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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더라운드> 술은 촉매제일뿐,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

by 소서

어나더라운드

(Another round/ 원제: DRUK, 2020)

감독: 토마스 빈터베르그 (Thomas Vinterberg) 주연: 매즈 미켈슨(Mads Mikkelsen)

*영화내용 스포일러 및 인터뷰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술 한잔으로 당신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면 어떨까?!

매일 술 한잔씩 마신다면 인생이 재밌어질까?

<어나더라운드>는 ‘사람은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5% 부족한 채로 태어났다.’라는 노르웨이의 철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핀 스코르데루의 실제 이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덴마크의 유명한 감독인 토마스 빈터베르그와 국민배우로 불리는 매즈 미켈슨이 함께한 작품으로 이 둘은 감독의 2012년 영화 <더 헌트>에서 이미 합을 맞춘 적이 있다. 당시 주인공 루카스 역을 맡았던 매즈 미켈슨은 이 역할로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이번 작품 <어나더라운드>는 각종 영화제를 비롯해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 장편 영화상을 수상하며 많은 호평을 받았다.


덴마크에서는 테이블 위에 와인 한 병이 놓여 있다면, 사람들은 그 와인 한 병이 다 떨어질 때까지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매즈 미켈슨 [토론토국제영화제(TIFF 2020)인터뷰중]

이 영화의 내용을 소개하기에 앞서, 술에 관대한 덴마크의 사회적 분위기에 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영화는 젊은이들이 술을 마시면서 호수 주변을 도는 경기를 하는 모습으로 시작하는데, 덴마크에는 실제로 호수 경기(lake run)라는 문화가 있다. 호수 주변을 돌면서 정해진 시간 안에 맥주 한 상자를 비우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토마스 감독의 일화에 의하면 이 경기에는 학교 교사도 참석할 정도로 사회적으로 용인된 분위기라는 것이다. 이렇게 덴마크는 사람들이 술을 많이 마시는 문화를 가진 국가이다. 매즈 미켈슨은 덴마크의 음주문화에 대해 ‘만약 당신이 프랑스에서 일한다면, 점심에 세가지 정식을 먹을 것이고, 테이블 위에는 정말 멋진 레드 와인 한 병이 놓여 있을 거예요. 사람들은 와인 한잔을 마신 후 행복하게 일하러 돌아가겠죠. 반면, 덴마크에서는 테이블 위에 와인 한 병이 놓여 있다면, 사람들은 그 와인 한 병이 다 떨어질 때까지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술에 접근하는 방식이 다르죠.’라며 대답하기도 했다. 감독은 덴마크 사람들이 술을 많이 마시는 동시에 건강과 올바른 삶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들을 보며 그 둘 사이에 간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러던 와중에 핀 스코르데루의 이론을 접하게 되며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역사 수업 중인 마르틴
혈중 알코올 농도를 0.05% 유지하는 실험을 제안하는 니콜라이와 흥미롭게 이야기를 듣는 친구들


줄거리

영화에는 4명의 중년 남성이 등장하는데, 마르틴, 톰뮈, 페테르, 니콜라이는 각각 고등학교에서 역사, 체육, 음악, 심리학을 가르치는 교사들이다. 주인공인 마르틴은 학교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게 되며 위기를 맞는다. 또한 가족과의 대화가 단절되어 인생에 의미를 잃어버린 무기력한 삶을 사는 인물이다. 나머지 친구들도 이혼 및 가정에서의 갈등 등 각자 다른 이유로 삶의 위기를 겪고 있다. 이에 심리학 교사인 니콜라이는 혈중 알코올 농도를 0.05% 유지하면 대담하고 창의적으로 된다는 가설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을 제안한다. 결국 이 4명은 혈중 알코올 농도를 0.05% 유지하기 위해 정해진 시간 동안 술을 마시며 규칙적으로 실험을 시작하게 된다. 실험을 시작한 후, 모두가 수업 및 일상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으며 삶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느끼게 된다. 마르틴은 학생들의 수업 만족도가 높아지고, 가족들과도 관계가 개선되는 듯했다. 그러나 더 좋아지고 싶은 욕망으로 수치를 0.1%까지 높이게 되고. 알코올 중독을 걱정하는 지경에 이른다. 일은 물론 가족과의 갈등은 더욱 악화된다. 결국 실험은 중단되고, 노견과 고독한 삶을 살아가던 톰뮈가 세상을 떠나는 극단적인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마르틴의 춤사위는 매우 인상 깊다. 톰뮈의 장례식 이후 마르틴은 술을 마시며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자유로워 보이면서도 슬퍼 보이는 춤사위는 한국의 정서인 '한'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 초반 친구들의 춤을 춰달라는 제안에 한사코 거절했던 그가 술을 통해 친구를 잃은 억눌러진 슬픔을 춤으로 표출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영화는 끝을 맺는다.

학생들과 졸업 파티를 함께 즐기는 마르틴


술은 촉매제일 뿐, 이것은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

영화를 보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그래서 술을 마시는 게 좋다는 거야? 마시지 말라는 거야?' 감독인 토마스 빈터베르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영화 촬영을 진행하면서 알코올로 인해 안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다는 말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그래서 영화의 범위가 넓어지게 되었다. 나는 술을 판단하고자 한 것이 아니다. 술은 촉매제일 뿐, 이것은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감독의 말처럼 ‘어나더라운드’는 술에 관해 이야기하는 영화가 아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매일 출근하고 퇴근하는 반복적인 일상을 보낸다. 그렇게 10년 20년 살다 보면, 어느샌가 삶의 의미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는 그런 순간이 오고 말 것이다. ‘어나더라운드’는 그런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되찾기 위해 술의 힘을 빌려보려는 유쾌하지만 조금은 슬프게 다가오는 그런 영화이다. 술이라는 흥미로운 소재와 4명의 이야기를 가지고 우리의 인생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하는 영화이다. 이 영화를 보게 된다면, 지금 나의 삶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고찰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바란다.



참고 인터뷰

TIFF 2020, Another round Q&A

https://youtu.be/4pxov3GFgkg


Det Danske Filminstitut

https://youtu.be/evT1Sm2Idv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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