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고기육전
하나하나 떼어내기의 수렁에 빠지다
남편의 생일이다. 마흔 살 넘은 것 실화냐. 내 눈에는 아직 처음 만난 스물여덟 살 같은데. 미역국만 해줘도 고맙다던 남편에게 이제는 일이 잘 풀렸으면 하는 마음에 이것저것 준비해봤다. 그중 오늘 내가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요리는 돼지고기 육전 되겠다.
돼지고기는 종종 김치부침개에 넣어먹곤 했는데 왜 육전이었느냐면! 내가 우연히 본 티브이 프로그램 때문이다. 너무너무 쉽다는 거다. 얇은 고기를 부침가루 찹찹 묻히고 계란물 입히고 부쳐내면 끝. 얼마나 간단해. 그리고 갈비보다는 덜 달고 더 쉬울 것 같아서 시작해봤다. 육전. 물론 소고기로 하면 훨씬 쉽고 맛도 좋겠지만 소고기는 미역국에 아낌없이 넣었으므로 돼지로 결정한다.
얇게 썬 불고기거리를 준비했다. 이미 여기부터 에러가 났음을 직감해야 했다. 불고기거리는 얇아. 다닥다닥 들러붙어있지 ㅜ 그걸 하나하나 떼어서 소금과 후추로 밑간을 한다. 그렇게 하루 재우고 아침에 꼬마와 부침가루를 입혔다. 역시 하나하나 떼는 것이 가장 어려운 점.
이거를 큰 쟁반에 쫙 늘어놨어야 하는데. 여기서 요리 초보임이 들통나고 만다. 고기는 또 순식간에 눌어붙고 나는 또 하나하나 떼어서 계란물을 입힌다.
계란에도 슬픈 전설이 있다. 큰맘 먹고 열다섯 개들이 계란을 사서 차에 실었는데 과속방지턱 한번 과하게 넘었더니 아홉 개가 깨져버렸다. 그 아홉 개를 정성스레 건져서 만든 눈물의 계란물이다. 대파도 송송 썰어서 감칠맛도 함께 준비한다.
여러 개를 넣으면 또 눌어붙을까 봐 장인정신으로 한 겹 한 겹 넣고 바로 프라이팬에 부친다.
그냥 보기엔 전일 뿐이지만 한 겹 한 겹의 수렁에서 간신히 건져 올린 사연 많은 고기들이다.
약 한 시간 동안 기름 냄새를 맡아가며 돼지고기 삼백 그람. 한 육칠 십 조각은 부쳤다. 하얗게 불태우고 상을 세팅해봤다.
소식하는 남편을 위한 밥상. 특별히 좋은 일이 많을 것 같은 올해이기에 좋은 생각을 하며 만들었다. 한 겹 한 겹의 수렁 속에서도 긍정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결론이다. 돼지고기 불고기거리로 하는 육전은 정말 쉽지 않고 손이 많이 간다. 과정은 초간단이 맞지만 반드시 넓은 쟁반을 준비해서 고기를 늘어놓아야 한 겹씩 떼는 대참사를 막을 수 있음. 약간 도톰한 소고기가 만들기는 편할것 같다. 돼지는 바싹 익혀야해서 어느정도 얇은게 먹기는 좋다.
이렇게 주절주절 썼지만 너무 맛있어서 내가 가장 많이 먹었다고 한다. 남편. 올해는 더 좋은 일만 있을 거야. 좋은 일을 적극적으로 맞이할 준비를 하는 한 해 되자. 파이팅!
Fin.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파가 왔다. 마흔여덟 평에나 어울릴 것 같은 사이즈라고 생각할 정도로 무척 컸는데 눕고 뒹굴거리고 책 보고 물건 올려놓아보니 아우 아주 좋다. 세상 행복하네. 남편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