라고 하는데 이 잉크가 봄의 온화한 공기 속에서 조용히 내리는 빗소리, 비 그친 후 꽃 위에서 빛나는 물방울과 촉촉하게 흐린 새잎을 이미지 했대. 나는 평소 일기 쓸 때 만년필로 쓰는데 그때의 기분과 맞는 색으로 쓰면 뭔가 기분이 좋아져. 그래서 언니도 나중에 마음에 드는 만년필이 있으면 그때 쓸 수 있는 잉크를 선물하고 싶었어. 앞으로도 언니의 일기장이 언니다운 색으로 물들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언니 인생도 그랬으면 좋겠어.”
내가 떠올랐다는 말을 들으면, 그리고 나로 인해 무언가를 좋아하게 됐다는 말을 들으면 먹먹해진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의 취향을 닮아가는 편이고, 누군가 내 취향을 닮아간다는 것은 나를 좋아해 주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 rain or shine이라고 적힌 월아의 키링은 가방 지퍼에 매달려 흔들리고, 마호가 선물해 준 봄비를 닮은 잉크는 늘 내 책상 위에 놓여 있다. 언젠가 “목소리가 빗소리 같아. “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조금 울었다.
비 오는 날이면 <러브미 이프 유 데어>를 본다. 세차게 내리는 빗속에서 흠뻑 젖은 서로를 애타게 끌어안을 때, 상처나 맨발 따위는 신경조차 쓰이지 않을 때, 두 사람의 관계를 이어온 것은 목숨을 건 내기나 사탕통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조용히 생각한다. 은유가 사랑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은유를 만들어낸다고. 비 오는 날의 은유가 나를 사랑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나의 은유를 기꺼이 끌어안아준 거라고.
비 오는 날에는 풀 내음과 흙 내음이 난다. 누군가가 전해준 말로, 이것은 ‘지오즈민’이라 불리는 화학물질에서 생성되는 냄새라고 했다. 비가 오고 박테리아가 내뿜는 지오즈민이 식물성 기름과 함께 공기 중으로 퍼지면서 산뜻한 풀 냄새와 함께 향긋한 흙냄새도 풍기게 된다고. 비 오는 새벽, 어스름한 푸른빛의 어둠 속에서 꼼지락거리는 발가락. 차분하고 투명한 기분으로 일어나 창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듣는다. 물에 젖어 색이 짙어진 옷처럼 짙어진 흙 내음을 상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