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초밥

2008년 12월 24일, 유부초밥에 대한 어떤 흑역사

by 베로니카

나는 구남친(현남편)을 무척 좋아한다. 지금도 좋아하지만 사실 나는 저돌적으로 이 남자를 쟁취했다. 2008년 7월 1일, 내가 손을 잡고 이제 사귀는 겁니다! 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구남친(현남친)을 바라만 봐도 꿀이 떨어지는 상태. 사람이 사람 좋아하는 데 이유가 있나? 그냥 멋있느니까 좋아하는 거지. 하지만 그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차고 넘쳐서.. 차고 넘치는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고 했던가.. 하여간 나는 많은 진상을 부렸음을 고백한다.


다행히 구남친(현남편)은 나를 발로 뻥 차지 않았다. 그런 나를 딱하게 바라봐주며, 인간이 베풀 수 있는 최대한의 측은지심을 베풀었다. 나는 구남친(현남편)이 멋있는 척 하는 줄 알았다. 이렇게 쏘스윗한 남자를 주변에서 본 적이 없어서다. 그런데 그게 천성이었다. 결혼하고도 변함이 없는거다. 큰소리로 이성을 잃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쪽은 내가 더 자주.. 하여간, 늘 멋있는 구남친(현남편)은 그때 일에 찌들어 있었고, 나도 바빴지만 남편보다는 아니었다. 상황의 불균형이 있긴 했지만 아무튼 좋았다.


2008년 12월, 생애 첫 구남친(현남편)과의 크리스마스, 정말 역사적이지 않은가? 음악이라는 공통점으로 만난 나와 구남친(현남편)은 "김장훈" 콘서트를 가기로 했다(아직도 이 분과 술을 한잔 같이 마시는게 우리 부부의 숙원사업이다). 하늘을 날아다니고, 폭죽이 무제한으로 쏟아지는 그 전설의 콘서트. 구남친(현남편)이 구 여친과 간 2005년의 김장훈 씨 콘서트를 다섯 달 남짓 만나는 동안 백번도 넘게 얘기했다. 그래서 나는 그곳을 꼭 가보고 싶었다. 솔직히, 남편이 구여친과의 추억을 삭제하고 나와의 추억을 간직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 아 쓰다 보니 내 이십대 자체가 중2병이로구나.


아무튼! 새내기 연애(戀愛)인은 퇴근하자마자 마트에 들러서 유부초밥 재료, 소고기, 단무지, 음료수 등을 산다. 그리고 1회용으로 된 도시락 용기도 머리털 나고 처음 사본다. 유부초밥은 어지간하면 호불호가 없지 않나? 라고 생각했다. 김밥을 생각 안한건 아니다. 그러나 김밥은 싸 본 적이 없었다. 소고기를 넣은 유부초밥면 대부분은 좋아하겠다고 합리화한거다. 소고기를 볶아서 밥에 넣고, 이래저래 뚝딱뚝딱 완성한 유부초밥을 예쁘게 도시락통에 넣었다. 울 부모님이 이 글을 읽는다면 "딸년이라고 키워놨더니 도시락 한 통도 안주더니"라고 속상해할지도 모를 일. 아직 이야기가 안 끝났으니 속상해마시라.


구남친(현남편) 역시 일을 후다닥 마치고 퇴근했다. 내가 구남친(현남편) 회사 앞으로 쪼로로 갔고, 우리는 택시를 기다렸다. 손에 든 도시락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구남친(현남편)에게 나는 맑게, 밝게, 자신 있게 말했다. 무려 소고기를 넣은 유부초밥이라고. 나는 구남친(현남편)이 감동받으면 어쩌나 잠시 고민했다. 그런데. 구남친(현남편)은 적잖이 당황하며 말했다.


구 남친(현 남편): 나무야 나 유부초밥 안먹..."

구 아가씨(현 아줌마): ??

구 남친(현 남편): 나 안 먹는 음식 없는 거, 너도 알지? 그런데 내가 유부초밥만 못 먹어.. 정말 미안해..

구 아가씨(현 아줌마): 그럼 이거 어떡해? 이거 안 먹는다고?


나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어제부터 피땀 흘려 준비해 짭짤하게 간이 밴 유부초밥인데. 이걸 안 먹는다고? 아니, 맛이 없어도 정말 먹는 척이라도 해 줘야 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뻥이었다는 말을 기대했는데,,


구남친(현남편)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민망해진 나는 택시를 잡아 탔다. 택시 안에는 그 유부초밥을 거절당한, 거친 성격의 20대 여성과, 정말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못하는 구남친(현남편)의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택시기사님이 이상한 공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생각해내야 했다. 이 유부초밥이, 크리스마스이브에 쓰임을 받을 방법을. 그리고 택시는 정처 없이 천안역으로 향했다. 그리고 서부광장에 와서 요금을 내고 내리려는 순간,


"아저씨, 이거 드세요."


나는 유부초밥 도시락(feat핑크빛 포장)을 내밀었다. 기사님은 현금 대신 받아 든 도시락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했다.


"이게 뭐유?"

"도시락을 쌌어요. 이벤트로 하나 더 쌌어요."


그 순간, 나는 아저씨도 이 도시락을 거절하면 어떡하나 정말 걱정했다. 누구에게라도 가서 쓰임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그 당시에 종교 없던 내가 하느님께 간절히 빌었다. 그 순간,


"어유~ 크리스마스 선물이여? 잘먹을게유!"


아저씨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내 손바닥 위에 올려진 도시락을 확 낚아챘다. 그리고 내가 내민 이천 팔백 원을 쿨하게 돌려주셨다. 몇만 원어치 선물을 받았는데 택시비를 받을 수는 없다며. 순간, 나는 진짜 조금 울었다. 정말 다행이어서. 나는 기분 좋게 택시에서 내렸고, 천안역에서 용산까지 새마을호를 타고 서울로 고고씽했다. 그리고 용산에서 어떤 경로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아무튼 올림픽 구장으로 가서 1년 치 뜀박질을 미친 듯이 했다. 그 공연이 아직도 나에게는 최고다. 구남친(현남편)은 2005년 공연이 최고였다고 아직도 말한다. 이렇게 비교당할거, 괜히 갔나 싶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구남친(현남편), 구여친과의 추억도 소중하지. 암. 나이 들으니 모든 추억이 소중하다.


구남친(현남편)에게 서운했던 마음도 녹아내렸느냐면 그건 아니다. 어째 이렇게 사람이 매몰차냐,라고 생각했다. 콘서트 보기 전에 쫌 냉랭하다가, 콘서트 볼 때 같이 뛰다가, 콘서트 끝나고 또 서운함이 몰려와서 데면데면했던 그런 날이었다. 물론, 구남친(현남편)이 유부초밥을 안먹는 눈물없이 들을 수 없는 이유가 있기는 있지만 이해한다고 해도 섭섭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 이후로 나는 유부초밥을 절대 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이 구남친(현남편)의 한때의 고집이라 생각했었다.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결혼해보니.. 정말 아닌건 아니라고 더 매몰차게 말하는 사람. 맞는 건 맞다고 끝까지 주장하는 사람. 아, 구남친(현남편) 증말(이하생략).


이 글은 내 위주다. 내가 쓰는 글이니까. 내가 수많은 진상을 부린 흔적이 있지만 구남친(현남편)이 그것을 폭로하지 않아 참으로 고맙다. 어쩌다 가정회식(멤버: 나, 구남친이라 불리는 현남편, 또미)을 할 때 구남친(현남편)이 "나무야, 역사 공부 좀 해볼까?" 하면 나는 그것을 유부초밥만큼이나 싫어하며 진저리 친다. 그러나 구남친(현남편)은 내가 울고불든말든 내 흑역사를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다 읊고 나서야 개운하게 맥주 한잔을 마신다.


물론! 나는 구남친(현남편)을 더 좋아한다. 단, 지금과 그때는 다르다. 나는 유부초밥을 절대 하지 않는다는 점. 먹고 싶으면 마트에서 연어나 불고기가 올라간 삼천 원짜리 유부초밥을 산다. 나와 꼬마만 먹는 거지. 그리고 구남친(현남편)을 요리로 기쁘게 해주고 싶은 날에는 카레를 한다. 구남친(현남편)이 좋아하는 것을 해주는 것도 좋지만, 싫어하는 것을 안 해주려고 노력하는 점. 연애든 결혼이든, 사랑하는 이와의 소통은 결말이 어떻든 나를 성장하게 해 준다.


남편에게 늘 고맙다. 그러니까 내 흑역사 좀 그만 잊고 살아줘. 부탁이야. 내 흑역사도 유부초밥 급 어마무시한 사건의 연속이라, 타협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fin.


또미(우리 딸이 직접 지은 이야기책의 주인공 ㅋ 이제 나는 우리 꼬마를 또미라고 부를 참이다)가 나에게 선물해준 명품가방 ㅋ 또미로 인해 유부초밥 같은 작은 흑역사를 기억에서 지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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