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상담

딸이 이래서 든든하구나

by 베로니카


아침부터 일어나 카레를 만들고 사람이 없는 오전 시간에 호수공원을 귀가. 집에 와서는 잠시 쉬었다가 저녁을 먹었다. 나는 이미 방전된 상태였다. 우리의 강철체력 꼬마는 계속 이것저것 가져와서 나와 놀고 싶어 했다.


소파에 앉아있는 두 여인의 동상이몽. 나는 책을 봐야 한다고 핑계를 대며 놀아주는 것을 미루었다. 그걸 알아챈 꼬마는 엄마는 나랑 놀아주기 싫은 거구나 하며 방으로 들어가 혼자 책 보고 그림을 그렸다. 무안해진 나는 탕수육을 배달시키며 화해를 시도했고 꼬마는 탕수육 말고 나의 짬뽕면을 일부 가져가 매워하며 먹는 것으로 극적인 화해를 했다.


저녁을 다 먹고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기로 했다. 꼬마가 자전거를 갖고 동행. 쓰레기를 버리고 집 앞에서 자전거를 타는 꼬마에게 말했다.

나: 엄마 고민상담 좀 해줄래?
꼬마: 좋아
나: 엄마가 화가 나고 짜증이 자주 나는데 어떡하지?
꼬마: 내가 싫어서 그런 거야?
나: 절대 아니야. 엄마가 지혜가 부족할 때면 짜증이 나는 것 같아.
꼬마: 음. 나에게 좋은 방법이 있어. 엄마가 화가 날 것 같으면 숨을 크게 세 번 쉬어. 그러면 화가 안 날 거야. 그리고 잔소리를 할 것 같으면 숨을 네 번 쉬어. 어때? 숨 쉬는 건 유치원에서 가르쳐 준 거야.
나: 오, 좋은데? 한번 해볼게.

내가 화난 아이들에게 호흡하고 물 마시고 오라고 하는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역시 호흡이 최고의 치료법이군. 그리고 든든했다. 이렇게 나도 내 고민을 내 딸에게 말해보는 날이 올 줄이야. 막힘없이 고민을 해결해주는 딸의 매력에 오늘도 치인다 치여.

나: 꼬마야 효과가 있어!
꼬마: 그렇지? 내 말이 맞지?
나: 역시 꼬마는 엄마의 상담사구나.
꼬마: 상담이 뭐야?

나: 엄마가 꼬마에게 고민이 있으면 꼬마가 엄마한테 이렇게 말해주는 거.

꼬마: 그렇구나. 아! 엄마가 지혜가 필요할 때에는 하느님한테 기도를 해. 예쁜 목소리로. 하느님. 지혜를 주세요 아멘. 이렇게.

그리고 여섯 살 꼬마 상담사는 덧붙였다.

엄마. 그런데 지혜가 뭐야?

fin.


나의 전담 상담사가 내가 숨겨둔 가죽 카드지갑 만들기 키트를 발견해 바느질을 하는 장면이다. 절반 이상은 스스로 바느질했다. 꼬마의 이모가 이 완성품을 오만 원에 사가기로 했다는 훈훈한 마무리. ㅎ


내가 8살때 이런모습이었을거라고 주장하는 꼬마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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