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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나무 Oct 23. 2020

비엔나

애증의 비엔나소시지

식사인생 삼십팔년. 내가 삼십팔년동안 늘 갈구하며, 먹어도 다음날 또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다. 첫째는 미역줄기볶음이고 둘째는 비엔나소시지(이하 ‘비엔나’라고 함)다.     



미역줄기볶음은 그냥 좋다. 이유가 없다. 그냥 쏘울푸드다. 그러나 비엔나는 약간 결이 다르다. 한 번에 먹는 양이 많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먹고 내일 먹어도 또 먹을 수 있다. 부대찌개에 비엔나가 들어가면 또 흔쾌히 먹을 수 있다. 그러나 나의 소울푸드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다.    

 


어렸을 적 우리집은 가난했다. 다행히 시골에서 쌀과 김치를 늘 아낌없이 보내주셔서 밥과 김치 걱정을 한 적은 없다. 김치 반찬은 넘쳐났다. 때문에 대다수의 볶음요리에도 김치가 들어갔다. 김치에 고기, 김치에 참치, 김치에 비엔나. 비엔나. 비엔나.     



14평 반지하에 살 때였다. 오후 5시 30분, 낱말 찾기 숙제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동생들이 뭘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엄마가 저녁 준비를 하고 계셨다. 김치를 송송 썰어서 후라이팬에 담고, 양파도, 어묵도 송송 썰어서 넣었다. 그리고 비엔나. 한 봉지를 뜯어서 하나하나 칼집을 내시는 게 아닌가. 나는 뭐에 홀린 듯 주방으로 나갔다.     



비엔나를 한 알만 먹어보고 싶었다. 한 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 베어물었을 때 톡 터지는 듯한 식감, 하얀 쌀밥과 함께 먹으면 짭짤하게 배어드는 딱 맞는 간. 그리고 햄 특유의 냄새까지. 변형된 김치만 매일 먹던 나에게는 눈이 돌아갈 것 같은 맛이었다. 비엔나는 어쩌다 한번 먹을까 말까 한 음식이었다. 비율을 생각해보자면, 두부 열 번, 어묵 일곱 번 정도 먹고 나면 비엔나 한 번 먹을 수 있는 정도.     



엄마는 흠칫했을 것이다. 연필을 든 채 눈알을 데굴거리며 엄마 어깨를 넘보던 큰 딸의 모습에. 엄마는 나에게 곧 아빠가 오실 때가 되었으니 숟가락을 놓으라고 했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고 동그란 밥상을 펴고 숟가락을 놓았다. 냉장고에서 밑반찬도 꺼냈다. 엄마에게 할 수 있는 충성을 다 했다.      



아빠가 집에 오셨다. 그리고 방에서 뭘 하고 있었는지 기억도 안나는 동생들이 밥을 먹기 위해 주방으로 왔다. 하얀 쌀밥이 압력솥에서 그릇으로 옮겨졌고, 나는 그 그릇을 하나하나 밥상에 올려놓았다. 하나도 뜨겁지 않았다.      



나는 설레기까지 했다. 엄마와 나의 밥만 남았다. 나는 엄마의 밥그릇을 놓자마다 밥상에 앉았다. 아빠와 동생들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초조해졌다. 나의 초조함을 아무도 모르겠지. 최대한 진정했으니까. 이 쌀밥에 비엔나를 얹어먹기만 하면 된다.      



호기롭게 밥상에 앉았다. 그런데 접시 위에는 어묵과 김치가 수북했다.     



비엔나는?

내 비엔나는?     



나는 황급히 주위를 바라보았다. 동생들은 맛있게 밥을 먹고 있었다. 아빠는 아이들에게 음식을 양보하셨을 테고, 저 세 녀석의 뱃속으로 다 들어갔을 것이다. 나는 내 몸이 흐느적거리는 것을 느꼈다. 약간의 눈물도 나오려는 것 같았다. 내가 비엔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어떻게든 어필하고 싶었다. 바로 아래 동생한테 말했다.     



“야, 너 소시지 다 먹었어?”     



동생이 몇 개 없었다는 식으로 얼버무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밥상에는 엄마와 나만 남았다. 엄마는 표정이 썩어있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동생한데 뭘 그렇게 말해? 양보해주면 어디 덧나니? 그렇게 많이 먹으니까 살이 찌지. 미련하게 소세지만 찾으니까. 김치하고 밥먹어.”     



나는 순간 멍해졌다. 밥을 나르고, 숟가락을 놓는 모습이 비엔나를 먹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엄마가 모를 리 없다. 그리고 비엔나가 넉넉하지 않다는 사실도, 그걸 많은 식구가 먹어야 한다는것도 엄마는 다 알고 있었을 것이지. 그런 와중에 집요하게 비엔나를 탐하는 내가 사실은 조금 싫었던 것 같다.      



나는 좀 창피했다.

그리고 눈물이 좀 날 것 같았다.

하지만 “뭘 잘했다고 울어.”라는 소리를 콤보로 듣기는 싫었다.

꾹 참고 비엔나향이 배어든 김치와 어묵을 집어 밥과 함께 먹었다.

돈을 많이 벌면 비엔나를 많이 사먹어야지,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빨랐던 스무살의 독립.      



가난한 대학생이었다. 하지만 모든 술안주와 밥반찬은 비엔나소시지였다. 심지어 다이어트를 하는 동안 밥을 안먹어도 비엔나는 먹었다. 교사가 되고나서도 천원짜리 백설비엔나가 그렇게 맛있었다. 결혼하고도, 아이가 다섯 살이어도 나는 종종 비엔나를 먹는다. 남편과 아이는 이미 질렸는지 그렇게 비엔나를 탐하지 않는다. 비엔나소시지는 다 내차지다 움하하하하!     



어쨌든, 나는 나의 경제력에 만족한다. 소시지를 언제든지 내가 원하는 양 만큼 사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꿈을 이룬거다. 지난 달에 엄마 산소에, 소세지가 든 빵을 사갖고 갔다. 아마 엄마도 이런 나를 보며 참 어지간하다, 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 같다.      



내가 비엔나소시지를 싫어하게 되는 날이 올까? 절대 안올거다. 내가 내 마음대로 먹고싶을때만 적절히 사먹을거니까. 그런 날은 없을거다. 장담할 수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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