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

모두에게는 화양연화가 있지.

by 베로니카


일단, 화양연화를 생각하게 한 영상을 하나 공유한다. 나의 사랑 너의 사랑 한사랑 산악회.

https://www.youtube.com/watch?v=LJ03MB7XPFc



이제 내 이야기를 시작한다.


집에는 10년 묵은 노란색 스윙 일렉기타가 있다. 우리 또미보다도 나이가 많지. 또미 크는 거 지켜보면서 "허허, 내가 너보다 먼저 이 집에 들어왔단다." 하고 텃세를 부리고 있을 듯. 그래서 또미가 일렉기타를 쳐보겠다고 하면서 스탠드에서 넘어뜨리나??(ㅋㅋ)


일렉기타 시리즈 1탄

https://brunch.co.kr/@rainyhojin/175


일렉기타 시리즈 2탄

https://brunch.co.kr/@rainyhojin/176


암튼, 가끔 옛 노래를 들으면서 코드만 따라 쳐도 마음이 괜찮아지는 걸 보면

아무래도 흑역사뿐인 젊은 시절이지만, 그래서 연습해서 공연했던 곡의 원곡을 다시 소환한다.



1. Siam Shade-Prayer


https://www.youtube.com/watch?v=dVePa8vHKQY


스물두 살의 나는 미친 속주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걸 입증할 공연 영상이 하나도 없네. 아무튼 정말 나는 저 라이브와 거의 비슷하게 속주할 수 있었다. 베이스 치던 친구(주온)와 합이 맞아서 미친 듯이 연습했다. 이 노래로 인해 보컬(만신)은 목이 터져나갔고, 드럼(계룡)은 이 노래를 처음에는 3초 듣고 싫다고 했다가 다시 3초 듣고 좋다고 했다. 다시 이 솔로를 치고 싶다. 막힌 속을 확 뚫어주는 곡이다.



2. Neil zaza-I'm alright


https://www.youtube.com/watch?v=QadSVWXF_ks


스물한 살 때, 기타 치기 시작한 지 1년 만에 이 곡을 완성해서(대충 비슷하게) 정기공연에 올렸었다. 그리고 2021년이 되면서 이 곡을 다시 연습하고 싶어 져서 조금씩 다시 연습하고 있다. 다시 치면서 내가 이걸 어떻게 연주한 건가 새삼 나의 젊음에 셀프 감탄했다.


그런데!! 도대체 이 아저씨들은 왜 안 늙음? 왜 나만 늙음? 왜 손가락에 힘이 넘침?? 영상을 보니, 나이는 나이일 뿐이다. 연습하지 않는 자만 늙는다. 다시 연습해야겠다. 스케일도 널찍하게 바꿔서 있어 보이게 쳐야지.




3. Shades Apart - stranger by the day



https://www.youtube.com/watch?v=VpkTg5RlSys


이거는 우리 기수 전용 노래는 아니지만 종종 생각난다. 나는 보통 내일을 향해 간다, 라는 생각으로 하루를 살지만 가끔 우울함이 몰려올 때는 오늘에서 멀어지는구나,라고 생각한다. 그때 이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난다. 그리고 솔로가 크게 어렵지 않아 얼마 전 이 노래를 따라 치면서 오, 나는 죽지 않았어.라고 자화자찬했다.



4. 마야-소녀시대


https://www.youtube.com/watch?v=UJ_Zlcy0cKA


이것은, 꼭 다시 합주하고 싶은 곡이다. 우리 넷이 합이 엄청 잘 맞았던 것 같은 그 노래. 보컬에게 정말 딱이었고 외부 공연을 가도 이 노래면 다 올킬했뜸. 진짜 좋았다. 기타 솔로도 라이브 느낌이 강해서 아무렇게나 휘뚜루마뚜루 쳤던 적도 있다.ㅋㅋ 그래도 멋있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인근 고등학생 과외도 한 달 했나.




5. Siam Shade-Triptych


https://www.youtube.com/watch?v=QqieC5HPLGQ


일렉을 친다면 이 곡은 누구나 치고 싶어 하지 않을까. 나 역시ㅋㅋ 아직은 솔 도솔 파미, 미 미파솔도 부분만 무한반복이지만 탭핑 현란하게 하는 아줌마로 나이 들고 싶다. 다이타는 정말 괴물이야. 이렇게 마음속에 있는 많은 플레이리스트가 있다. 요즘 들어 다시 해보고 싶은 곡들이 다시 생각난다.


솔직히 나에게는 화려한 연애도, 인기도, 친구도 없었다. 수업이 끝나면 기타 치러 동아리방 가는 게 대학 생활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연애사를 굳이 따지자면 술 먹고 울고 고백하고 차이고 어쩌다 호구 짓하고 또 차이고 울고 술 먹고, 사귀자고 해서 사귀는 줄 알았다가 일주일 만에 차이고, 그게 나의 연애 관련 관계망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진짜 연애라는 것은 할 줄을 몰랐다. 집착과 의심이나 할 줄 알았지. 그게 전부다.


물론 기타로 매일 즐거웠던 건 아니었다. 병정놀이에 괜히 긴장하던 날들이 많아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드니 그것은 모두 경험으로 살아났다. 추억으로 매몰되지 않고 말이다. 그 경험으로 연애와 결혼을 했고 그 조차 힘이 든 어떤 날은 이 플레이리스트만 다시 들어도 괜찮아지곤 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다시 덕력을 충전한 것 같다. 일렉기타 내다 버릴 생각도 한 적이 있다. 이사는 자주 다니고, 짐은 늘고. 나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질 때가 많았으니.


그러다 어제 다시 꺼내봤다. 사실 몇 달 전부터 슬슬 시동을 걸고 있긴 했다. 그러다 노래를 들으며 연주를 해본건 오랜만이다. 코드만 다시 따라 쳤는데 정말 좋았다. 눈물이 나게 좋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가 마흔이 되기 전까지는 이 곡들을 다시 쳐보고, 다시 한번 열정 있게 살아보자고.


어제 오랜만에 주온 베이스하고 통화를 했다. 계룡과 만신이 들으면 깜짝 놀랄 일이다. 뭐? 통화가 됐다고?!! 이럴 듯. 베이스 갖고 있어? 물으니 그럼, 가끔 치지, 이런다. 오, 그렇다면? 언젠가는 합주도 한차례 정도 가능하지 않을까.


남편이 자주 물었다. 니 인생의 가장 좋았던 시절 언제였느냐고.. 없다고 말했다. 위에도 썼지만 인기도 없고, 몸매도 없고, 흑역사만 가득했던 날들이라. 그렇다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그나마 나는 잘 기억하지도 않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오죽하면 매일 에세이를 하나씩 쓰겠다고 결심했을까. 지나간 것들이 선택적으로만 기억에 남아 아쉬운 것이 많으니 말이다.


남편이 종종 나의 흑역사(주로 연애사)를 물으면 정확하게 기억하지도 못하고, 기분 나쁘고 민망한 감정들만 남아서 자꾸 왜 묻냐고 화를 냈다. 솔직히 내 것에도 관심 없고, 남 편 것에도 (지금은) 관심이 없다. 지금이 중요하고, 오늘 나의 삶을 잊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연애 분야는 정말 기억이 안 난다. 그냥 안 좋았던 '감정'만 남아있지 사실이나 상황은 기억에 없다. 정말이다. 믿어달라.


그러나 기타를 치고 세 친구들과 함께 놀았던 기억들만은 또렷이 기억난다. 계룡이가 방을 구하던 시절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고 말이다.


https://brunch.co.kr/@rainyhojin/86


우리우스에게 말하고 싶다. 생각해보니 내 인생의 화양연화는 그때가 맞다. 연애도, 사랑도 없었지만 열정을 쏟았고, 그 기억으로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있는 거라면, 그게 나의 빛나던 시절이다. 추억은 매몰되지만, 경험은 계속 살아서 나를 움직이게 하니까. 그시절은 매몰되지 않은 나의 연결된 삶인거다. 통상적인 '화양연화'가 연애나 사랑, 혹은 가시적인 성공을 의미해왔을거다. 그러한 기억이 모두에게 옳고, 밝고, 즐거운 기억은 아니라는 걸 깨닫고 나니, 기쁘다.


진심으로.



fin.


우리우스를 만나 사랑스러운 또미와 함께 하게 된 것도 다 나의 찬란했던 시절 덕분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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