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기반으로 일하고 학습하기
2주 전 모두의연구소로 출근 한 지 겨우 1주일만에 회고한 내용을 브런치에 적어봤었다.
내친 김에 후속 회고를 적어보려 한다. (원래 곧바로 2주차에 회고 글을 써보려고 했으나 너무 익지 않은 글이 나올 것 같아 잠시 숨을 고른 후 3주가 지난 시점에서 적는다.)
이번 글도 2주차와 3주차를 거치면서 경험했던 내용들을 크게 3가지 카테고리로 구분해서 적는다.
모두연에 처음 와서 대표님을 비롯한 주요 직원들의 아웃룩 캘린더를 가득 채운 업무 스케쥴을 보면서 미팅이 많아도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연은 MS 아웃룩을 통해 다른 직원들의 스케쥴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해놨다) 미팅이 많은 것이 꼭 좋은 현상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 일정들 속에서 눈에 띄었던 것은 ‘OO팀 생각공유 미팅’이나 ‘OO님과의 수다’라고 적힌 일정들이었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미팅들일까?’라는 의구심은 2주차가 채 끝나기도 전에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었다. 내가 속한 팀과 회사 대표님과의 생각공유 미팅이 일정에 잡혀 있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팀의 매니저 역할을 하는 직원은 참석자에서 배제된다는 것. ^^
그런데, 이 미팅을 앞둔 팀원들의 분위기가 살짝 묘했다. 한 팀원이 나에게 생각공유 미팅에서 대표이사에게 질문할 내용이나 언급하고 싶은 아젠다를 물어왔다. 그런데, 입사 후 근로계약서에 사인한 잉크도 채 마르지 않은 내가 무슨 대단한 질문이 있겠나? 반면, 다른 팀원들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척 많아 보였고, 심지어는 팀원들이 회의실에 다 같이 모여 있을 때 벽면 보드에 여러 개의 아젠다를 적으면서 우선순위를 매기기도 했다.
처음으로 참석한 생각공유 미팅 모습도 다소 생경했다. 일단 회의실에 들어 선 대표이사는 맨 구석 자리로 들어가 앉아 자신의 노트북을 열었다. 대표이사 옆으로 한 자리 떨어진 의자에 다른 부서를 총괄하는 임원급 직원분이 자리를 잡았다. 이런 자리가 처음인 나는 어디에 앉아야 하나 헤매다가 대표이사와 임원급 직원분 사이 자리에 팀원들을 마주 보고 앉게 되었다.
미팅의 시작은 대표이사가 아니라 임원급 직원분이 맡았다. 사회자 또는 퍼실리테이터 역할이었다. 그 분은 구석에 노트북을 펼치고 앉은 대표이사를 ‘속기사’로 소개하며 미팅을 시작했다. 대표와의 생각공유 미팅의 내용이 회의록으로 작성되고 전 직원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개된다고 했는데, 그 회의록 작성자는 다름 아니라 대표이사였던 것이다.
처음부터 팀원들의 발언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자세한 내용을 기술하기는 어려우나 대표이사 앞에서 비교적 솔직하게 발언하는 직원들을 통해 구성원들의 고민과 이슈를 엿볼 수 있었다.
이 조직에 와서 처음 듣는 표현이었다. 개인적으로 파악하기에 모두연 조직의 위계를 굳이 구분하라고 한다면 3 Tier로 정리할 수 있다고 본다. 대표이사를 포함한 핵심 임원 그룹, 제품(또는 서비스)과 팀 조직을 서포트(한다고 표현하지만 결국 매니저 역할인) 하는 중간 관리자, 그리고 직원들이다.
얼라인 스코어는 이 3개 Tier 그룹들간에 서로서로 얼마나 비슷한 생각과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점수로 이해된다. (아주 짧은 온보딩 프로그램에서 이런 내용들까지 듣지 못했고, 지금까지 아무도 이런 개념들에 대해 그 어느 누구도 정식으로 설명해 준 바가 없기 때문에 내가 이해한 바를 토대로 적은 뇌피셜임. ^^)
생각공유 미팅에서는 ‘얼라인(align)’이라는 단어가 자주 사용되었다. 대표이사와 매니저 역할을 하는 중간관리자 사이의 얼라인 스코어가 높지 않은 것 같다는 지적이 있었다. 일련의 업무 프로세스들(예를 들면, 고객 요구 - 영업 - 기획 - 개발 - Delivery 및 운영) 사이에서도 얼라인 문제가 크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곧바로 해결될 수 있는 성격의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대표이사가 속기록을 작성하는 중간중간 타이핑을 멈추고 직원들이 지적한 내용을 확인하고,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이는 것들은 백로그(backlog)로 담아두는 모습을 목도할 수 있었다.
앞서 지적된 이슈들은 결국 실무 현장의 직원들에게 부담을 넘어 두려움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객과의 접점에서 일해야 하는 현장 실무자들이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면, 이는 곧 이전 회고글에서도 언급했던 조직 구성원들의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을 해치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잘 나가는 스타트업이라 하더라도 인력 부족의 문제는 상존하기 마련이다. 특히, 성장하는 단계에 있는 스타트업이라면 더더욱 로켓의 추진력을 확보하기 위한 인력 확보가 절실하다. 반면, 해야 하는 일의 양과 범위가 늘어나면서 조직 구성원들은 자의반 타의반 멀티플레이어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경우에 처하기 마련이다.
생각공유 미팅에서 언급되었던 내용 중 ‘제품을 잘 만드는 데에 집중해야 하는 사람과 그 제품을 가지고 사업화, 판매, 서비스 해야 하는 사람의 역할을 분리하면 좋겠다’라는 말이 있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팀원들이 ‘얼라인’ 이슈에 대해 여러 번 언급을 했던 것은 어쩌면 인력 부족과 중요한 인력들이 멀티플레이어 역할을 해야만 하는 현 상황과 맞물려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생각 공유에 도움이 될만한 말을 언급할 입장은 못 되었으나, 이런저런 발언을 들으면서 문득 아래와 같은 문구가 떠올랐다.
훌륭하고 좋은 제품(products)은 기획자의 문서와 개발자의 코드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고객과의 관계(relationship)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지...
팀원들과 단체로 참석한 생각공유 미팅 이외에도, 대표님의 별도 초대를 통해 대표이사와 '노하우 공유'라는 명목으로 일대일 미팅을 가질 수 있었다. 또한, 스포티파이(Spotify)의 애자일한 조직 구조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고 있는 ‘길드’모임도 3주차에 진행되었으나 중요한 외부 일정으로 참석하지는 못했다. 이 두 가지 모임에 대해서도 기회가 된다면 추후 별도로 정리해 보려고 한다.
모두연의 대표님은 ‘투명함’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투명하지 않은 커뮤니케이션을 싫어하고, 비슷하게 사내에서 정보가 투명하게 공유되는 것을 선호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아웃룩 캘린더에서 다른 직원을 검색하여 일정을 확인할 수 있다. 가장 큰 목적은 업무 협업을 하거나 내부 미팅 일정을 잡을 때 서로 비어 있는 일정을 확인하기 위함일 것이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대표님의 경우 야간의 개인적인 일정과 주말 캠핑 일정까지 캘린더에 등록해 두어 직원들이 확인할 수 있다. 주말과 낮밤을 가리지 않고 업무를 해야하는 상황 속에서 직원들의 무차별적인 업무 요청을 사전에 방어하기 위한 목적일까? ^^
또한, 1주차 회고에 적었듯 업무 커뮤니케이션의 핵심 도구인 MS Teams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다른 부서에서 어떤 아젠다나 이슈가 논의 중인지, 다른 팀의 어떤 직원들이 지금 화상 미팅에 참여 중인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나같은 경우, 입사 첫 날 몇 시간 정도의 짧은 전사 온보딩 미팅만 참석한 후 곧바로 소속 팀에 합류하여 업무를 시작했다. 그런데, 살짝 기대했던 바와 달리 주로 사용하는 업무 도구 사용법이나 회사가 일하는 방식, 모두연 팸(패밀리의 약어로 동료 직원들을 의미) 사이에서만 사용하는 사내 용어, 그리고 스프린트와 아침 저녁으로 진행되는 스크럼 미팅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도의 교육을 받지 못했다. 모두연이 평소에 지향하는 바와 같이 ‘경험을 통한 학습(Experiential Learning)’을 온 몸 그대로 체험해야 했다.
누가 옆에 붙어서 친절하게 가르쳐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모두연이 일하는 방식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팀즈를 통해 업무 상황을 공유받고, 노션(Notion)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업무 지식과 정보를 검색해서 찾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업무 파악에 도움이 될만한 사내 미팅들을 찾아서 적극적으로 참석했던 것도 도움이 되었다.
팀즈 채널과 아웃룩 캘린더에 올라오는 일정들을 통해 내가 참석 대상은 아니었지만 업무 파악에 도움이 될만한 미팅들을 찾았다. 현황 공유 미팅이거나 이슈를 다루는 미팅들이었다. 온보딩 차원에서 해당 미팅들에 참석해서 내용을 들어보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 하에 미팅 주최자에게 배석 가능 여부를 묻고 양해를 구해 가면서 참석했다. 전체적인 맥락을 모르기 때문에 뭔가 의견을 내는 대신 주로 들어야 했지만 지난 10년 정도 교육 업계에서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던 통밥(?)이 있기에 빠르게 관련 업무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입사하여 팀에 합류한 후, 당장 맡아야 하는 업무에 대한 현황 공유 외에 별도의 온보딩 교육은 받지 못했다. 주니어도 아닌 처지라 별다른 불만은 없었다. 맡아서 해야하는 업무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노하우는 어느 정도 갖춰진 상태라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해야 할 업무를 직접 수행하는 것이 업무 적응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곧바로 실전에 투입된 덕분에 입사하자마자 제안서 작업을 거들고, 신규 사업을 검토하고, 사업 기회 발굴을 위한 고객 미팅을 나가고, 입찰 제안서를 제출하기 위해 지방 출장도 다녀왔다. 그 와중에 인상이 깊었던 것은 사업 참여 여부를 검토할 때마다 대표님이 자주 하는 말이었다. 나의 표현으로 다시 각색해서 적어 보자면, ‘우리가 잘 하는 것을 잘하자’라는 취지의 말이었다.
이제 출발이긴 하지만, 어쩌면 내가 이 조직에서 일하면서 조직의 성장과 개인의 행복 두가지를 다 잡기 위해서는 ‘내가 잘하는 것을 잘 하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입사 후 3주차가 되자 드디어 스프린트의 한 사이클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었다. 이 글을 마무리 하면서 2주간의 업무를 정리하는 스프린트 회고 시간에 팀 멤버들이 ‘좋았던 점’으로 적어준 글을 자랑삼아 문구 그대로 인용하고자 한다.
그렇다. 부러우라고 염장샷 마무리를 날리는 거 맞다.
“사업적인 부분을 케어해 주실 수 있는 훌륭한 시니어가 함께 해주어서 정말 다행이다.”
“OO님의 엄청난 적응력 및 파워(정말 감동입니다...!!)”
“노련하고 경험많은 리드가 주는 안정감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를 OO님과 함께한 시간동안 경험하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