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fine day

by 래인

* 이 글은 2022년 9월 8일에 쓴 일기를 가져온 것입니다.


태풍 힌남노가 지나갔다. 그 위력이 역대급이라고. 단단히 대비한 덕분인지 생각보다 피해는 크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누군가는 분명 이로 인한 상실의 슬픔을 겪고 있을 것이다.


태풍이 오기 하루 전 제주에 출장을 왔다. 사전답사 때문에 본 행사 하루 전 내려왔는데, 그마저 제주행 비행기에 탑승하기 직전 답사하기로 한 호텔 측에서 ‘급히 잡힌 행사가 생겨 내일 오전에 방문해달라’는 전화가 와 무산되어 버렸다.


생각지도 않은 자유시간을 얻었다. 그마저도 숙소에 도착하고 밥을 먹고 이리저리 시간을 보내니 어느덧 하루가 끝나간다. 내일부턴 일을 해야하니 4년 만에 온 제주를 제대로 감상할 여유도 없겠다 싶어 전동퀵보드를 타고, 이미 흩뿌리기 시작하는 힌남노의 전야제 축복(?)을 온몸으로 맞으며 낯선 도로를 뚫고 제주 이호테우 해변에 도착했다.


Untitled.png 2022년 9월 1일 목요일 석양이 깃든 이호테우 해변


불타고 있는 하늘은 장관이었다. 타이밍이 좋다는 생각도 들었다. 살면서 이토록 선명하게 타오르는 주홍빛 하늘은 처음 봤다. 아, 태풍이 오기 직전이라 그런 걸까?


이유가 뭐가 됐든, 거대한 태풍을 앞두고 역설적이게도 가장 아름답게 지는 석양을 보고 있자니, 처연하면서도 씁쓸한 감정이 밀려오는 파도가 되어 내 발 끝을 적신다.


인생의 태풍이 오기 직전 어쩌면 우리의 삶은 근래 가장 아름답게 빛날지도 모른다. 그건 태풍을 앞두었기에 더 소중한 것이겠지. 그래서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아름다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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