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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나무 Jul 22. 2020

스무살의 자취방

뭐 그런 집이 다 있냐!


9월의 어느날이었다.

그날도 또 넷이었다.

 

물론, 다른 날도 넷이었다. 왜 넷이냐. 매일 넷이 함께 모여 술을 먹고 매일 넷이 함께 모여 선배들에게 갈굼당하고 매일같이 모여 되지도 않는 악기 연습을 하고 연습이 끝나면 또 맥주 한잔을 한 다음에 집에 돌아와서 아차 싶어 과제를 좀 하는 척 하다가 다음날 대충 학교를 가곤 했었다. 그리고 하루종일 고등학교처럼 빽빽이 짜인 수업을 듣고 나서 녹초가 되고나면 자취방으로 기어들어가기가 왠지 아쉬웠다. 그래서 동아리를 들었고, 우리 일과의 마지막은 늘 동아리방이었다.


거기에서 똑같은 날에 만난 네명이 4년동안 쭉 친구였었다. 학교와 원룸뿐인, 그나마 시내라고는 진짜 백미터 달리기 하는 속도로 겁나게 달려봤자 10분이면 다 돌 수 있을 그런 동네에서 학교를 다니려면 제정신으로 어렵긴 했다. 그 좁아터진 대학교 인근에 몇개 없는 술집을 꾸역꾸역 매일같이 돌아다니며 매상을 올려주는 일이 4년 내내 지겹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우리가 쿵짝이 잘 맞아서 네명이 친구가 된 건 아니다. 뭐 하나 접점이 없어서 매일 서로가 서로의 복장을 터지게 하는 존재였다.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면 우리 넷 다 생일이 9월이었다는 것이다. 그거 하나를 9월 내내 물고 늘어지며 생일파티 겸 술마실 궁리를 해대던 스무살의 어느날이었다. 아, 정확히 말하자면 첫 생일파티였다. 우리가 대학교에 입학한 해 였으니까 말이다.


"야, 나 기숙사에서 쫓겨났다."


계룡이가 심각하게 운을 띄웠다. 계룡산자락을 삼선슬리퍼로 신고 금잔디고개까지 올라가서 계룡이다. 나는 애당초 예비로 학교 문을 닫고 입학했기 때문에 기숙사 근처를 가 본적이 없었던 초특급 아웃사이더였고, 노래를 부르는 만신이는 좋은 고등학교를 나와 좋은 성적으로 이 학교에 입학한것으로 알고 있지만 자의적으로 기숙사를 거부한 것으로 기억한다. 별명이 만신인 이유는 엄마가 한약 먹으라고 한약 주셨는데 한약대신에 술을 마셔서 몸이 만신창이가 돼서 만신이다. 그 상황에서 펄쩍 뛴 사람은 주온이 하나였다. 늘 연습이 끝나면 기숙사 문닫기 전에 전력질주로 머리털을 휘날리며 북쪽으로 뛰어가던 주온이만이 계룡이의 기숙사 생활을 이해했기 때문일거다. 주온이는 소리없이 슥 어디 갔다가 소리없이 언젠가 다시 나타나 대화에 참여해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해서 주온이 되었다. 나도 별명이 있지만 나의 털끝만한 명예를 위해 밝히지 않는다.


여튼, 계룡이는 기숙사에서 쫓겨났다. 형들과 술을 먹느라 늦게 들어가기도 했고, 연애하느라 늦게 들어가기도 했고, 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1학기 성적이 학사경고라서, 2학기에 부모님께서 열심히 공부하실 것을 기대하셨는데 2학기 개강한지 몇 주 되지도 않아 벌점을 싹 채우시고 기숙사에서 강제탈퇴를 당한것이다.

 

"에라 염병아. 집은 어떻게 할라고?"

"싼거 구해야지 뭐."


계룡이는 세상편하게 말했다. 월 10만원에서 20만원짜리 방 구하면 되지 않겠냐고. 3,4학년 형들 사는 집이 월세가 7만원이라는데 나도 가본적이 있다. 밴드 신입생 환영회 2차를 그 집에서 했었으니까. 열댓명의 학생들이 돈이 없어서 그 방에서 조로로 앉아서는 소주 댓고리에 라면 뿌신것과 비엔나 소세지와 감자깡 냄새가 뒤섞인 상태로 신입생이었던 우리가 무지하게 호구조사를 당했던 기억이 있는데, 내가 어찌 기억을 못하겠나. 술좀 깨자고 라면을 끓여보자고 하는데 부엌문을 열자마자 방안으로 귀뚜라미가 튀어들어왔던 기억. 그리고 어디가 현관이고 어디가 화장실로 가는길인지 오히려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그런 집이 있었지.

 

"야, 설마 그 집만 하겠냐."


계룡이는 자신만만했다. 7만원짜리 방에서도 그렇게 잘들 지내는데 설마 그거보다 이상한 방이 있겠냐면서. 우리는 호기롭게 계룡이의 집구하기를 돕기로 했다. 돕기로 했다는 것은 좀 거창하고, 계룡이가 결정한 집을 우리가 한번 둘러보고 괜찮으면 괜찮다고 해주는 정도의 도움이었다.


우리라고 계룡이의 집을 봐 줄 만한 좋은집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나마 만신이가 부모님이 살고 계시다 이사간 집에서 홀로 살고 있는 부르주아에 속했다. 무려 빌라였다. 방이 두개, 거실이 하나, 완벽한 가정집이었다. 그러나 걸어서 5층까지 올라간 다음에 곧 귀신이 나올 것 같은 복도를 통과해야 나오는 집에 살고 있었다. 만신이는 술을 먹고도 그 밤에 거기까지 꿋꿋이 걸어갔고, 계단을 오르내리다 한번 넘어졌단 소리도 듣지 못했다. 걸어서 학교까지 30분은 걸리는 그 거리를 한번도 지각하지 않고 오고갔다. 지금생각해도 대단한 정신력이다.


나는 입학한 첫 달은 인근 도시에 사는 이모네서 다녔다. 그러나 통학시간만 왕복 4시간이었다. 새벽잠에 취약한 나는 급하게 룸메를 구하는 어느 언니네 집에서 두어달을 살다가 2학기 시작할 무렵에 1년에 180만원짜리 자취방을 얻었다. 주택 2층을 개조한 6인용 여학생 전용 원룸이었다. 대충 현관에 있는 신발을 발로 치우고 내 신발을 벗은 다음, 장판이 깔린 복도를 걸어가서 가운뎃 방 문을 열면 딱 요 하나를 깔면 꽉 차는 공간에 냉장고와 싱크대와 1구짜리 가스렌지, 그리고 똥을 싸기 위해 들어가 변기에 앉아 문을 닫으면 내 무릎이 화장실 문에 닿는. 그래도 샤워까지 기적적으로 해냈던 그런 나만의 공간이 있었다.


어쨌든 나는 내가 왜 여기에 있나 하는 생각이 들때마다 깃털같은 정신력으로 만신과 계룡과 주온에게 의지해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주온도 2학년이 되어서는 나와 비슷한 집을 구했지만 그때까지는 기숙사에 살고 있는, 우리중에 가장 똑똑한 학생이었다. 이런 우리가 계룡이의 집을 구하는 데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그러나 어렵지 않았다. 계룡이가 다음날 바로 집을 구했다고 연락을 해왔기 때문이다. 일주일도 안되는 시간동안, 우리는 말도 안되는 세 개의 집을 보았다.


첫번째 집은 지금 4학년 형이 살고 있는 집의 옆집이라고 했다. 남향에 2층 원룸. 개별 화장실에 싱크대도 구비되어 있는 괜찮은 곳이고 월세는 10만원, 보증금은 없다고 했다. 거기 '기역자 구조'라고 얼핏 들은적이 있었다. 한 선배가 4학년 선배 집에 놀러갔는데 잘 곳이 너무 부족해서 한사람은 누워서 자고 한 사람은 앉아서 잤다고 들었다. 설마 그집이겠어? 하면서 주온과 만신과 나는 그 집으로 가봤다. 해가 잘 드는 어느 야트막한 언덕에 집이 있었나? 싶을정도로 어색하게 건물이 하나 떨렁 있었다. 이런 집을 구해서 사는 사람들이 신기할 정도로. 어쨋든, 2층으로 올라가봤다. 207호라고 했지. 문을 똑똑 두드렸다. 계룡이가 밝은 표정으로 문을 열었다. 우리는 문을 열고 끙차 하면서 그 방으로 올라갔다.


"야야, 들어와봐. 여기 엄청 싸지 않냐?"


노란색 비닐 장판이 깔려있는 그 집은 결코 작은 집은 아니었다. 당시 내가 살고 있는 자취방보다도 어쩌면 클 수도 있었다. 화장실을 빼면 말이다.

 

사실 문을 열었을 때, 나는 이 집이 지하실인 줄 알았다. 바로 왼쪽에 보이는 거대한 화장실 때문이었다. 화장실이 온통 집을 가로막고 있어서 집이 전체적으로 어두웠다. 창문이 있기는 했지만 화장실을 왼쪽으로 끼고 좌회전을 하면 계룡이가 지낼만한 공간은 싱글침대 하나보다도 좁은 공간이었다. 화장실을 방으로 개조한 것인지, 방에다가 화장실을 설치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정도였다(주인집이 타일이나 싱크를 하시나?). 그리고 놀랍게도 그 좁은 공간 끝에는 싱크대가 있었다. 가스렌지도 있고, 그 벽에는 타일도 붙어있었다. 정말이지 다 우겨넣은것이 말도안되는 구조였다.


"계룡아, 화장실이 너무 커서, 네가 집에서 앉아서 자야될지도 모르겠다. 냉장고도 하나 살거라면서."

만신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냉장고? 여따 두면 되지."

계룡이는 손가락으로 아무데나 가리켰다.

"잠은 어디서 자려고?"

주온이 물었다.

"여기봐바. 누우니까 딱 맞지 않냐?"

이미 계룡이는 마음의 결정을 내린 상태인것 같았다. 초간단, 초긍정적인 결론을 내리고는 계룡이는 잠시 동아리 형 집에 두었던 짐을 풀고서는 여기서 지내겠다고 했다. 집들이라도 했으면 좋았겠지만 다 같이 앉을 곳이 없었다. 내 작은 집에도 네 사람은 앉아서 밥 먹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계룡이의 마음이 뒤바뀐것은 그로부터 12시간이 채 안되어서였다. 계룡이는 우리에게 점심을 먹자며 연락을 해놓고는 핼쓱해진 얼굴로 동아리방에 나타났다. 밤사이에 귀신이라도 봤나?

 

"왜그래?"

내가 물었다.

"너무 좁지?"

주온이 물었다.

"야, 그것갖고 뭘 좁냐. 하나도 안좁은데, 이상하게 잠이 안오더라고. 쥐도 돌아다니는 거 같고."

계룡이는 태연한 척 했지만 정말 쥐를 본 것 같았다.


그렇게 첫번째 집의 계약과 파기가 하루만에 이루어졌다. 집주인은 그런 일이 한두번이 아닌지, 그까짓거 하루 잔거 돈 안받는다고 집 잘 구하라는 덕담까지 해주었다고 한다.


계룡이는 다음날 두번째 집을 구했다. 대학교 후문 옆에 골목을 타고 쭉 올라오면 전원주택이 하나 있는데, 그 전원주택 옆에 있는 작은 골목으로 내려오면 현관문이 또 하나 있다고.. 지하벙커인가? 아니면 누굴 감금하는 곳인가? 이런 집은 또 어떻게 구한거지? 우리는 어쨋든 가보기로 했다.


수업을 마치고 저녁을 함께 먹기 위해 라면과 소주와 비엔나 소세지등을 사서 그 집을 향했다. 한번도 가본적도 알지도 못하는 골목이 진짜 있다는 사실에 약간 놀랐다. 한참을 올라가니 진짜 묵직한 느낌의 전원주택이 있었다. 까치발을 들고 담을 슬쩍 넘어다보니 뭐가 있긴 있는것 같았다. 어둑어둑 해지고 있어서 잘 모르겠지만 불이 켜진 걸 보니 사람이 살긴 하는것 같았다. 그리고 전원주택을 끼고 오른쪽을 보니 정말 한사람이 지나갈만한 길이 있는게 아닌가.  그 길을 따라 50미터 정도 걸으니 어이없게도 현관문이 있었다. 현관문이라니. 스무살의 내 입에서 너털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리고 두드렸다. 똑똑.


"왔어? 들어와. 여기 넓지 않냐?"

계룡이는 환하게 웃으면서 우릴 반겼다. 말도안되게 그 문을 열면 바로 방이었다. 뭐지 이집은? 도로에 바로 있는 가정집이 실제로 있다면 이런느낌일까? 요상한 느낌이었지만 들어가 앉았다. 불도 환하고 집안도 깨끗이 도배장판 되어있고 주방도 신발을 신고 들어가야하긴 하지만 분리되어 있었다. 화장실도 나름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여기도 10만원이야. 저번에 그집보단 괜찮지 않냐?"


계룡이는 기분이 무척 좋아보였다. 당연히 그집보다는 괜찮았다. 화장실에 압도당하는 이상한구조는 아니었는데 뭔가 이상했다. 계룡이는 뭐가 이상하냐며 술이나 먹자고 했다. 계속 이상했지만 일단 술을 한잔씩 마시고 그래. 여기서 몇년 살거 아니니까 2학년 되면 쓸만한 집을 구해보자. 중간에 집을 구하려니까 없는거야. 힘내 하면서 다독이는 그때


"미친놈아 창문이 없잖아!"


만신이가 계룡이에게 소리를 빽 질렀다. 계룡이는 그제야 집을 뺑 둘러보았다. 황급히 주방쪽 문도 열어보았다. 그랬다. 창문이 없었다. 우리가 느낀 요상함의 정체는 바로 창문 없는 집이었다. 아마 창고로 쓰던 집을 어찌저찌 개조를 해서 만들었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계룡이는 이 집에서 자겠다고 우기지 않았다. 한잔밖에 마시지 않은 소주 댓고리와 소세지, 과자, 라면을 챙겼다. 그리고 풀어놓지 않았던 짐을 다시 들고서 몇개 없는 짐을 챙겨서 터벅터벅 길도 아닌 길을 타고 내려왔다. 아는 형네 집으로 간다고 했다. 짐을 놓고서는 학교 후문 광장도 아닌 어느 벤치에서 다시 만났다. 남은 술을 마셨다. 그리고 계룡이는 3일정도 그 형네 집에서 먹고자고 했었던 것 같다. 동아리방에도 괜찮은 컨디션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창문없는 집에서 우리를 맞이할때만큼 밝고 명랑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3일이 지나고, 또 해질녘이었다.


"야, 이번에는 진짜 괜찮은 집이야."

계룡이가 3일만에 다시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한달에 15만원이래."

확실히 괜찮은 집일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두개의 집은 다 무보증에 10만원이었고, 여기는 무보증에 15만원이니까. 계룡이는 거기에 쐐기를 박았다.


"야, 투룸이야. 저녁에 좋은 안주나 사가지고 와."


우리는 그래, 그렇게 두번이나 당했는데 5만원이나 비싼 방을 골랐으면 괜찮은거겠지. 생각했다. 수업이 끝나고 만신과 주온과 만나 드림마트에서 소주를 사고 라면을 사고 비엔나를 샀다. 마땅히 더 좋은 안주가 있나? 라면에 소주면 가난한 대학생들에게는 최고지.


세번째 집들이를 위해 우리는 허름한 하천 옆에 있는 좁은 길을 걸었다. 매일 걷는 길이었다. 이 길을 걸어야 식당이 나오고, 조금 더 걸어야 시내가 나오고 했다. 자주 가는 식당 골목으로 들어가니 또 처음보는 주택이 있었다. 파도파도 계속 나오는 집들의 정체가 신기할 지경이었다. 이 동네에 집들이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파란색 대문이라고 했지. 정말 샛파란 대문이 하나 있었다. 이런데에 무슨 투룸 셋방이 있다는 거야 싶은 마음으로 대문을 열었다.


대문을 바로 옆에는 큰 계단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계단을 무시하고 10미터 정도 직진하면 마당이 크게 자리하고 있는데, 주택 끝부분과 마당 끝 부분이 닿는 자리에 회색 컨테이너?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뭘로 만들었을지 감을 잡을 수 없는 작은 공간이 하나 있었다. 설마 저것은 아니겠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커튼이 흔들리면서 시트지가 붙어있는 흰색 하이샤시가 열렸다. 아뿔싸. 저곳이로구나.


"들어와. 여기야."


우리는 몸을 구부려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엔 뭐가 이상한가 했더니 천장이 낮았다. 천장은 우리 키보다 컸지만 이상하게 몸을 구부리게 되는 약간 낮은 천장. 생각보다 내부는 넓었다. 덜렁 컨테이너 한개인줄 알았는데 두개 정도 연결된것 같았다. 꽤 큰 긴 직사각형의 공간이었다. 주방과 방이 분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구석에 있는 작은 문을 열면 화장실도 있었다. 온수도 나온다고 했다. 싱크대가 있긴 있었지만 옆에는 휴대용 가스버너가 놓여있었다. 지금생각하면 폭발이라도 하면 어쩌나 싶은 위험천만한 집이다. 정확히 말하면 불법 건축물. 우리의 평을 들어볼것도 없이 계룡이는 마음을 아예 정한 것 같았다.


"투룸 맞네."


주온이가 말했다.


"뭐 사 왔니?"

계룡이가 비닐봉지를 뒤적였다. 시간이 벌써 오후 7시였다.

"아, 그런데 있잖아. 라면을 끓이지는 못할 것 같아. 부탄가스가 없거든."

계룡이는 겸연쩍게 말했다.

짜장면이나 짬뽕이라도 시켜먹을까 했는데, 그러기에는 사온 라면과 비엔나가 너무 많았다. 그리고 이것을 보관할 냉장고가 너무 적어 오늘 장 본 안주는 오늘 우리가 다 먹어야 했다. 우리가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이렇게 집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 있고, 없는 사람들은 또 이렇게 살기도 하는거지. 계룡이만 좋으면 그만이지.


진라면 매운맛을 뿌셨다. 안성탕면도 뿌셨다. 스낵면도 뿌셨다. 넷이 취향이 다 달라서 라면 종류도 제각각이다. 비엔나는 원래 차게 먹어도 맛이 있으니 그냥 봉지째 까서 먹어보기로 한다. 그리고 종이컵을 앞에 나눠 놓고 1.8리터짜리 참이슬을 종이컵에 꼴꼴꼴 따라 붓는다. 계룡이, 위하여! 하고는 한잔씩 톡 입에 털어 넣었다. 스무살에는 댓고리도 달다. 그리고 배고팠던 우리는 뿌신 라면을 먹고, 또 먹고, 스프를 찍어먹고, 비엔나를 집어먹고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넷이 댓고리 1.8리터를 다 마시고 헤어졌다.


계약서를 어떻게 써서 어떤 과정으로 들어갔는지 나는 모른다. 겨울방학이 올때까지 무려 3개월 정도를 그 집에서 살아냈고, 대부분은 아는 형네서 자고, 또 다른 형네서 자고, 그런걸로 알고 있다. 그리고 계룡이는 1학년 2학기에도 학사경고를 받고 집으로 끌려갔다가 아부지와 술을 엄청나게 마시고 2학년때 다시 만날 수 있었다. 2학년 때는 어떤 집을 구했느냐고?


계룡이는 2학년이 되어서도 부동산에 가지 않았다. 그 이후는 상상에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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