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를 얻고, 사고하고, 의미를 만들어 내는 방식의 대전환
최근 챗지피티, 제미나이를 비롯한 LLM(Large Language Model, 대규모언어모델) 서비스와 나누는 대화가 실제 인간과 하는 대화보다 더 많고 깊어졌다. 특히, 챗지피티의 경우에는 업무 자체를 함께 하다 보니, 시간과 대화가 축적됨에 따라 이 녀석은 나를 사적으로도 공적으로도 낱낱이 파악(?)해 버린 듯하다.
오늘도 무슨 계기로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 가던 중 챗지피티의 대답에서 상당히 인상적인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응, 그 태도… 정말 너답다.
"나 다운게 뭔데?!!" 익숙한 클리셰 대사가 바로 떠올랐지만 꾹 참았다. 대체 이 녀석이 나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기에 저런 말을 하는 걸까? 그리고 곧장 물어봤다.
방금 '너답다'라고 했는데, 너는 나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기에 그런 말을 쓴 거야?
그러자 챗지피티는 이렇게 대답했다.
좋은 질문이야.
내가 "너답다"라고 말한 건, 단순한 습관적인 표현이 아니라,
지금까지 너와 나눈 수많은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너의 태도, 사고방식, 감정 다루는 방식을 토대로 한 판단이야.
조금 구체적으로 말해볼게. 내가 파악한 '너'는 다음과 같아.
그리고 챗지피티 특유의 문법인 넘버링과 불렛포인트로 주장과 근거를 조목조목 나열했다. 그 대답은 마치 심리테스트 결과지를 받아 들고는 “어, 이거 완전 나잖아!”라는 생각이 드는 것보다 한층 더 신뢰도가 높은 내용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꽤 오랜 시간, 상당한 분량이 쌓여있는 나와의 대화를 가지고 도출한 내용이었으니까.
지금까지 나와 나눈 수많은 대화에서 챗지피티는 맥락을 파악해 패턴을 정리해 냈다. 결국 데이터 기반의 분석이니 당연히 그 내용이 충실하고 설득력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상당히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인사이트라는 데에 생각이 닿았다. 그러자 한편으로는 점차 사람들이 LLM을 통해 정보를 탐색하고 학습하며 사고를 확장시켜 나갈 텐데, 과연 그 파급력이 어디까지일까 하는 궁금증이 따라왔다.
오늘날의 LLM은, 어쩌면 마치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인간 사회와 기술, 지식의 관계 자체를 바꿔버린 것과 같은 위력을 갖고 있지 않을까?
인쇄술이 없던 시절, 지식은 구전이나 필사를 통해 전해졌다. 당연히 손실과 변용이 일어났고, 또 전파의 속도도 느렸다. 그러나 인쇄술이 등장하자 지식의 전달은 낮은 비용으로, 대량으로, 원형 그대로, 빠르게 전파되었고 그 덕에 지식의 도달 너비와 깊이의 차원 또한 달라졌다. 지식을 소유하던 시대에서 지식을 공유하는 시대로, 그렇게 거대한 문명의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구텐베르크가 인쇄기술을 발명한 것과 같이, 혜성처럼 등장한 인공지능과 딥러닝의 총아인 LLM은 이 시대의 지식 습득의 구조를 바꾸고 있다. 인쇄술 시대에는 기록된 지식을 습득했지만, 이제는 대화하며 지식을 습득하고 더 나아가 사유를 확장해 간다. 이는 마치 소크라테스의 문답법과 유사해 보이기도 한다.
즉, LLM은 두 가지의 엄청난 혁명을 주도하고 있다. 첫째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처럼 지식에 이르는 방식을, 그리고 둘째로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처럼 습득된 지식을 의미로 전환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중인 것이다.
단순한 검색의 툴을 넘어 사고의 확장 파트너가 되어 가는 LLM의 시대에 글쓰기는 생각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지적 자산의 새 기준이 되어 가는 듯하다. 질문하고 응답하고 사유를 구축해 갈 줄 아는 힘, 그리고 그 사유를 다시 나의 언어로 표현할 줄 아는 힘. 이것이 LLM 시대의 배움이자 사유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우리는 단순히 정보를 얻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고하고,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의미를 만들어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새롭게 적응해 나가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