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똑, 좋은 말씀(?) 전하러 왔습니다. | 아뇨, 가세요 제발.
우울함이 불현듯 찾아올 때가 있다. 예고도 없이 소리도 없이.
사실 예고가 없다는 건 조금 거짓말일 테다. 왜냐하면 사실 나는 호르몬의 노예라 월경주기와 함께 이 불청객이 찾아오는 때가 많으니까.
우울한 것은 슬프거나 힘든 감정과는 다소 다르다. 바닥을 알 수 없는 진창에 빠져버린 기분과도 비슷할까. 무엇인가 해야하는데 할 수 없다. 그리고 할 수 없는 내 자신의 무기력함에 환멸을 느낀다. 왠지 의지로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데, 패배해 버리는 것만 같아 더욱 스스로를 쓸모 없는 존재로 여기게 된다.
비법 1. 머리 감기
우울감을 떨쳐버리는 데 효과적인 몇 가지 방법들이 있긴 하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건 머리 감기다. 의외로 효과가 굉장하다. 머리만 감아도 감정이 매우 산뜻해지곤 한다. 거기다가 내가 좋아하는 샴푸향을 맡으면 훨씬 더 기분이 고양된다. 두피의 노폐물과 함께 우울감이 모공으로 배출되어 씻겨 내려가는 것 같다. 수용성 우울인가보다.
비법 2. 심박수 올리기
그 다음으로는 스쿼트 또는 팔굽혀펴기 같은 순간적으로 심박수를 올리는 무산소 운동이다. 많이 할 필요도 없다. 그냥 숨이 헐떡거릴 정도가 되면 멈춰도 상관없다. 지금은 운동하려는게 목적이 아니니까. 스쿼트나 팔굽혀하기 할 근력이 안된다면 제자리에서 전력으로 질주하듯 달리는 방법도 있다. 앉았다 일어나기로 바꿔도 된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면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당장 숨을 쉬는 데 온 감각이 집중된다. 우울감이 호흡에 섞여 나오는걸까? 연소성 우울인가보다.
비법 3. 낯선 곳을 걷기
이것보다 조금 더 활동적인 것은 나가서 걷기다. 보통 걷기로 우울감을 떨쳐버리는건 퇴근 때 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이미 나와있는 상태여야 가능한 방식이다. (집에 있는 상태에서 나와서 걸어본 적은 정말 거의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드문 경우다.) 이 때는 정처없이 걷는다. 목적지는 없다. 그리고 가급적 낯선 길로 걷는다. 낯선 풍경을 통해 새로운 자극을 집어 넣으며 마음속 우울을 밀어내는 것 같다.
위와 같은 방법들이 우울을 떨쳐내는 나의 개인적인 방식이다. 물론 저 중 어떤 것도 시도할 힘조차 나지 않는 상태도 있다. 머리를 감으러 가고 싶지도 않고, 사지를 움직이는 것도, 출근하는 것도 버거울 만큼 무기력함에 짓눌리는 날도 분명 많다.
궁극의 비법. 루틴한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틴한 삶-특히 출근해야하는 삶-은 나를 일으킨다. 그래서 우울증에는 규칙적인 삶이 중요하다고 하나보다. 하지만 규칙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정도면 사실 극심한 우울증의 상태는 아닐 것이다. 결국 규칙적인 삶은 경한 우울이 악화되지 않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인가보다. 그러니 나는 규칙적으로 살지 않으면 상당히 위험한 상태가 될 수도 있는 사람인 것이다.
우울을 잘 모르는 기질로 태어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혹은 호르몬에 영향 받지 않는다면 좋을텐데. 하지만 이건 내가 바꿀 수도 없고 어떻게 할 수도 없는 부분이다. 그랬었더라면, 하고 백만 번 되뇌여도 '그랬었더라면'은 일어날 수 없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머리를 감든, 스쿼트를 하든, 정처없이 산책을 하든, 사소한 듯 하나 효과적인 나만의 방식들을 이리저리 써가면서 우울이라는 놈과 싸우고 또 때론 퍼질러지기도 하며 삶을 이겨내는 것, 그것이 신이 내게 부여한 삶의 과업 중 하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