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을 할수록 이상하게 더 어려워지는 게임
인생의 경험치가 많이 쌓이기 전에는 대부분의 것이 낯선 것이었기에 그만큼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언제 어른이 될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 시절의 나는 어렴풋이 ‘지금이 제일 좋은 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학창 시절이 가장 좋은 시간이었고, 대학 시절이 가장 좋은 시간이었다.
그때는 삶이 좀 더 쉬웠다. 아니, 정확히는 덜 복잡했다. 학생에게 주어진 과업인 공부 또한 범위가 정해져 있었고 방법도 많이 알려져 있었다. 정석대로 성실하게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그 성실이 어려웠을진 모르겠지만, 요령 없는 내겐 그저 누군가가 지시하는 대로 이행하면 그 성과가 나타나는 방식이 제일 편했다. 그리고 노력에 대한 정기적인 평가가 있었고 그 평가를 통해 성과는 객관적인 지표로 매겨져 눈앞에 나타났다. 내가 열심히 공부했다면 좋은 결과가 나왔고, 내가 제대로 하지 않으면 잘 나오지 않았다. 단순했다.
누군가의 주장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었다. 나의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대학원부터 달라졌다. 더 이상 내가 해야 할 공부의 울타리가 어디까지인지 알기 어려웠다. 하려면 한없이 해야만 했고, 하지 않으려면 아예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정답이 뭔지 알기 어려워졌다. 누군가의 주장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었다. 나의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밥벌이를 시작하자 더욱더 삶은 복잡해졌다. 정답이라는 게 아무 의미가 없는 단어로 느껴질 만큼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방식의 삶이 있었다. 그런 다양한 사람과 같은 공간, 같은 시간, 같은 목표를 위해 일하면서 맞부딪히는 수많은 이해관계에 그대로 노출됐다. 나의 득이 누군가에겐 실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보다는 누군가의 득이 나의 실이 되어 나의 안온한 일상을 당장 침범하는 일이 된다는 것은, 늘 날 선 채 호구 잡히지 않으려는 요령을 터득해 가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상처받기도 했지만, 사실 내 마음을 더 힘들게 한 것은 내가 누군가의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알면서도 내 상처를 최소화하기 위해 가만히 지켜보는 나의 비겁함이었다.
나를 더 힘들게 한 것은 누군가의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알면서도 내 상처를 최소화하기 위해 가만히 지켜보는 나의 비겁함이었다.
나이를 먹고 소위 연차가 차고 내가 가르치거나 이끌어야 될 사람들이 생기자 더욱 삶은 단순함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익숙해질 만하면 낯선 것들이 몰아닥쳤다. 예전처럼 빠르게 돌아가지 않는 머리와 뜨거워지지 않는 가슴을 붙잡고 버둥거려 보지만 그럴수록 점점 도태되어 가는 듯한 두려움만 강해졌다. 그렇지만 약한 소리를 할 수 없는 사회인으로서의 자아는 더욱 비대해져 갔다. 잘해야 한다. 못하는 것은 어떻게든 극복해내야 한다. 그것이 나에게 주어지는 월급값이니까.
삶은 점점 어려워진다. 레벨이 오를수록 깨기 어려워지는 스테이지를 마주하는 기분이다. 분명 그때의 나보다 지금 내가 더 많은 경험과 지식을 체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삶이라는 스테이지의 난이도는 높아진 것 같다. 이 정도면 내가 레벨 업하는 속도보다 스테이지의 난이도가 더 빠르게 올라가는 게 아닐까.
교착상태에 빠진 스테이지에서 뒤로 갈 수도 없다. 인생은 앞으로만 가는 횡스크롤 게임이니까.
이 게임에서 나는 어떻게 될까. 어느 스테이지는 한참을 깨지 못하고 반복해서 시도하고 있는 것 같다. 그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이 지금 이 스테이지에서 교착상태에 빠졌지만, 그렇다고 뒤로 갈 수도 없다. 인생은 앞으로만 가는 횡스크롤 게임과 마찬가지이므로.
타인의 마지막 스테이지가 나의 것과 같진 않을 것이다. 나의 마지막 스테이지가 타인의 것과 같지 않듯이. 그러니까 우리 모두는 각자의 횡스크롤 게임을 하고 있다. 어느 정도는 비슷하긴 해도 완전히 똑같은 게임은 아니다. 그런데도 같은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끊임없이 남의 진행단계와 나의 것을 비교하는 데서 이 게임의 비극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의 스테이지가 나보다 앞서는 것 같고, 혹은 나보다 뒤처진 것 같아도 그건 그의 게임이지 나의 게임이 아닌데.
나의 게임과 타인의 게임은 같지 않다. 그걸 기억해야 파이널 스테이지에 결국 도달할 거다.
언제쯤이면 자유로워질까. 알 수 없다. 옆 사람 게임에 눈이 돌아가더라도 스스로를 다시 다잡기를 반복하는 수밖에. 그것이 내 게임의 파이널 스테이지에 다다르기까지 지속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인생이라는 이 어려운 게임을 그나마 해내려면 나의 게임과 타인의 게임이 같지 않음을 계속해서 기억해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