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병욱 Nov 05. 2023

인스타처럼,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17일의 여행

인스타와 함께 한 마지막 여행

  2년 넘게 다녔던 회사의 마지막 출근을 앞두고, 17일간의 장기 휴가를 떠나게 됐다. 그리고 이 여행은 내 인생 처음, 그리고 마지막의 장기 여행일 것이다.


  원래 이번 여행은 이직 여행이 될 운명도 아니었고, 애초에 17일이나 갈 생각도 없었다. 4년의 대학 생활과 그 이후 몇 년의 직장생활 속에서 단 하루도 제대로 쉬어보지 못했던 내가, 쌓여있던 연차를 적절히 소진하고, 또 마침 가고 싶었던 행사가 그 휴가일 전에 열리게 되면서, 경비를 계산하며 가장 효율적인 방안으로써 이리저리 이어 붙이다 보니 결국 17일이라는 장기 휴가가 만들어졌을 뿐이다.


 이와 동시에 비교적 갑작스레 이직이 결정되면서 이 휴가는 본의 아니게 이직 기념 휴가가 됐고, 또 내 인생의 가장 긴 휴가로서 자리매김하게 됐다. 게다가 인생 처음으로 맞는 장기 휴가에, 주머니까지 든든하다 보니 난 이번 여행을 조금 새로운 경험을 얻을 기회로 삼고 싶었다.




공백 제외: 3754자


목차

1. 인스타그램이 말하는 여행

KOSIS, 주로 이용하는 SNS 계정 1순위

2. 17일의 끝에서

3. 인스타처럼

- 참고 문헌




  이전에는 학생이었기도 했고, 애초에 돈을 허투루 쓰지 않는 게 습관이 됐기에, 여행 날짜를 잡는 것부터 가장 가성비 좋게 날짜를 잡았고, 몇 주 전부터 여행 계획을 짜기 시작해서, 가야 할 곳 다 가고, 먹어야 할 것 다 먹고, 가성비는 또 다 챙기면서 꼼꼼한 계획 속에서 여행을 다녔다.


  이렇게 여행을 결정하면 돈을 충분히 아낀다는 장점도 있지만, 여행 전후로 돈 이외의 품이 많이 든다는 단점도 있다. 학생 때는 시간이 남아돌다 보니 이렇게 여행을 결정하는 게 최선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돈인 지금에서는 이런 방식이 오히려 가성비가 떨어진다. 게다가 그때는 여행 자체에서 가성비를 따지다 보니 돈이 좀 든다 싶은 건 그냥 여행 계획에 넣지도 못했다. 입장권이 비싸다 싶은 건 평생 언제 있을지도 모를, 다음을 기약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그냥 대충 가고 싶은 곳이나 몇 곳 챙겨놓고, 돈만 두둑이 챙겨서, 가성비는 저 멀리 던져버리고, 인스타그램의 친구들이 말하는 그런 여행을 가기로 했다. 이것도 경험이라면서, 기왕 기회가 온 거 새로운 경험을 쌓는 것도 괜찮다고 합리화하면서, 이번 여행의 테마를 "인스타처럼"으로 정했고, 그렇게 17일을 보냈다.


  그리고 17일이 지난 지금, 나에게 이런 여행은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1. 인스타그램이 말하는 여행

KOSIS, 주로 이용하는 SNS 계정 1순위(인스타그램 2021년 31.4% > 2022년 41.4%)


  이제는 X가 된 트위터부터, 광고의 전유물이 된 페이스북, 그리고 대세로 자리 잡은 인스타그램까지 우리 주위에는 많은 SNS가 자리 잡고 있다. 예전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SNS를 시간 낭비 서비스로 부르며 배척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이러한 SNS가 가장 가벼운 친구 관계부터 시작해서, 대외 활동이나 취업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필수적인 소통 창구로써 자리를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에서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이 굉장히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데, 과거의 페이스북이 지금의 메타를 세우고 저물어 간다면, 인스타그램은 페이스북의 빈자리를 메우고, 현재의 메타를 이끌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인스타그램은 최고의 점유율을 자랑하고 있다.


  해외에서 유학하며, 언젠가 영어권 친구들이 나에게 인스타그램 아이디가 있냐고 물어봤을 때 아이디가 없다고 당당히 말했던 나조차도, 학부를 졸업하면서 외국 친구들이 모두 모국으로 돌아갈 때가 돼서는 인스타그램의 필요성을 느끼고 부랴부랴 가입했었을 만큼, 글로벌한 환경에서는 인스타그램의 중요성이 더욱 빛을 발한다.


  물론 그렇다고 한들, 난 인스타그램의 스토리가 무엇인지, 릴스가 무엇인지, 게시글이 다른 것들과 어떤 다른 점이 있는지도 몰랐었기에, 인스타그램을 제대로 활용하게 된 건 가입하고서도 한참 뒤의 일이었지만 말이다.


인스타그램에서는 재력이 보이네...?


  그렇게 인스타그램을 익숙하게 사용하게 되고, 피드가 뭔지도 알고, 스토리가 뭔지도 알게 됐을 때, 친구들의 피드와 스토리를 보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인스타에서는 재력이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학교 다닐 때는 사실 별생각 없었는데, 인스타를 보다 보면 '얘가 돈이 정말 많은 애였구나, 역시 유학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가벼'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정말 많았다. 하루가 멀다고 친구들과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새로운 장소로, 혹은 익숙한 장소로 여행을 떠나고, 남자 친구, 여자 친구와 데이트하고...


  그런 걸 보고 있으면 '얘는 돈이 땅에서 솟아나는 건가?', '이렇게나 게시글을 올리려면 얘는 사진사를 따로 구한 건가? 뭘 어떻게 다니면 저렇게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거지?'라는 원초적인 질문부터 '그러니까 저렇게 살면 행복한 거겠지?'라는 심층적인 질문까지 떠오르는데, 뭐... 물어볼 데도 없으니 그냥 혼자 궁금해하며 넘어갔다.


  그리고 이번에 나는 그들처럼 살아보기로 했다.


2. 17일의 끝에서

  17일 동안 난 3번의 비행기를 탔고, 2개의 국가에서 여행했다. 그리고 여행하는 순간만큼은 나도 열심히 인스타 스토리를 올려댔다. 그리고 17일이 지난 지금, 다음에는 이렇게까지 여행 다닐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한다.


  이번 여행과 내가 살아오며 해봤던 여행의 가장 큰 차이점은 돈이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난 돈을 조금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이번 여행의 모토였다. 마치 인스타의 친구들처럼 말이다. 항상 가격표를 보고, 가성비를 찾고, 의미를 찾고, 목표를 찾았던 지금까지와 다르게, 인스타에서 보이는 친구들의 모습처럼 그들이 먹던 음식을 먹고, 그들이 하던 일들을 했다.


  평소라면 그래도 가성비 좋고, 그래도 인기가 있고, 그래도 유명한 곳을 찾았을 것이다. 가격이 비싸면 고민했을 것이고, 결국에는 가지 말자고 결론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는 하고 싶은 건 다 해봤다. 가격이 비싸던 어쨌든 유명한 건 다 해봤다. 가성비가 조금 떨어지더라도 일정에 끼워 넣을 수 있는 거라면, 또 느낌 좀 있는 거라면 다 해봤다.


자, 제대로 놀아보자! 지갑 최대로!


  그리고 그렇게 해보니 확실히 재미는 있더라. 후회는 하지 않는다. 돈이 없었기에 그랬기도 했었겠지만, 기약 없는 미래에 바보처럼 미루고 또 미뤘던 과거와 달리, 하고 싶은 걸 바로바로 할 수 있었다. 과거의 나라면 할 수 없었던 경험이었기에 정말 새로웠다. 마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이 옷은 나에게 맞지 않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17일이 누구에게는 길고 누구에게는 짧게 느껴질 수 있는 기간이겠지만, 최소한 나에게는 너무 긴 기간이었다. 17일 동안 모두 여행지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반 이상을 본가에서 보냈는데, 내가 본가에 있던 시간조차도 나에겐 그리 편하지 않았다.


  중국에서 유학하는 한국인 유학생들은 항상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중국에 고작 4개월 있었던 학생조차도 한국에 돌아가지 못해서 안달이다. 나는 항상 반대였다. 코로나 기간을 포함해 중국에서 출국 한번 없이 4년, 5년을 보내도, 난 한국이 그리 그립지 않았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유일한 이유는 가족들에게 한 번쯤 얼굴은 비춰야 하는 게 맞지 않겠냐는 도리상의 이유였다.


  17일간의 여행에서 나는 끝없는 숙제가 쉼 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A랑 만나야 하고, B를 해야 하고, C를 먹어야 한다. 왜냐하면 17일이라는 시간은 확실히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시간 동안 나가지 않고 본가에 있어도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내가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 공간은 내 공간도 없고, 내 물건도 없고, 주위가 어수선해서 편히 생각하기도, 글을 쓰기도, 무언가를 보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에게 불편한 그곳에서 쉬지도, 놀지도 못하고 가만히 있는 것만이 내가 나가지 않고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그렇게 나오고 나면, 차도 없고, 집도 없는 내가 갈 곳이 있을 리 없었다. 앉을 곳이라고는 시골에서 버스를 타고 30분씩 가야 나오는 카페 정도였다. 30분이나 버스를 타고 나가서 혼자 카페에 앉아 있을 바엔, 친구를 부르는 게 낫고, 또 그럴 바엔 맛있는 걸 먹으러 가는 게 훨씬 괜찮은 일이었다. 그리고 이번 여행의 모토는 인스타처럼 이니까.


3. 인스타처럼

  친구들과 함께 가볼 일이 없었던 여행지도 가고, 카페도 가고, 얘기도 많이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었다. 마음먹고 준비하지 않으면 평소에는 절대 갈 일 없을 여행지도 가고, 예쁜 카페도 찾아서 가고, 맛있는 음식도 꼬박꼬박 예쁘게 사진을 찍었다. 친구들과의 시간도 정말 즐거웠고, 인스타 스토리에 올릴 만한 사진들도 수십, 수백 장을 얻었다. 그리고 허무했다.


  물론 17일간의 경험은 정말 값지고, 정말 평생에 다시는 없을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소한 나에게만큼은 생각보다 허무했다. 인스타처럼 돈을 물 쓰듯 쓰고 다녔기에 알게 모르게 써댄 돈은 실체를 감추고, 영수증으로 그 흔적만 남았다. 친구들과의 만남도, 인스타에 올릴 만큼 예쁜 사진을 얻은 것도, 돈을 써야만 할 수 있는 비싼 경험을 얻은 것도 좋았지만, 결국은 내가 그렇게 좋았던 경험을 글로써 남길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 그렇게나 좋은 사진을 찍었다고 해놓고는, 사진을 찍기만 하고 저장하지 않은 이다. 만약 인스타에 올릴 만한 사진을 포기했다면 오히려 허무했을 수도 있다. 평소처럼 가성비를 생각하고, 평소처럼 적당한 수준으로 살고, 평소처럼 사진 찍기에 아무런 흥미를 갖지 않았다면, 허무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기에 더욱 허무했다.


나에게는 나에게 맞는 길이 있다


  17일간 정말 좋은 경험과 다시는 없을 경험을 했지만, 그렇기에 이 옷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나에게는 나에게 맞는 옷이 있다. 다른 사람을 따라서 사는 건 한 번이면 족하다. 인스타 피드에 돈을 갈아 마시는 피드와 스토리가 있든지 없든지, 그건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삶이 있고, 나는 나의 삶이 있다. 나에게 맞는 삶을 사는 게 훨씬 중요하다.


이번 여행의 기간은 정말 비싼 경험이었고, 많은 걸 얻었고, 많은 걸 배웠지만 나에게는 안 맞더라. 나는 인스타처럼은 못 사는 인간인가 보다. 그냥 나처럼 살아야겠다

참고 문헌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워커홀릭이라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