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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욱 Sep 08. 2023

중국 유학 사기,
다시 돌아오지 않을 스무 살의 청춘

유학 사기에 당한 이야기

  한국에서 20년을 살며 비행기는 무슨, 기차조차 몇 번 타본 적 없던 내가 중국에 유학을 가게 됐다. 노력하지 않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결국은 원하는 대학에는 가지도 못하고, 원치 않는 대학에만 합격하게 됐던 초라한 현실의 도피처로 유학을 선택한 것이다. 게다가 어려운 집안 사정에 몇백, 몇천만 원이나 주고 원치 않은 대학에 가는 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성적도 성적이었지만,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건 나에게 굉장히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전후 관계를 아는 사람은 나뿐이었기에,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호의적이었다.


와, 중국으로 유학 가는 거야? 멋지다!


  지금 고개를 돌려 생각해 보면, 돈과 시간을 쓰레기처럼 버려버린 그때의 선택이, 참 잘못된 선택이기도 하면서 그때 그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또 지금의 내가 없었을 테니, 어찌 보면 잘한 선택이라고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건 혼란스러웠던 그 순간을 이겨내고, 그때를 추억할 만한 상황이 된 지금의 이야기일 뿐이다. 만약 그 순간을 이겨내지 못했다면, 그렇게 모든 걸 포기했다면 또 모든 것은 지금과 달라졌을 것이다.




공백 제외: 5120자


목차

1. 청춘의 시작, 중국으로의 첫 걸음

2. 무지가 불러온 비극

3. 펜을 든 이유

- 참고 문헌




1. 청춘의 시작, 중국으로의 첫 걸음

  내가 선택했던 대학은 중국 산둥반도 위해에 있는 산동대학이라는 곳이었다. 애초에 집에서도 잘 안 나가던 내가 중국의 산둥반도라는 곳을 알고 있을 리 만무했다. 한국이랑 가장 가까운 중국 지역이라는 것만 유학 안내 팸플릿을 통해 알게 됐다.


  첫 4개월, 배를 타고 해외를 나가는 것도 처음이었고, 대학도 처음이었고, 해외 생활도 처음이었기에,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몇몇 친구들과의 생활도 정말 즐거웠기에 이 4개월은 정말 설레고 재미있었다. 첫 수업이라고 가서는 중국어 4 성조를 배웠었는데, 친구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손가락으로 4 성조를 그리며 연습하던 그때 그 순간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 정말 청춘 그 자체였다고 생각한다.


스무 살이라는 건, 젊음 그 자체로 청춘이다


  애초에 독립적인 성격이라 다른 친구들이 크게 느끼던 부모님의 간섭이나, 잔소리가 없다는 사실은 나에게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것보다도 평생을 한 번도 멀리 보내본 적 없는 자식을 저 먼 중국 땅에 유학을 보낸다는 것에 없는 돈을 바닥까지 다 긁어서 부모님이 보내주셨던 돈, 그리고 하루에 많아 봐야 4시간 하는 단순 어학 수업으로 인해 남는 수많은 시간, 나에겐 그렇게 만들어진 인생 처음 접한 자유의 환경이 조금 더 크게 와닿았다. 


  친구가 있고, 돈과 시간이 가득했던 그 시기는 정말 오늘 뭐 먹지내일 뭐 먹지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차 이 즐거움과 별개로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게 됐다.


2. 무지가 불러온 비극

  한국 2월에 졸업, 3월에 입학이 이루어지고, 6개월 단위로 학기가 바뀌며, 1년이 지나면 학년이 변한다. 그리고 난 2월에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테니, 당연히 3월에 중국 대학에 입학했다. 그런데 살다 보니 중국은 한국과 다르게 9월 입학, 6월 졸업이라네...?


이게 뭔 개소리야?


  분명 유학 안내 팸플릿에는 3월에 정상 입학을 하고, 4학년을 다 보내면 반년간 "더" 졸업 논문을 준비하는 기간이 중국에는 있으며, 그래서 총 4년 6개월이 걸린다...라고 했는데...


어... 뭔가 이상하다?


  사실은 4학년이 되면 6개월간 졸업논문 기간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국의 고등학생들은 2월에 졸업하니, 졸업자가 많은 이때를 노려 3월에 입학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3월부터 6~7월까지의 기간에 한 학기분의 등록금을 징수한 후, 한 학기의 기간만큼 어학연수 과정을 제공하고, 그다음 9월이 되면 정식적으로 입학을 시키는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과정에 대해 누가 속냐고 하겠지만... 속더라? 내가 속았잖아.


  사실 이런 형태의 어학당 연계 입학 코스영어권에서도 많이 있는 프로그램이라서 이런 구성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잘못된 점은 사전에 이러한 형태의 프로그램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고, 중국의 모든 학생이 4년 6개월 동안 대학에 다니는 것처럼 거짓말을 하고서 한 학기 분의 등록금을 징수했다는 것이다. 이건 명백한 기망행위를 통한 사기다.


형법 제347조 (사기)
① 사람을 기만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정 1995.12.29>
② 전항의 방법으로, 제삼자로 하여금 재물의 교부를 받게 하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게 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
제351조(상습범) 상습으로 제347조 내지 전조의 죄를 범한 자는 그 죄에 정한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한다.
제352조(미수범) 제347조 내지 제348조의 2, 제350조와 제351조의 미수범은 처벌한다.
제353조(자격정지의 병과) 본 장의 죄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할 수 있다.
제354조 (친족 간의 범행, 동력) 제328조와 제346조의 규정은 본 장의 죄에 준용한다.


  당시만 해도 이렇게 눈 가리고 아웅식의 정말 말도 안 되는 사기에 당하는 학생이 정말 정말 많았다. 중국 유학에 대한 정보가 지금과 다르게 많이 없었다 보니 이런 식으로 대놓고 사기를 쳐도 당하는 피해자가 나오는 것이다. 기억하기로는 그때 입학한 학생이 수백 명에, 지원자는 그 몇 배였으니...


  이렇게 이상함을 한번 느끼기 시작하니, 이전에는 무지로 인해 가려져 있었던 이상한 점들이 점점 더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Q: 생각해 보니 우리 기숙사는 왜 학교가 아니라, 무슨 모텔 같은 곳이냐? 걸어가면 학교랑 20분 넘게 걸리는데?

A: 왜냐면 너희가 정식 입학을 안 했기 때문이겠지...


Q: 그런데 기숙사비는 다 받아 갔잖아? 4개월에 82만 원이나 받아 갔잖아!

A: 그거 환율이 달라져도 계속 같은 금액인 건 알고 있냐? 지금 환율상으로는 8만 원이나 차이 나는데, 너희 계속 같은 돈 내잖아. 그건 눈치 못 챘음?


Q: 기숙사 입주하면 어학 능력 향상을 위해 룸메이트는 다 중국인 친구로 배정해 준다며?

A: 중국 친구들은 그런 프로그램이 있는지도 모를걸?


Q: 그러고 보니 한국의 어떤 대학이랑 협약 맺었지 않았어? 학과 사무실도 없어졌던데, 면접 볼 때 있던 그 교수는 어디로 갔어?

A: 한 학기 지나니까, 그 교수 없어졌던데?


Q: 첫 학기는 중국에서 보내고, 그 뒤 두 번째 학기와 세 번째 학기에는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보내준다고 하지 않았나? 그거 언제 공고 올라와?

A: 그거 간 사람 있긴 할걸? 저번에 보니까 어떤 남재 애는 한국에 있는 여대로 교환 학생 신청했던데?


Q: 우리 취업 자리도 다 알선해 준다고 했는데, 그럼 그 교수 없으면 그거 누가 해?

A: 졸업자도 없는데, 그걸 어떻게 아냐?


Q: 우리 중국어 수업해 주던 선생님들 저번에 학교 교수 명단에 없던데, 어떻게 된 거야?

A: 교수가 아니니까? 연구생들이잖아. 연구생 수업이 한 학기에 360만 원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웃기네.


Q: 중국 친구한테 물어보니 학비가 180만 원이라는데, 우리는 왜 360만 원 내?

A: 그거 관리비라고 180만 원 징수하잖아, 물론 뭘 관리해 주는지는 모르겠네.


Q: 생각해 보니 첫 학기에는 모텔이랑 학교 사이에 운행하던 셔틀버스 있었잖아. 이거 왜 안 와?

A: 그러고 보니 그거 없어졌네. 왜 배차 안 해줘?


Q: 소문을 들어보니, 관리자의 자녀가 이 프로그램 1기 학생이라면서? 그 사람 4년 장학생이라는데, 공부 잘해?

A: 잘했으면 말이 나왔겠냐? 뭐 어때, 소문인걸. 누가 알아?


Q: 야, 우리랑 같이 입학했던 친구 있잖아. 그 친구 부모님이 중국 관련 일을 하신다면서? 지금 이 꼬락서니 보고 열이 나서 엄청나게 따졌다는데, 이것에 대해 알아?

A: 그거 따지니까, 관리자 하나가 '너만 등록금 깎아줄게'라고 했다는 소문이 있더라?


Q: 와, 이번 학기 자퇴 학생 왜 이렇게 많아? 한 30명 되는 것 같은데? 거의 반이 넘는 것 같은데?

A: 그거 자퇴하거나 퇴학당해도 분위기 흐린다고 자퇴 표시 안 하고 휴학으로 처리했잖아, 더 많을걸?


Q: 중국 친구가 나보고 국제반 어쩌고 그러던데, 국제반이 뭐야?

A: 우리가 지금 하는 게 국제반 프로그램이잖아. 4년간 2,880만 원 내고 중국어 배워서 HSK 5급 들고 10장짜리 보고서로 졸업 논문 제출한 후에 졸업하는 프로그램. 몰랐냐?


Q: 국제반에서 자비반으로 옮길 수 있다던데, 학교는 된다고 하고, 국제반 관리자는 안 된다고 하고... 뭐가 맞는 거야?

A: 야, 이제는 더 이상 진실과 거짓을 분간할 수 없는 정도가 됐어.


Q: 그래서 자퇴하면 학비 환불 해줘? 학비는 왜 환불 안 해주는 거야? 저번에 해준다고 하지 않았어?

A: 1년 치 학비 환불 안 해준다고 떡하니 적어놨던데?


Q: 학생회비 안 내면 장학금 안 준다는 게 무슨 말이야?

A: "국민이 세금을 내듯, 학생이라면 학생회비를 내야 한다. 안 내면 장학금에서 제외하겠다" 이거 관리자가 한 말이잖아.



  위에 언급한 내용은 새 발의 피로 훨씬 많은 비리 의혹과 소문이 가득했고, 소문이었던 내용이 사실로 확인된 비리도 많았다. 그렇게 행복해야 하는 대학 생활휘몰아치는 소용돌이로 변했다. 그리고 가장 안타까운 것은 그런 상황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존재가 항의받던 관리인들 따위가 아니라, 사기꾼들에게 다시는 오지 않을 스무 살의 청춘을 빼앗겨 버린 학생들이었다는 점이다. 어리고 무지했던 스무 살의 나도 소용돌이 속에서 조용히 자퇴를 선택했다. 유학하러 갔다면서 그 긴 시간 동안 중국어 한마디 못 한 채, 그렇게 나의 유학은 실패로 끝이 났다.


  학생들의 미래를 그저 돈벌이로만 생각했던 쓰레기들로 인해, 행복한 미래를 꿈꾼 채 발걸음을 옮겼던 수많은 학생과 그들을 믿고 자식을 저 먼 타국으로 보낸 부모님들은 그들이 피땀 흘려 번 돈과 그것보다 더욱 귀중한 시간을 모두 잃었다. 어떤 방법을 취하더라도 다시는 되돌려 받을 수 없는 그 귀중한 것들을 잃어버린 것이다.


3. 펜을 든 이유

  사실 난 이 글을 쓸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중국 유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학생들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걸 내 브런치의 통계를 보고 알았다. 그래서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중국 유학을 떠나고 싶어 하는 학생들과 그런 학생을 보내려는 부모님들이 하나의 글이라도 더 확인해 보고, 다시 한번 자신의 귀중한 시간을 조금 더 좋은 곳에 투자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글을 적기 위해 과거에 모아놨던 자료들을 하나씩 펼쳐보면서 시간을 따라잡지 못해 잊혔던 역겨움이 다시금 느껴지기 시작했다. 자기가 뭐라도 된 듯 학생의 의견을 깔아뭉개고 무시하는 강압적인 말투와 학생을 바보 취급하는 역겨운 태도, 그런 인간의 대화 내용을 보면서 끔찍한 혐오스러움이 올라왔다. 그래서 또다시 글을 쓰고 싶지 않아졌다. 이미 잊어버린 과거의 기억을 들춰내서 내가 얻는 건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학생이 항상 옳은 건 아니다. 유학생의 수준은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열심히 하는 유학생도 있지만, 당연히 열심히 하지 않는 수준 떨어지는 유학생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이 국제반 프로그램처럼 조금의 거름망도 없는 프로그램은 그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건 당연한 이야기다.


  그러나, 그것이 학생을 돈으로 보는 그들에게 면죄부가 허락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한 학기에 180만 원씩, 100명에게 사기를 쳤다면 그것만 해도 1억 8천만 원이다. 그저 조금 더 행복한 미래, 멋진 미래를 위해서 지금 당장의 성적은 좀 아쉽지만, 그래도 가장 쉬운 현실에 안주하는 선택이 아닌, 유학이라는 일생일대의 큰 선택을 했던 학생들이다. 그런 학생들에게 1년 3억 6천만 원을 사기 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휴대전화를 바꾸고, 차를 사고, 사치를 부리고, 유흥을 즐겼던 그 쓰레기 같은 인간들은 사실 용서하기 어렵다.


  이미 한참 지나 그 화난 감정조차 잊어버린 나조차도, 지금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들춰본 그때의 기록들에서 그때 학생들이 느꼈을, 그리고 내가 느꼈을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느꼈다. 지금의 나도 그런데, 그때의 학생들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지금은 이 국제반 프로그램이 없어졌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다른 대학과 또 국제교류처라는 이름으로 다른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다시는 같은 유형의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길 바라면서 말이다.


  유학은 참 좋은 일이다. 이렇게 암울했던 상황 속에서도, 어리고도 무지했던 나는 그 속에서도 추억이란 걸 찾아낼 수 있었다. 청춘이어서? 아니면 유학이어서? 사실 무엇이 그 이유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유학이라는 환경 자체는 인생에서 몇 없는 최고의 경험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산동대학 위해 분교 도서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추억이 떠오른다


  친구들과 함께 중국어 하나 못하는 상황에서 손발을 다 쓰며 1위안이라도 깎아봤던 그 기억, 친구들과 함께 살던 동네를 벗어나 조금 더 멀리 떨어진 도시로 가겠다고 중국인 택시 기사에게 영어로 길을 설명했던 기억, 역시 중국의 시장이라며 전갈을 팔겠다고 내놓은 걸 친구들끼리 구경했던 기억, 바닷가에서 줄넘기했던 기억, 친구들과 생일 파티를 하겠다고 중국 마트에서 다양한 음식을 사서 나눠 먹었던 기억, 중국인 친구를 처음으로 사귀고 언어 교류를 하겠다며 중국인 하나에 한국인 넷, 4대 1로 우르르 몰려가서 중국인 친구와 대화를 해봤던 기억, 영어도 못 하는 주제에 중국어가 더 무서워서 영어로 떠듬떠듬 말했던 기억...


  청춘이라서 그랬었을까? 유학이라서 그랬었을까? 그 거지 같은 상황에서도 나에게 추억이라는 건 남아 있었다. 어렸기에, 젊었기에, 무지했기에 지금과는 다른 생각과 다른 판단을 할 수 있었기에, 그래서 지금의 나와는 조금 다르기에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 시절이 추억으로 가득해서, 그리고 돌아오지 않을 스무 살이어서, 그 시절을 떠올리면 이제는 누구보다 차가워진 나도 눈물이 난다.


중국 유학을 꿈꾸는 어린 학생들이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더 많고, 더 행복한 추억을 남길 수 있기를 바란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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