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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나무 May 10. 2021

책만들기

창작하라여우비 단행본 프로젝트가 드디어???!!


사실은 내가 귀찮아서 시작한 일이었다. 여섯 살 꼬마가 놀아달라고 하는데 하루 종일 놀아줄 장사가 어디 있나.


 그래서 a4용지를 반으로 서걱서걱 잘랐다. 그리고 왼쪽 귀퉁이를 스테이플러로 툭툭 집어주었다. 그다음에 꼬마에게 말했다.


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 아무 말이나 해봐.


그랬더니 잠시 고민하던 꼬마가 말했다.


엄마! 잔소리 좀 그만해!


내가 그 말을 종이에 그대로 옮겨 적었다. 꼬마는 깔깔대며 웃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했다. 나는 계속 적었고 드디어 우리의 첫 단행본인 [엄마 잔소리 좀 그만해]가 완성되었다.

(원래는 손으로 쓴 원본이 있다. 꼬마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 큰 글씨로 타이핑을 쳤다)


잠시 후 꼬마는 자신이 한번 써보겠다며 글씨를 써 내려갔다. 거실에 있는 소파를 한참 바라보더니 심각하게 쓴 [소파를 바꾸고 싶어]

(기가 막힌 반전이 숨어있다)


내가 실내용 텐트 정리 안 하면 버릴 거라고 협박했던 것을 기억하고 쓴 [텐트를 버리지 마]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 때문에 상처 받았다며 쓴 [미움]


장난감을 엄마가 왜 사냐고 안 물어봤으면 좋겠다며 쓴 이야기 [새 장난감이 좋아]


색종이 접기가 너무 좋아서 썼다는

[색종이 접기가 좋아]


이렇게 하나 둘 써 내려간 이야기책이 어제부로 6권.

이제는 종이 가위질도, 스테이플러 제본도 혼자 한다.

뚝딱 이야기책을 만들어왔다. 뭐든 시작하면 거침이 없다.


너무 귀엽다. 한 권에 열 페이지 남짓.

맞춤법 틀린 것도 너무 귀여워.

아까워서 엄마는 시작한다. 타이핑.

그리고 다시 예쁘게 묶어주어 [또미의 하루] 시리즈를 만들었다. 어쩌면 창작하라 여우비의 첫 독립출판물이 되려나. 이걸 소장하고 싶어 하시는 분이 있다면 제작해보는 수밖에 ㅋㅋ


내가 읽기에는 너무 재미있는데 문학 중년인 남편은 평가를 거부하고. 이걸 어떻게 검증받을까 하다가 우리 반 아이들(24명, 12세, 초등학생)에게 1교시 전에 읽어주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선생님. 이거 제 얘기 같아요.

정말 통쾌해요. 하고 싶은 얘기 다 하잖아!

진짜 재미있어요.


통쾌하다는 말에 나는 이거다 싶었다. 고미숙 고전평론가가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글쓰기는 거룩하고 통쾌한 거라고. 오늘 마침 국어 초고 쓰기 작업을 해보는 날인데 무턱대고 글감을 찾게 하고 싶지 않았던 내 고민이 해결되는 소리가 들린다.


A4용지를 8등분을 시켰다. 크기를 최대한 작게 해서 쓰기의 부담을 줄여보되 플롯을 부담 없이 구성해보는 거다. 아이들은 우리 딸내미의 그림책을 보더니 망설임 없이 미니북을 만들기 시작했다.


선생님. 변신해도 돼요?

시간이동돼요?

이름 그대로 써도 돼요?

성별 바꿔도 돼요?

형제 없애도 돼요?

궁전에서 살아도 돼요?

로봇랑 살아도 돼요?


다 되지!


아이들은 신나게 썼다. 필명도 짓고 싶으면 짓고, 출판사 이름도 지어보라고 했다. 점심시간까지 작품을 다 쓰되 꼬마의 작품을 자유롭게 읽어봐도 된다고 했다. 우리 꼬마의 손글씨로 완성된 미니북은 우리 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6교시 전에 작은 미니북을 거침없이 내 책상에 올려놓았다.


진격의 동희

짜증 난다

내 하나뿐인 친구들

엄마의 전화에 대한 성격 변화

수박

6교시 말고 4교시

제발 잊어버릴 것만 잊어버려!

등...


벌써 제목에서 범상치 않은 기운이 몰려오지 않는가? 생각한 것보다 열 배는 넘게 재미있었다. 이게 살아있는 글이구나. 진작 이 미니북을 만들어놓을걸. 6교시에 이 책들을 읽어주고 아이들은 이 책을 누가 썼는지 맞춰봤다. 아이들은 깔깔댔고 뒤집어졌다. 어떤 애는 울었다. 스스로 생각했다. 나는 정말 오늘 멋있는 수업을 했다고.


자뻑도 잠시,


선생님, 이거 타이핑 어떻게 쳐요? 책 만들어주신다면서요.


아.


암튼 덕업 일치 완료.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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