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좋아하는게 죄는 아니잖아(2/2)
방학, 시골집, 혹은 대리 효도
그날, 아이는 슬펐다. 동생이 엄마품에 안겨있던 것을 생각해보면 적어도 형아인 아이의 나이는 네다섯 살이었을 거다. 아빠는 말했다.
너라도 가야지. 할머니 할아버지가 얼마나 외롭고 적적하시겠냐!
다섯 살 먹은 아이는 눈물을 꾹 참고 할머니 손에 이끌려 버스를 탔다. 동생은 엄마손을 꼭 붙들고 함께 있었다. 동생은 왜 엄마와 있어야 할까? 아이와 고작 한 살 차이인데. 생각해보니 그랬다. 아이가 기억이라는 것이 생길 무렵이니 다섯 살 정도일 테지. 엄마는 아빠와 다투면 동생만 데리고 어딘가로 피신했다. 그러면 아이는 아빠 대신 유리가게에서 전화를 받았다. 아빠 출 땅 가셔 떠요. 하면서 말이다. 밤이 되면 엄마가 그리워 쿨쩍이며 잠을 청했다. 그러면 아빠는 아이의 등짝을 퍽 때리며 말했다.
너는 엄마가 그렇게 좋냐!
아이의 엄마는 아빠와 다툴 때마다 동생만 데리고 여러 번 집을 비웠다. 아이는 그때마다 그 무서움과 그리움을 느꼈다. 그래서 어지간한 이유가 아니고서는 엄마와 정말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빠가 무서웠다. 그래서 버스에 올라탔다. 할머니 옆자리 창가 쪽에 앉아 점점 멀어지는 화곡동을 바라봤다. 또 눈물이 흘렀다. 아빠가 닮은(?) 아니 할머니가 아빠를 닮은(?) 아무튼 아빠 얼굴에 쪽진 머리를 한 할머니는 아이에게 말했다.
너는 네 엄마가 그렇게 좋냐!
아이는 자다 일어나다 하며 할머니 손에 이끌려 정류장에서 정류장으로 이동했다. 분명히 세밤자면 데리러 온다고 했으니 그 말 믿고 가는 거다. 아이는 할머니와 함께 화곡동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서울역으로.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논산역으로. 논산역에서 버스를 타고 부여읍내로. 다시 버스를 타고 부여하고도 읍내에서 한참 벗어난 석성에 도착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아이에게 잘해주셨다. 평범한 할머니 할아버지였다. 논밭일을 하시다 보니 아이는 티브이도 안 나오던 그 집에서 하루 종일 혼자 있거나 마당을 어슬렁거리거나 했다. 저녁이 되어 집으로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시면 같이 저녁을 먹었다. 반찬은 새우젓과 계란찜이었다. 할아버지는 오시면 텔레비전을 틀고 9번채널을 잘 때까지 틀어두셨다. 아이는 생각했다. 두밤만 자면 오시겠지. 내일 오시겠지. 하지만 네 밤, 다섯 밤, 열 밤이 지나도록 석성 그 집의 오래된 전화기는 울릴 줄을 몰랐다. 아이는 생각했다.
나는 버려졌구나.
아이의 슬픈 마음을 달래주는 이벤트도 종종 있었다. 그 동네를 휘젓는 모자라지만 착한지는 의문스러운 형이 있었다. 아이 혼자 있는 것을 파악했는지 어느 날 그 형이 아이를 번쩍 안고 어디론가 뛰어갔다. 마침 그 광경을 보던 누군가가 구해주어서 아이는 납치를 당하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밤에 자는 중에도 커다란 그림자가 집 앞으로 와서 방문을 덜컹이 기도 했다. 할머니는 그림자를 향해 저리 가! 저리 가! 하고 외쳤다. 그 형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긴긴밤 심심하지 않은 날도 있었다. 아이는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사실 그 아이도 1편에 나온 여자아이처럼 시간을 죽였을 것이다.
보름이 지난 어느 날. 아이는 할머니가 주신 엿장수 가위로 한자로 만세력이 적힌 뻣뻣한 달력을 오리고 있었다. 시간을 죽여야 하므로 최대한 천천히. 그날은 공원을 만들었다. 사람이 의자에 앉아있기도 하고 걸어 다니기도 하는, 꽤 괜찮은 실력의 조형예술품이 탄생하는 순간.
시골집 문이 열렸다.
아이가 할머니와 부여에 오던 방법과 똑같은 방법으로 기차와 버스를 타고 왔을 아이의 아빠, 엄마, 아이의 한 살 어린 동생이 들어왔다. 동생은 엄마에게 업힌 채로. 아이는 떠나던 날처럼 눈물을 흘렸다. 아빠는 아이에게 다가와 말했다.
이 새끼는 재수 없게 보자마자 울고 지랄이야. 네가 울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얼마나 속상하시겠냐!
이 '효도'는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는 아이 혼자, 한 살 어린 동생이 국민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는 함께 논산 큰댁에 맡겨지는 걸로 이어졌다. 중학교 2학년까지는 꼬박꼬박 아이의 방학을 집이 아닌 곳에 반납했다.
아이는 종종 생각했다. 동생은 자신과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았고 분명 본인과 비슷한 시기에 걷고 뛰고 했는데 일곱 살이 될 때까지는 엄마와 왜 떨어진 적이 없을까. 꽤나 부러운 일이다. 그리고 동생이 효도에 동참하기 시작할 때는 운 좋게도 형이 늘 함께였고 말이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아이는 알았다. 아빠가 '할머니 외로울까 봐' 아이에게 대리 효도시킨 것임을. 아이의 엄마가 아이만 놓고 동생만 데리고 간 것도 아이의 '아빠가 외로울까 봐'아이에게 대리 효도를 시키고 두려움도 견디게 했음을. 아이에게 트라우마를 만들어준 이 중요한 사건 속에 아이의 마음을 생각한 그 어떤 어른도 없었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아이는 그것을 아프게 아프게 받아들이며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된 그 아이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잘 살아줘서 다정한 가장으로 따뜻하게 한 가정을 보살피고 있어서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 정말이지 이 아이가 그 혹독한 초년시절에 죽지않고 버텨주고 성실하게 일하고 공부했고, 싹싹하지 못한것과 친척들이랑 데면데면한것 까지 나와 비슷해 이렇게 살고있고, 우리 이야기가 이어지는것 아니겠는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Fin.
지난 편에도 썼지만 아이를 낳아보면 알 거라는 부모님의 말도 케바케 같다. 우리 딸을 키워보니 더 애틋하고 사랑스럽다. 어딘가 부모 없는 곳에 본인이 원하지 않는다면 절대 보내지 않겠단 마음이 더 확고해진다. 뭐, 주일학교 캠프며 학교 수련회 몇 번 다녀오면 다 커버리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