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을 앞두고 길을 잃다

어디로 가야하죠 아저씨

by 래인

난 참 불안이 많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 불안은 언제나 수많은 생각을 같이 데려온다.


이렇게 생각이 많은 성향 덕분에 단어 하나, 용어 하나의 의미를 곱씹고, 문장 사이의 의도와 맥락을 해석하고, 말의 결을 붙잡고 들여다보는 일을 곧잘 한 것 같다.


그래서 속도보다는 의미, 효율보다는 가치를 중시하는 업을 오랫동안 했다.


그러다 반년 전쯤, 나는 완전히 다른 세계인, 더 많은 매출과 수익이 미덕인 영역에 발을 반년 전쯤 발을 들이게 됐다.

(그럴듯하게 풀어썼지만, 공익섹터에 있다가 영리섹터로 이직을 했다는 얘기다.)


여기에서도 본격적인 수익 창출에 기여하는 직무는 아니지만 아예 다른 문법과 맥락을 가진 분야에서 일하는 것은 마치 오랫동안 살던 모국을 떠나 해외에서 살게 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언어도, 사고방식도, 문화도 달랐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용어도 낯설었지만, 일하는 방식은 더욱 낯설었다.


무엇보다도 외부 사건을 해석하는 틀이 달랐다.


나는 오랫동안 '가치, 진정성, 신뢰'라는 언어로 세상을 봐왔다. 그런데 이곳은 '매출, 성과, 수익'이라는 언어가 당연한 기준이었다.

내가 익숙한 언어는 후자를 위한 장식 같기도 했다. 익숙한 언어가 사라지니 지금껏 나를 구성해 온 언어도 함께 희미해졌다.


비영리섹터에서 홍보 직무를 수행했던 경험 중 일부는 영리섹터에서도 필요로 되었기에 영역을 바꾸는 이직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스스로를 '홍보 담당자'로 정의 내리고 있었는데, 영리 기업에 들어오니 사람들은 나를 '홍보마케터'로 인식했다.


stephen-phillips-hostreviews-co-uk-shr_Xn8S8QU-unsplash.jpg 홈페이지 CTR 올리고 싶어요..(출처: 사진: Unsplash의 Stephen Phillips - Hostreviews.co.uk)


내게 있어 홍보와 마케팅은 엄밀히 달랐고, 마케팅은 해본 적 없는 미지의 영역이었으며, 미수복 지역이었다. (심지어 수복할 생각도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 뜻 없이 용어들을 사용하는 것 같지만 용어가 가지는 프레이밍 효과는 그들의 생각보다 대단하다.


회사에서 '홍보마케터'로 나를 정의 내린 순간 나는 회사에 더 많은 수익을 가져오는 마법을 부려야 하는 사람으로 기대되기 시작했다.

(분명 내가 본 직무기술서(JD)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는데... 이건 어찌 된 일일까.)


내가 아는 마케팅이라곤 매출을 많이 내면 성공이고, 아니면 실패인 이분법의 영역이었다.

(물론 그리 단순하지 않을 거라는 건 안다. 하지만 대략적으로는 그렇게 보였다.)


비영리섹터는 의미, 가치, 진정성, 신뢰 이런 보기 좋고 듣기 좋은 용어들을 믿고 일하면 그것이 실제로 거의 통용되는 곳이다.

(비영리섹터도 생존을 해야 하니 효율과 수익률이 중요한 부분도 있긴 하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때부터 고통스러운 깊생(=깊은 생각)이 시작됐다.

과연 이건 내가 하고 싶은 일일까, 아니, 그전에 이걸 내가 할 수 있는 일일까. 이게 맞는가, 혹은 옳은가.


누군가에겐 답답하게 느껴질 생각이라는 걸 안다.


"뭘 깊이 고민하고 있어? 먹고살려면 해야지."
"배우면 되지, 적응해서 흉내라도 내면 되지."


물론 그 말들도 이해된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흔들리듯 반복했다.

하지만 내 안에 늘 먼저 떠오르는 문장은 언제나 이것이었다.


"이게 옳은가?"


내가 살아오고 추구한 기준에 옳은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으로서 이 고민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수많은 생각으로 뒤범벅된 채 이른 새벽에 깨는 고통스러운 시간이 이어졌다.


난 잠정적으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표범은 자신의 무늬를 바꿀 수 없다.(A leopard cannot change its spot.)'
chuttersnap-MpxAiNDevjU-unsplash.jpg 출처:Unsplash의 CHUTTERSNAP


배가 덜 고파서, 덜 절박해서 내린 생각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여전하다.

다른 수입 파이프라인이 있어서도 아니고(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월급쟁이일 뿐이다), 나이나 열정이라는 기간제 자산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쌓아온 커리어가 어디에서나 찾을 법한 종류의 것도 아니다.


조금이라도 현실적으로 스스로를 바라보면 이건 굉장히 '노답' 그 자체인 결론이다. 나를 잘 알고 아끼는 사람들 중 일부조차도 순전히 나를 향한 애정으로 이 결정을 지지하면서도 우려 섞인 마음을 거두지 못한다.


나의 앞길은 어떻게 될까?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전혀 모른다는 것. 그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나 지금의 시간 덕분에 나는 무엇을 잃고 무엇을 지키고 싶은지, 어떤 것으로 움직이는 사람인지 더 확실히 알게 됐다.

게다가 이만큼 나이를 먹고도 나 자신을 여전히 잘 모른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마흔을 앞두고 길을 잃었다는 건,

어쩌면 제대로 된 길을 찾을 수 있는 드문 기회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