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태양과 바다를 만질 수 있을까. 관념 속의 은유로서 존재하는 것 말고, 실존하는 태양과 바다에 닿을 수 있을까. 세계는 늘 한 겹의 베일로 둘러싸인 듯 불투명했다. 흰 베일 속에 감춰진 세계는 그림자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데. 누가 그랬더라, 1+1을 증명하는 데에도 종이 한 장을 빼곡히 채워야 한다고. 그림자로서 존재하는 세계는 늘 이해하기 어려웠다. 흰 베일에 적힌 검은 윤곽. 나는 그 공백을 상상을 통해 채워나갔다.
내게 있어 세계는 늘 관념이었다. 모호한 정신 속에서 이해되는 의미의 세계. 존재하는 모든 것이 의미를 가지고 꿈틀거렸다. 낮에는 뜨거운 태양으로 인해 모래가 타오르고 밤에는 뼈가 시리도록 서늘한 사막은 양극단. 무거운 추를 매달고 깊이 가라앉는 심해는 우울. 한낮에 투명한 유리창을 통해 드리워진 빛은 그리움. 조금의 그늘도 용납하지 않는 여름과 긴 어둠이 지속되는 겨울, 변덕스러운 봄과 지독하게 아픈 가을. 식물은 나를 판단하지 않는 생명. 트램펄린은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비상과 순식간의 추락. 몸은 한계. 흔적은 생의 무게. 지하철 위에서 벌어지는 재판과 생각을 사냥하는 밤. 부풀린 소문으로 인해 반죽된 생각은 12시간 동안 저온 발효되고. 도마뱀의 탈피 껍질과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썩어가는 세계. 따개비와 예민한 정신. 수많은 목소리의 소음과 범람하는 영혼. 추상적인 사람이라 추상적인 것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베일 너머의 세계를 감각할 자신이 없었다.
눈앞이 흐리고 술에 취한 것처럼 비틀거린다. 꿈을 꾸는 듯 모든 소리가 멀리 들려온다. 나는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천천히 걷는다. 현실은 꿈, 꿈은 현실. 나는 꿈을 꾸고 은유의 세계에서 살아가며 현실에서 죽어갔다. 내가 영화 속 등장인물처럼 느껴지고 어떤 일이 벌어져도 현실감이 없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놀랍지 않았다. 이야기 속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으니까. 손끝에서 불꽃이 튀고 동물들과 대화를 하고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하늘을 날고. 무연한 비현실감. 언제부터 그래왔는지 모르겠다. 기억하는 한 나는 항상 그랬으니까. 몸의 바깥에서 나를 보며 몸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까. 뿌연 시야와 무거운 눈꺼풀을 끌어내린다. 가벼워지고, 가벼워지고, 더 가벼워져서 헬륨 풍선처럼 허공으로 붕 떠오르는 정신. 이대로 계속 작아지다가 사라진다면. 졸음이 쏟아진다.
꿈을 꾸면서도 간헐적으로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 사람, 공부, 대학, 취업, 돈, 돈, 돈. 재미없는 이야기만 넘쳐났다. 다섯 시 반에 일어나 시계를 보고 다시 늦잠을 자는 사람처럼 다시 잠들었다. 일어나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하면서. 내 잠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설령 잠에서 깬다 해도 잠을 자는 동안 흘러간 시간을 따라잡을 자신이 없었다. 깨어나면 뭐가 있는데? 산더미처럼 쌓인 일들. 눈처럼 불어난 문제들. 번아웃과 버거운 기준들. 사람들의 판단. 내가 아플 동안 망가진 관계들. 차라리 이미 익숙해진 비현실감 속에 남는 편이 나았다. 누군가 나의 우울을 목격하고 말했다. “넌 그런 너를 좋아하잖아.” 어떠한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그럼 무엇을 사랑해야 했을까. 관념과 은유가 나의 현실이었고, 현실의 나는 욕망도 의지도 없이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시체나 다름없는데. 무엇을 사랑할 수 있었을까. 다른 세계가 필요했다. 언젠가 나니아 연대기의 옷장처럼, 해리 포터의 편지처럼 나를 데리러 올 세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염없이 기다렸다. 가본 적 없는 장소를 그리워하며 관념으로 기울어진 관념과 실존의 경계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건 병이라는데. 차라리 병을 가지고 사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죽기를 바랐다. 아니, 처음부터 태어나지 않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미 태어났다는 사실은 되돌릴 수 없다. 수정할 수 없는 과거를 수정하려 애썼다. 정신이 무너졌고, 서서히 파편화되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사람처럼 수많은 엑스트라처럼 길을 걷는 연기를 했다. 밥을 먹는 연기를 했다. 웃고 우는 연기를 했다. 숨을 쉬는 연기를 했다. 내가 너무 많아져서 어떤 나를 데리고 외출할지 고르는 일이 어려워졌다. 그래서 나가지 않았다.
한 해가 지나고 두 해가 시작될 때까지 침대에만 있었다. 몸무게가 38kg까지 빠졌다. 집에만 있으니 좋았다. 두 세계를 동시에 살고 있으며 내가 더 강렬하게 느끼고 듣는 세계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느껴지지 않아서. 인물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자다 깨고, 먹고 굶기를 반복했다. 괜찮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면서 영혼의 허기를 채웠다. 뭔가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다. 살고 싶어서, 죽고 싶어서 글을 썼다.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죽을 용기가 생겼다. 죽을 용기가 생겨서 조금만 더 살아보기로 했다. 언제든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조금만 더 머무르자, 고통 속에. 삶 속에.
밀린 연락을 확인했다. 숫자가 박힌 빨간색 동그라미 몇 개. 많지는 않지만 꾸준했다. 나를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 오랜만에 바깥으로 나갔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라 환한 곳에 나오니 송곳으로 찌르듯 아팠다. 빛. 한낮의 빛. 나를 본 사람들은 잠시 침묵했다. 한동안 말을 고르다 “살 많이 빠졌네? “라고 했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더 할 말을 찾지 못했을 테니까. 그래서 그냥 웃었다. 그게 최선의 말이라는 걸 알아서.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모임에 갔다가 관계에 오타가 나기도 하고, 사람 대하는 법을 잊어버려 고장이 나기도 했다. 삶에 재능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사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모든 게 어려웠다. 정신에 침투한 독은 전염성이 있어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아프게 만든다. 그게 제일 힘들었다. 다시 안락하고 조그만 나의 방, 꿈과 은유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비현실감 속에 내내 지낼 때에는 소중한 사람들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고통이 너무 커서 하루빨리 삶을 끝내고 싶을 뿐이었다. 그런데 방 바깥으로 나오면서 알아버렸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내 아픔으로 인해 망가지는 관계도 있지만 끝까지 나를 놓지 않고 붙들어주는 관계도 있다는 걸. 그래서 돌아갈 수 없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인생에 색과 멜로디를 부여하는 경험은 고요함 속에 일어난다. 소리 없는 우아함. “이라는 문장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마찬가지였다. 나는 고요하게 조금씩, 서서히 변해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걸음마를 연습하듯 사람을 만났다. 여전히 세상은 시끄럽고, 빠르고, 고통스럽지만 사는 대로 살아졌다. 그런대로 현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알게 되었고, 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버스 안에서 메모를 한다.
형편없이 낡고
지치고
비현실감
반응속도 느림
감각의 즐거움
한편으로는 편한
구체적인 비유 은유
를 통해서만 이해되는
천성이 여유로운 사람
마음에 쉼이 없는 나날
오랜만의 휴식
슬픔을 느끼는
코끝을 간지럽히는 재채기
나올 듯 말 듯 약 올리는
글처럼
필연보다는
우연을 믿기로 했다
준비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웃는 사람
이상해 보여서
불쑥 들어온 얼굴
사람에 대한 관심
베일은 여전히
그래도 괜찮다
그렇게 산다. 삶의 이유를 묻지 않는다. 은유의 세계로 기울어져 있던 추를 꿈과 현실의 경계에 올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