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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 Apr 21. 2021

우리 또 만나 #005 : 에필로그

나도 언젠가 엄마를 다시 만날 때


엄마가 떠나고, 매일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슬픈 글 아님. 이것은 철저하게 냉정한 미래의 유서. 혹시나 내가 먼저 죽을 경우. 황망하게 가버릴 경우를 대비해 급하게 작성해본다. 그리고 가장 황망해할 사람은, 이 글을 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으니 교촌치킨 허니 콤보와 맥주를 먹이면서 이 글을 보여주면 된다.


1. 장례

장례식은 1일장으로. 빈소에 음식 하지 말고 그냥 정해진 시간에 모여서 장례미사를 꼭 지내줬으면 좋겠고. 미사가 끝나면 나에 대해 이야기하고 내 핸드폰 속 사진을 보고 일기도 구경해. 좋아하던 음악을 틀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일괄 해산. 내가 스스로 간다면 꼭 부검해줘. 내가 그럴 일은 없으니까.


2. 재산

중요서류는 그 중요한 자리에 다 있어. 재산보다 빚이 있어. 놀라지 마. 보험과 예금은 정리하다 놀라지 마. 생각보다 더 없을수도 있으니까. 재산은 남편이 1순위, 아이가 2순위. 단,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무조건 지켜줄 것. 이것도 물론 너무 적어서 놀랄 액수일지도. 그리고 장지나 선산은 봐 둔 데가 없어. 수목장 같은 거 해줘. 그냥 어디 좋은 데다 뿌려줘도 돼. 나는 거기에 없을 거야.


3. 제사 금지

가장 중요한 것. 아무 제사도 지내지 마. 별표 오천개. 제발 부탁이야. 남들이 한다고 삼우제도, 49제도, 첫 기일이고 뭐고 아무것도 지내지 말아줘. 그냥 살아있는 사람들은 장례로도 이미 기진맥진했을테니 좋은거 사먹고 쉬면서 천천히 마음정리해야지. 나는 살아있을 때 많이 먹고 갈 거니까 걱정하지 마. 나를 기억하고 싶다면 가끔 기도만 부탁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모하고 싶다면 나의 글과 사진이면 충분할 거야. 음식은 배달음식 시켜서 먹어. 만드는 것 절대 하지 말고. 치맥 피맥, 혹은 짬뽕에 소주 하면서 나에 대해 이야기하고 일찍들 헤어져 줘. 모이지도 마 그냥 각자 추모해 줘. 나는 그냥 자연으로 돌아가는 거야.


4. 유품

내가 기록해놓은 것들이 많아. 되도록 인쇄해서 3 공파 일에 모아두는 편이야. 흰색 노트북과 외장하드에도 거의 글만 있을 거야. 그거 묶어서 책으로 내려고 하는데 내가 혹시 책이 나오기 전에 간다면 그냥 태워서 보내줘 다 삭제해주고. 그 외의 옷이며 각종 유품은.. 특별히 돈 될 만한 건 없어. 갖고 싶은 건 보관하고 아닌 건 과감히 보내줘. 태우는 것도 귀찮은 세상이잖아. 종량제 봉투에 규칙 지켜서 버려주면 고맙겠어.


5. 일상으로

내가 떠나면 최대한 나를 빨리 잊고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라. 보내보니 알겠더라. 너무 아프고 힘들다는 걸. 하지만 그 시간은 무조건 필요하다는 것. 그러니, 충분히 나를 보내주고, 되도록 씩씩하게 일상을 살아줘. 내가 있던 공간을 보존하고 싶다면 최소한으로만 기억하고 아니면 집을 리모델링하거나 이사를 가도 좋겠어. 너무 오래 슬퍼하지 말아 줘. 내가 어디에 어떻게 있을지 모르지만 나를 위해 만들어놓은 그곳에는 없을 거야. 가끔 날씨가 좋을 때 자전거를 탈 때 바람이 유난히 코끝을 스친다면 혹은 어쩌다 이유 없이 내가 생각난다면 가끔 생각해줘. 그거면 돼.


6. 하지만 나는

나는 빨리. 쉽게. 그리고 절대 스스로 가지 않을 거야. 사람들과 사소한 시비도 붙지 않을 거고 과한 음주도 안 할 거야. 되도록 건강하게 살 거야(오늘부터 다이어트함). 열심히 먹고 살 돈도 벌고. 나는 삶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어. 그래서 내가 의문사하면 꼭 부검해달라는 거야.


엄마를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열심히 살아갈거야. 난 오늘도 잘 지내고 있으니까, 지켜봐줘.


또 만나.


안녕.


fin.


내가 이 토끼를 두고 어딜 가겠어. 열심히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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