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명 베로니카: 퇴근길, 예수님
놀라웠던, 기억의 재구성
가슴을 턱 막히게 하는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다. 특히 아무 힘이 없었던 때의 기억은 더 그렇다. 그 기억은 종종 나를 찾아오고, 내가 원하지 않는 다툼과 마음속의 갈등을 만들어낸다. 그 속에서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며, 지금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더 힘들게 한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함께해달라고 아침마다 기도하지 않는가. 함께 계셨고, 지금도 그러하실 것이다. 그렇다면, 내 힘들었던 그 날들에도, 예수님은 사실 함께 계셨던 것 아닐까.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작은 말다툼을 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내가 못 견뎌하는 어색함과 무안함이 기억난다. 그상태로 자려고 하다가 화해를 시도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색함을 견디고, 몇마디 말을 나누다가 다시 잠이 들은 것이 전부였다.
사실은 아니었을수도 있다.
그 기억속으로 예수님을 청해보았다.
다시 그날 밤이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상한 상태로 잠을 청하는 나를 일으켜 세우셨다. 등을 받쳐 자리에 앉게 하신 뒤 잠시 호흡을 고르고 일어나게 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화해하도록 도와 줄테니 일어나렴.” 그리고 나는 일어나 걸어갔고, 겨우 몇마디 입을 떼려다 말다 몇차례 망설였다. 왜 그렇게 사람끼리 상처주는 말을 주고 받을까 생각했다. “지금은 그가 아파서 그렇단다.” 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화목하게 살고 싶은데 내 마음의 불안 때문에 잘 안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늘 너희를 미사에 초대하고 있단다. 이 가정을 내가 선택했단다. 아무 염려 하지 말렴.”(가정을 꾸리기까지 많은 여정이 있었다. 나중에 설명하겠다)
나는 10분 정도 하염없이 눈물 흘렸다. 환청이었을까? 아니다. 틀림없이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위로받았다. 그리고 머릿속의 먼지가 말끔히 씻겨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절대 내 마음속으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말이 마음속에서 살아 움직였다. 맞아, 사람은 아플 때가 있지. 그러나 나를 더 생각하는 마음이 상대방을 더 못보게 하지, 예수님은 그걸 보여주셨구나. 그리고 누구도 이루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한 가정을 이루게 해주셨지. 우리 딸도 은총속에 잘 키워주시지. 맞아. 예수님께서 내 마음속에 다녀가신 게 분명했다.
아직 남은 기억이 있다. 그 날로 나를 다시 데려갈 것이다. 기억 속에 함께 계시는 예수님을 생각하겠다. 이 글을 읽으시는 당신도 그렇게 해보기를 바란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 그 어떤 존재라도 좋다. 아무도 없다면, 믿지 않더라도 예수님을 초청해보기를 권한다. 예수님은 당신을 위로하시며, 치유하시고, 함께 계실 것이다. 당신의 모든 기억이 새롭게 다시 바뀔 것이다. 나에게 일어나는 많은 일이 사실은, 예수님의 자녀로 삼기 위해 나를 이끌어주시는 여정이라는 새로운 기억으로 말이다.
fin.
이 딱지를 뽑으면 해처럼 얼굴이 밝아진다고 한다(feat딸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