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끼니를 잊은 치매 노인도 이것만큼은 기억했다.
지난 주말 본가를 갔다.
오랜만에 본 외할머니는 볼 때마다 눈에 띄게 쇠약해진다. 처음에는 경미했던 치매 증상은 조금씩 심해졌다. 했던 질문을 잠깐 사이에 반복해서 물어보기 때문에 계속 같은 대답을 처음인 것처럼 해야 한다. 엄마 말로는 자신을 돌보는 기본적인 활동도 어려워지셨다고 한다. 식사는 문자 그대로 밥 한 숟갈을 겨우 먹고 배불러서 못 먹겠다고 하고, 누군가 갈아입혀 주지 않으면 계절에 맞지 않는 옷, 세탁 안 된 더러운 옷도 그냥 입고 있기 일쑤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잊고 “여기가 어디고?”하고 종종 질문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신기한 건 자기 자녀와 손주들은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증손자도, 그리고 강아지 손자도 알아보고 반가워하며, 오지 않는다고 울며 찾기도 한다. 한 달에 한 번 겨우 볼까 하는 내 얼굴도 보자마자 “아이고 oo이 왔나!”하고 반기며 안겨오신다. (그리고 울먹이며 보고 싶었다고 하는 것이 레퍼토리다.)
지난 토요일 저녁, 할머니 집을 갔더니 노치원이라고 하는 주간요양보호소에 막 다녀온 할머니가 외출복 차림 그대로 멍하니 소파에 앉아 무슨 내용인지도 모를게 분명한 TV화면을 보고 있다.
“할머니, 노치원 갔다 언제 왔어요?”
“어. 내도 방금 왔다.”
“손 씻었어요?”
“손? 아니?”
“외출했다 오면 손 씻어야지. 배웠잖아요.”
마치 3살, 5살 난 조카한테 말하듯 할머니에게 말한다. 그게 더 효과적인 의사 전달이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코로나19 시대를 겪은 이 노인은 손 씻기라는 의무가 얼마나 막중한 것인지 확실히 알고 있는지 소파에서 몸을 서서히 일으킨다.
“옷 벗어야지요.”
외투와 목에 둘린 얇디얇은 스카프-아마도 봄에 매는 것이 아니었을까?-를 벗기고 할머니 손을 잡고 욕실로 손을 씻으러 가는데, 할머니는 그 몇 발짝도 힘겨워한다. 두 발짝 걷고 서서 “아이고 힘들다”하며 거친 숨을 몰아쉬고, 또 두 발짝 겨우 떼서 겨우 욕실 세면대 앞에 도착했다.
어디까지 도와야 할까 고민하던 찰나 할머니는 알아서 수도꼭지를 올리고 손을 적신 뒤 비누칠을 시작했다. 내가 너무 할머니를 과소평가(?) 했나 보다. 노치원에서 배운 것이 분명한 듯 손가락 사이사이 꼼꼼하게도 비누칠을 하더니 물로 헹궈냈다. 비누거품을 다 씻어내자 할머니는 흐르는 물을 양손으로 받아 수전에 끼얹으며 손으로 수전을 닦는다. 새삼스러울 정도 평소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내 기억 속의 외할머니는 항상 뽀글뽀글한 아줌마 파마를 하고 있고, 분홍빛 화려한 무늬가 그려진 옷을 입고, 약간은 구부정한 작은 체구를 부지런히 움직이며 손으로 방바닥을 훔치며 머리카락이나 먼지를 쓸어 담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느그 할머니 엄청 깔끔하다”라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쉬지도 않고 곳곳을 청소했다. 다소 예민하게 잔소리를 해대지만, 맏손녀인 내가 좋아하는 비빔밥을 본인이 손수 담근 먹음직스러운 고추장 한 숟가락 척 올려 주고 행주로 이곳저곳 훔치느라 분주한 나의 조그마한 외할머니.
80대 치매 노인이 된 내 할머니는 본인이 밥을 먹었는지, 자고 일어났는지 자려고 한 것인지,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딘지도 종종 잊어 먹었다. 하지만 곳곳을 닦아 대던 몸에 밴 습관만큼은 잊어버리지 않은 모양이다. 손 씻기는 까먹어도 손을 씻은 뒤 세면대 수전을 닦는 일은 수십 년 간 반복되어 결국 몸에 각인되어 버린 것이다.
내 기억 속의 조부모는 오직 외할머니뿐이다. 세 살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는 어떤 분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내 세계 속 조부모는 외할머니뿐이었다.
내가 성장한 만큼 할머니는 늙어갔다. 모든 이에게 정해진 바대로 언젠가 할머니와 이별하게 될 날이 있음을 안다. 하지만 할머니와 이 땅에서 이별하게 되면, 내 세계에서 조부모는 더 이상 없다. 유일무이했던 할머니와 사는 동안에는 만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있는 동안 잘해야지, 하면서도 자꾸 쇠약해지고 소통이 어려워지는 할머니를 보는 것은 부담스럽다. 특히 결혼하라고 얘기하는 통에 더 어렵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아야 한다. TV 앞 소파에 묻혀버릴 듯이 앉아있는 그 모습을 볼 수 있는 날이 점점 줄어드니까. 그 소파 옆에 가만히 앉아 말없이 TV 화면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