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라는 낯선 주제를 생각해 보는 신박한(?) 방법
남한 북한 이야기를 하는데 웬 층간소음인가 싶을 테다. 최근 남한과 북한의 관계가 마치 공동주택에 아랫집 윗집으로 살고 있는 사이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서로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각자 독립된 삶을 영위하지만, 윗집에서 아이가 뛰거나, 밤늦게 악기를 연주하거나, 발망치라도 쿵쿵 울려대는 날에는 어김없이 ‘아, 위에 누가 살고 있구나’하고 깨닫게 되는 것처럼, 남한에게 있어 북한이라는 존재도 그러하다.
평소에는 우리의 분단 현실이 불편한지 어떤지 전혀 깨닫지 못한다. 핵무기를 개발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이나 순항미사일과 같은 이름만 들어도 무지막지한 무기의 시험발사를 하며, 남조선 괴뢰도당들의 비행장을 타격하니, 기습 발사 모의시험을 하니 해도 우리는 그저 그런 평범한 날들과 같이 일상을 영위한다. (심지어 주식시장마저 고요하기 일쑤다!)
그러다 어느 날 그 무력도발이 우리 영토에 닿아 우리 국민의 희생을 초래하거나, 무단 방류된 황강댐 물이 임진강에 들이닥쳐 경기 북부 지역을 위협하거나 하는 날에야 비로소 북한이라는, 아주 불편한 관계의 윗집이 있음을 체감한다. 그리고 우리도 가만있지 않고 작게는 유감표명부터 크게는 대응사격 등과 같은 군사적 대응까지, 물론 주권국가라면 당연히 해야 할 국가 안보를 위한 대응을 한다. (독자제재도 하고, 성명도 내고, 한미연합훈련도 한다.)
하지만 이런 강대강 대응은 마치 층간소음으로 다투는 윗집과 아랫집처럼 층간소음과 보복소음을 치받으며 서로에 대한 원망과 분노, 불신만 쌓이는 과정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먼저 시끄럽게 한 윗집이 당연히 잘못한 것이며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보복소음으로 계속해서 대응한다면 아랫집을 괴롭히는 층간소음 문제 자체를 해결할 수 있을까? 당장은 속 시원한 해법이 눈에 먼저 들어오겠지만 소위 그 ‘사이다’가 정말 아랫집의 괴로움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답일까?
은유를 위해 꺼낸 층간소음 그 자체도 그 해결책이 뾰족하게 있어 보이지 않는다. 아파트 관리사무소부터 환경부가 운영하는 이웃사이센터까지 각종 중재를 통해 해결하려는 시도가 있지만 그 중재가 그리 실효적이진 않은 듯 하니 말이다.
결국 세간에서 종종 만나게 되는 미담들이 정답은 아닐지언정 '해답'일까 싶은 생각이 든다. 윗집과 아랫집 간 서로 인사를 나누고, 먼저 미안해하고, 감사를 표하며 상호 소통과 이해로 접근하는 방식으로 생겨 난 훈훈한 이야기들 말이다. 이렇듯 남북한도 만나고, 서로를 이해하려 하고, 대화하며 풀어가는 것이 가장 평화로운 방법이 아닐까 하는 데 생각이 미친다. (물론 윗집의 강경한 태도를 보면 쉽지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오랜 시간 층간소음과 보복소음으로 이미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윗집과 아랫집은 이제 얼마나 상대방이 파렴치한 행동을 했는지 주장하기에 급급하다. 처음에 내심 가졌을지도 모르는 상대에 대한 미안함이나 이해해 보려는 배려심도 이제는 사라지고, 상대방의 몰상식과 몰염치, 인간 이하의 수준을 비난한다. 비난은 점증하고 미움은 배증한다. (어라, 이거 꽤나 익숙한 이야기 아닌가?)
물론 한반도라는 공동주택에서 윗집인 북한이 먼저 과일을 사들고 아랫집인 남한에 찾아와 양해를 구할 가능성은 거의 전무할 테고, 더욱이 분단-대립구조와 층간소음은 매우 다른 층위의 문제 이긴 하다. 그래도 남북이 한반도라는 공동주택을 공유하며 사는 것과 다름없기에 층간소음과 보복소음으로 치고받기만 한다면 결코 문제 자체는 해결될 길이 요원하다는 원론적인 고찰을 하게 된다.
결국 윗집과 아랫집이 만나고 대화하고 소통하며 상대를 이해해 보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화해가 어쩌면 가장 나은 해결방법이라는 것만큼은 남북관계에 있어 고민할 거리를 던져주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