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 나요. (누가요?) 내 최애가.
질투.
덕질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마주한 낯선 감정이었다.
같은 팬을 질투했다면 낯설 것도, 예상치 못할 감정도 아니겠지만 내게 이 질투의 감정이 낯설었던 것은 그 대상이 다름 아닌 바로 '최애'였기 때문이었다.
아껴주시고 밀어주시고 보듬어주시고 성원해 주셔도 모자랄 최애에게 질투라니. 대체 이 무슨 어폐란 말인가?
시작은 이렇다.
덕질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던 시기와 맞물려 내가 덕질하는 그룹이 소위 커리어하이를 찍기 시작했다. 거의 고점에 들어갔다고 생각했는데, 어깨 정도는 되었던 모양이다. 덕질 초기의 열정에 개인 취미와의 일치가 시너지를 내자 나는 미친 듯이 덕질 대상인 그룹의 공연을 보러 다녔는데(물론 현재 진행형), 공연을 보러 갈 때마다 공연장이 커지고, 회차가 늘어나고, 관객 수가 많아지는 것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점점 커지고 화려해지는 무대 위에 서는 나의 최애는 어떤 때는 무척이나 멀리 있는 존재 같았다. 당연히 실제 거리상으로 멀기도 하지만, 뭔가 점차 손에 닿을 수 없는, 정말 하늘 위에 빛나는 별이 되어 가는 것 같았다. 여전히 무대 위에서 최선을 다하고, 진심과 애정이 가득 담긴 얼굴로 관객석을 보며 소통하는 건 똑같은데도 말이다.
여느 때와 같은 공연 날, 스탠딩존에서 미친 듯이 뛰어논 뒤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무대 위의 최애를 바라봤다. 떨어지는 핀 조명 아래 그는 점점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 모든 것도 나와 같은 팬들의 덕분이라며 진심 어린 소감을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난 기묘한 내 감정의 정체를 확인했다.
다름 아닌 질투였다.
비슷한 또래인 나의 최애는 오랜 시간을 버티고 견뎌 마침내 본인의 업에서 누구나 인정할 만한 성취를 누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성취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존재였다.
마침 그때는 한참 당시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깊었던 시기였다. (그리고 여전히 진행 중인 게 미칠 노릇이다.) 그러니 대조적으로 점점 커리어의 정점을 매번 경신해 가는 최애가 동경의 대상이면서도, 인간 대 인간으로서 속 깊은 곳에서는 질투라는 감정이 피어올랐던 모양이다.
그를 향해 환호와 박수를 보내면서도 내 목구멍 어딘가에는 가시가 걸린 것 같았다. 마음껏 그의 성취를 함께 즐거워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나 좋아하고 환장해 마지않는 그의 환한 미소를 보면서도 마음 한편이 어딘가 막혀있는 기분이었다.
좋아하면서도 질투를 느끼는 이 감정의 기묘한 동거는 한동안 지속됐다. 언제 괜찮아졌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내가 이직에 성공하며 잠시 동안 '성취감'을 느끼는 동안이었다. 공연 내내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느라 최선을 다해 일하며 성실히 살아낸 나'에게 주는 선물을 만끽할 수 있었다.
성취하고 싶은 욕망이 현실의 벽에 부딪힐 때 느끼는 좌절감은 덕질에도 고스란히 담겼다.
결국, 이 질투는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무엇인가 성취하고 싶은 나의 욕망이 현실의 벽에 부딪힐 때 느끼는 좌절감은 덕질에도 고스란히 담겼다. 이것이 덕질하면서 느낀다는 '현타'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행복한 덕질을 하기 위해선 소위 '현생'부터가 행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다. 어떤 사람들은 덕질을 현실의 도피로 택하기도 한다. 덕질의 대상이 누구냐 혹은 무엇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특히 아이돌을 덕질하는 일은 결국 실존하는 사람이 직업적으로 성장 혹은 성취하는 모습을 응원하는 일이기에 더욱 팬의 현실세계와 밀접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결국 내 현실이 불만족스럽고 괴로우면 덕질도 마음 편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다시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그즈음 간 공연은 역대급으로 큰 규모였다. 내 최애를 비롯한 멤버들 또한 오랜 시간 꿈꿨던 공연장과 무대였고, 대중과 언론이 그들의 성공을 조명했다. 뉴스와 방송들은 차근차근 쌓아 올린 그들의 성공 서사를 감동 스토리로 다루었다.
무엇보다 부러운 것은 자신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세상이 인정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현재를 살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름 덕질이 길어지니 최애를 향한 질투도 처음처럼 신산하지는 않다. 하지만 전혀 사라진 건 아니다. 그의 통장에 찍힐 수입 규모도 부럽지만, 사실 비교할 수 없이 더 부러운 건 나의 최애는 현재 자신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그것을 세상이 인정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을 살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이 질투는 내 현실에서 비롯된 감정이다. 그렇기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덕질을 하지 않았다면 평생 경험하지 못했을 감정일지도 모른다. 덕심과 질투가 동시에 가능한 이 기묘한 감정의 팔레트—그 자체가 어쩌면 덕질만의 특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