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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나무 Jul 29. 2020

고향 가게

상가 1층 동네슈퍼의 치명적인 매력

이 아파트로 이사온지 반년이 넘어간다. 직장에서 제공한 관사이다. 주변 상가에 뭐가있는지 알 턱이 없었다. 그래서 장은 당연히 대형마트에서 봤다.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은 쉽지 않다. 퇴근하면 차를 끌고 시골길을 20분 정도 달린다. 주차장을 뱅글뱅글 돌아 마트 입구와 최대한 가까운 곳에 주차를 한다. 그리고 한참을 걸어서 입구로 들어가면 그곳은 2층, 장난감을 파는 곳이다. 마트를 한바퀴 돌아야 1층으로 가는 표지판이 보인다. 거기까지 아이를 카트에 싣고 뛰다시피 카트를 민다. 장난감 코너는 매우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걷다보면 구석에서 쓸쓸히 돌아가는 무빙워크가 있다. 그것을 타고 1층으로 내려간다. 1층에 내려가면 아이들을 현혹하기 위한 햄스터와 토끼와 금붕어등 작은 동물 코너가 있다. 딸아이가 그곳을 보기 전에 잽싸게 카트를 왼쪽으로 튼다. 채소코너부터 즉석식품코너, 집에 왠지 꼭 있어야 할 것 같은 5개들이 라면 두 개, 막걸리도 이왕 왔으니 세 병, 오늘만 할인이라는 초밥세트를  사고 나면 왠지 3개월 할부를 해야 할 것 같은 가격이 나를 반기는 마법의 대형마트.      


쇼핑이 끝나고 다시 주차장으로 나온다. 한참 걸려서 또 카트를 밀고 나온다. 꽉꽉 들어찬 에코백 두 개를 카트에서 꺼내 차에 싣는다. 아이도 내려서 카시트에 앉힌다. 웬만하면 카트 놓는 곳 옆에 주차를 해 놓기 때문에 바로 카트를 가져다 놓는다. 그러면 카트는 나에게 소중한 백 원짜리 하나를 돌려준다. 배고프다고 칭얼대는 아이에게 천하장사 소시지를 하나 까 주고, 자동차에 시동을 건다. 그리고 20분 정도 시골길을 달리며 대여섯 대의 커다란 화물차를 마주하고 나면 드디어 관사에 도착한다.      


아파트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4층까지 아이와 에코백 두 개와 내 직장 가방과 아이의 어린이집 가방을 동시에 들고 올라간다. 중노동이다.


그러다 언제부터 지갑 하나 덜렁덜렁 들고 그때그때 고향 가게를 가는 나를 발견했다. 어, 뭐지?     


“여보, 막걸리가 없다.”

“나더러 갔다 오라고?”

“안내면 갔다 오기, 가위바위보!”     


아, 내가 졌다.      


“여보, 뿌셔뿌셔도 하나 사다 줘~ 사랑해~”     


남편의 말을 귓등으로 듣고서는 카드를 한 장 챙겼다. 시계를 보니 오후 7시. 가게는 8시를 전후해서 아무 때나 문을 닫기 때문에 늦지는 않았지만 혹여 문을 닫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가봐야 한다.      


1층으로 내려간다. 50미터 정도만 가랑비를 맞고 뛰어가면 경비실 바로 옆에 가게가 있다. 가게 문을 열기 전에 할아버지가 손을 뻗어 문을 열어준다. 문 끝에 달려 있는 방울 소리가 경쾌하게 울린다. 딸랑딸랑.      


“안녕하세요.”     


할아버지는 말이 거의 없다. 내가 인사를 해도 고개를 한번 끄덕하는 것이 전부다. 나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오른쪽에 평상이 있다. 전기를 활용해 바닥을 뜨뜻하게 데워주는 기능이 있는 뭔가 최첨단 평상? 돌침대? 그런 느낌이다. 한 평 정도 되는 공간.


 할아버지는 거기에 앉아서 나의 동선을 체크한다. 막걸리는 몇 번 산 적이 있기 때문에 아주 자연스럽게 막걸리가 있는 곳을 찾아낸다. 이번에는 오징어를 사야 하는데 오징어가 어디 있었더라? 할아버지의 나를 향한 시선이 느껴지지만 티 내지 않고 직접 가게를 둘러보기 시작한다. 다른 방향을 향해 한 걸음 떼자마자,

     

“뭐 찾아?”     


할아버지가 물었다.      


“오징어.. 버터구이..”

“저 짝에 있어.”


할아버지가 손을 쭉 뻗어 두 번째 선반 뒤쪽을 가리켰다. 나는 할아버지의 지속적인 시선을 느끼며 두 번째 선반으로 걸어갔다. 딱 두 종류의 조미오징어가 있었다. 마른오징어도 두 마리 걸려있었다. 고민 끝에 불고기 맛 조미오징어를 골랐다. 딱 봐도 할아버지가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만 가져다 놓은 것 같았다. 그 옆에는 딸아이가 좋아하는 닭다리 맛 과자도 있었다. 다행히 뿌셔뿌셔도 있었다. 물건을 할아버지가 앉아있는 평상으로 가지고 갔다. 막걸리, 조미오징어, 과자를 차례로 놓았다. 할아버지는 매의 눈으로 물건을 한번 스윽 둘러보더니 말했다.     


“육천 오백 팔 십원인데, 육천오백 원.”     


쿨하게 십 원 깎아주시고, 카드를 내미니 또 쿨하게 카드 결제하시는 할아버지. 장바구니가 없어도 괜찮다. 검정 봉지를 꺼내 물건을 담아주셨다.      


“안녕히 계세요.”     


내 돈 내고 마트보다 약간 비싼 값을 지불한 뒤 물건을 가져오지만, 왠지 모르게 공손해지는 그곳. 아파트 상가 1층에 있는 작은 슈퍼마켓. 고향 가게다.      


고향 가게는 매우 쉽다. 일단 계단을 내려가면 눈에 보이는 거리에 상가가 있다. 가끔 쿨하게 값을 깎아주는 (척을 하는) 할아버지가 있다. 가끔, 사진 속의 자식 자랑도 하신다. 고향 가게는 할아버지가 눈뜨면 문을 열고 할아버지가 잠드는 시간에 문을 닫기 때문에 언제 문을 닫는지 나는 모른다. 카드도 되고 현금도 되고 온누리상품권도 되고 지역사랑 상품권도 되고 다 된다. 뭐가 어디 있냐고 물어보면 1초도 안되어 바로 알려주신다. 그리고 물건을 가져가자마자 바로 계산도 해주신다. 그리고 가까우니까 많이 사지 않는다. 딱 필요한 만큼만 사고 가볍게 집으로 온다. 4층까지 올라가기가 버겁지 않다. 굳이 아이를 데리고 내려가지 않아도 되고, 아이를 데리고 내려가도 코앞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고향 가게 옆 점포에 통닭집이 문을 연다는 플래카드가 붙어있었다. 그 점포는 브랜드가 아닌 치킨집을 하다가 곧 문을 닫았다는 것 말고는 정보가 없다. 몇 달 정도 텅 빈 점포만 봐서 처음에는 창고인 줄 알았다. 그런데 통닭집이라니.      


나와 남편은 고향 가게가 타격을 입을 것인가 아닌가를 두고 설전을 벌였다. 나는 고향 가게가 안주를 파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적어지고 생맥주를 먹는 사람이 있을 거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매출이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남편의 의견은 달랐다. 옛날통닭은 주로 포장 손님이 많다. 때문에, 통닭을 사고 막걸리나 맥주를 고향 가게에서 사갈 것이라 오히려 주류의 매출이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     


남편과 딸아이의 간식거리를 사러 고향 가게로 향했다. 고향 가게 바로 옆에는 내일 대대적으로 오픈하는 통닭집의 간판이 빛나고 있었다. 고향 가게 할아버지는 마침 바깥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리고 할아버지 옆에는 담배냄새만큼이나 독한, 초록색 달팽이 모양의 모기향에서 하얀 연기가 솔솔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께 꾸벅 인사를 하고 가게로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재빨리 따라 들어와 나를 스캔했다. 막걸리 하나와 과자를 집어 들었다.     


“이천 백 원 인디, 이천 원만 줘.”     


카드만 들고 내려온 것이 무색할 정도로 가격은 이천 원이었다. 나는 카드를 쭈뼛 내밀었고, 할아버지는 카드를 능숙하게 받아 카드기에 꼽고 바로 영수증을 건네주었다. 막걸리는 얼마고 과자가 얼마인지 생각할 틈도 없는 재빠른 계산을 하는 할아버지였다. 내가 생각할 때는 할아버지가 가게 앞에서 담배를 태우는 것으로 보아 새로 생기는 옆 가게에 대한 약간의 경계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나의 비관적인 전망을 다시 이야기했지만 남편은 그냥 원래 피우던 담배 피우는 거지 한번 지켜보라고 했다. 내기할까? 하고 제안하고 싶었지만 남편과의 내기에서는 거의 이긴 적이 없기 때문에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내가 고향 가게 매출에 투자를 한 것도 아니고, 할아버지랑 몇 마디 말을 해 본 것도 아닌데, 매출이 떨어지는 것에 대해 내가 왜 걱정을 하게 되는 것인지 나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고향 가게 옆 옛날통닭집이 성황리에 개업을 마쳤고, 사람들이 엄청 들어갔다 나갔다 하는 것을 아파트 베란다를 통해 관찰했다. 고향 가게의 술 혹은 안주 매출이 떨어질 것이라는 것이 내 머릿속에서는 어느 정도 확실해졌다.     


3일이 지났다. 이쯤이면 사 먹을 사람은 다 사 먹었을 것이다. 그러면 포장 주문 전화를 넣고 기다리지 않고 옛날통닭의 맛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남편도 새로 생긴 가게에서 똥집 튀김을 하는지 물어봐달라고 했다. 읍내에 나가면 똥집 튀김을 기가 막히게 하는 집이 있는데, 상가건물 통닭집도 그런 똥집 튀김 메뉴 하나쯤은 보유하고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일단 고향 가게 가서 막걸리를 두 병 사고, 똥집 튀김 되냐고 물어보기라고 해야지. 나는 지갑을 옆구리에 딱 끼고 에코백을 하나 챙겨서 상가로 향했다. 할아버지가 담배를 태우고 있을 것인지, 옛날통닭집에 사람은 많을 것인지 등 많은 것이 궁금했다.      


상가 근처에는 경비아저씨가 택배 상자를 정리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없었다. 고향 가게 문을 찌그덕 열었다. 할아버지가 미동 없이 텔레비전을 보며 앉아있었다.     


“안녕하세요.”     


내가 인사하자 할아버지는 천천히 나를 쳐다보다가, 다시 텔레비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막걸리 두병과 비엔나 소시지 한 봉지와 닭다리 맛 과자 하나를 샀다. 옛날통닭집 안주가 시원찮으면 대신 먹을 안주였다.      


“칠천 원만 줘.”     


원래는 얼마예요 할아버지?라고 묻고 싶었지만 막걸리 두병에 이천오백 원 정도 할 테고, 과자가 천 원, 그리고 소시지가 오천 원에는 육박할 테니, 나쁘지 않은 가격이라고 생각했다. 카드로 계산을 했고 할아버지가 검정 봉지에 물건을 담아주었다. 역시 매출에 타격이 있겠군, 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여기 맛나.”     


하면서 종이를 하나 주었다. 뒤에 자석이 붙어있는 빤닥한 종이였다.     


“예?”     


하며 나는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아버지가 사 오시던 바로 그 맛, 옛날 통닭집이라고 쓰여있었고 전화 주시고 4분 뒤에 매장에 오시면 뜨끈뜨끈한 통닭을 포장해갈 수 있다는 광고글이 쓰여있는 게 아닌가.     


“여기 잘 햐. 가는 길에 들러봐.”     


나는 머리에 뭐를 맞은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 전망이 완전히 빗나간 것이다.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나쁜 관계는 아니라는 것.


이상하게도 안도감이 밀려왔다. 고향 가게 할아버지가 담배를 피우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왠지 기분이 좋았다. 기분 좋게 옆 가게로 가서 똥집 튀김이 되냐고 물어봤다. 똥집 튀김이 된다고 해서 만원 주고 한 세트 샀다.


집에 가서 뚜껑을 열어봤다. 이게 뭐야? 세상에. 튀김옷이 없는 똥집 튀김이었다. 읍내 똥집 튀김은 청양고추를 갈아 넣은 튀김옷을 입혀 바삭하게 튀겨준단 말이다. 튀김옷 없는 똥집 튀김은 할아버지 없는 고향 가게와 다를 게 없다.


 충격을 받은 나와 남편은 얼마 안 되는 똥집을 대충 양념에 다 찍어먹은 뒤, 고향 가게에서 사 온 비엔나 소시지를 안주삼아 남은 막걸리를 마셨다.


역시 고향 가게가 있어야지.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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