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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욱 Sep 08. 2023

내가 워커홀릭이라고?

나에게 당연한 일

  언젠가 아는 여동생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오빠는 워커 홀릭이네요


  사실 그때는 별생각이 없었다. 워커 홀릭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을뿐더러, 그 단어가 가진 의미가 그렇게 와닿지 않았다. Holic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사실 정상적인 상태라기보다는 비정상적이고 과한 상태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난 내가 비정상적으로 일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않는걸?


  물론 누군가에게는 과하게 일을 좋아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공백 제외: 2056자


목차

1. 일의 목적, 그리고 책임

2. 퇴근이 가지는 의미




1. 일의 목적, 그리고 책임

  난 어떠한 일을 함에 있어서 그 일의 목적과 책임을 찾는다. 예를 들어 내가 인턴으로서 무언가를 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난 내가 해야 할 일이 정상적인 개념과 범위에서 하루 안에 끝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려한다. 만약 하루 안에 끝날 수 없는 일이라고 판단되면 지시한 상사에게 작업 기한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근거를 기반으로 해당 작업 기한 내에는 작업이 어려울 것 같은데, 원하는 작업 방식이 있는지, 혹은 작업 기한을 늘릴 수 있는지, 혹은 그래서 이 작업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시 확인하고 조율하는 과정을 거친다.


  위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대부분 오늘 하루 동안 해야 할 양이 명확하게 정해진다. 그러면 난 인턴으로서 지시받은 바에 따라 일을 처리하고, 6시 정각에 퇴근한다. 그리고 6시 이후의 연락은 절대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난 인턴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해야 할 일을 모두 했기 때문이다.


전 할 일 다 했습니다만?


  만약 내가 인턴이 아니라, 정직원이라면? 그래도 똑같다. 하지만 범위가 달라진다. 인턴으로서 일을 할 때는 명확히 해야 할 양이 정해진다. 즉, 책임져야 할 내용과 범위가 명확한 만큼 협소하다. 하지만 정직원이 되면 어느 프로젝트에서 책임져야 할 내용과 범위가 굉장히 넓어진다.


  예를 들어 정직원으로서 한 프로젝트의 현지화를 책임진다고 생각해 보자. 현지화를 책임진다는 것에 대한 명확한 업무량을 알 방법은 없다. 그렇기에 난 나 스스로 조금 더 좋은 번역 품질, 조금 더 효율적인 일 처리, 조금 더 좋은 프로젝트를 위해 일정을 정하고, 업무를 만들고, 과정을 개선한다. 그리고 이것들은 단순한 하루 이틀의 업무와는 궤를 달리한다. 퇴근하고서도 만약 좋은 영감이 떠오르면 기록해 뒀다가 내일 업무에 반영하거나, 혹은 바로 원격으로 접속해서 업무를 최적화한다. 나에게 이건 당연한 일이었다.


2. 퇴근이 가지는 의미

  한 프로젝트를 책임지는 책임자로서, 나에게 퇴근 따위는 큰 의미가 없었다. 퇴근은 행정상으로 회사에서의 업무를 종료하는 시간일 뿐, 퇴근이 모든 프로젝트의 종료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난 업무를 두 가지로 구분한다. 회사에서 해야 할 업무회사에서 하지 않아도 되는 업무, 출근 뒤에는 회사에서 해야 할 업무를 하고, 퇴근 뒤에는 회사에서 하지 않아도 되는 업무를 한다. 예를 들어 출근 뒤에는 회사에서 팀원들과 상의해야 하고, 또 프로젝트의 운영에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일들을 한다. 퇴근 뒤에는 혹여 발생할지도 모를 추가 수요를 고려하면서도, 업무에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일들을 한다. 건강이나 수면 관리도 당연히 다음 날의 업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회사에서 하지 않아도 되는 업무에 속한다.


나에게 이건 당연했다


  어쩌면 나의 직무가 조금 특별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어느 프로젝트에 세 명의 기획자가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한 명의 기획자가 어느 날 나오지 않더라도 나머지 두 명의 기획자가 남은 한 사람의 일을 전달받아서 계속해서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내 자리는 내가 하는 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대체할 사람이 없었다. 그렇기에 내가 회사에 있든 없든 나만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존재했고, 그런 일들은 내가 어디에 있든 나를 찾아왔다. 그러니 난 쉴 수도 없었고, 만약 쉬더라도 계속해서 프로젝트 관련 일들을 이어받아 처리해야 했다.


  이러한 시간이 1년이 넘어가니 쉬는 날에도 연락받고 업무를 처리하는 게 익숙해졌다. 1년이라고 딱 기간을 정해서 설명하기도 어려웠다. 점점 조금씩 이런 식으로 전체 프로젝트의 운영 방향이 잡혔을 뿐이다. 그러면 누군가는 이것이 부당하다고, 이것이 잘못됐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웃기게도 언제든지 업무를 받아서 처리할 수 있도록 고가의 노트북을 구매했다?

  

  이 일을 계기로 아, 내가 워커홀릭일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한 일이 잘못됐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내가 조금 더 효율적으로 어떠한 프로젝트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그러기 위해서 어떤 도구가 필요하다면 충분히 돈을 투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가 어떤 식으로 꼭 내가 투자한 만큼 혹은 그 이상의 금전적 결과물을 돌려주지 않아도 괜찮았다. 난 내가 책임진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서 일을 한다. 난 내가 맡은 프로젝트를 좋아한다. 그리고 난 내가 책임진 이상, 최고의 결과물을 내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최선의 결과물을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돈으로 직결되지 않더라도 나에겐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어찌 보면 내가 워커홀릭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워커홀릭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매주 월요일 누구처럼 월요병 따위를 언급하며 출근을 싫어해야 하고, 6시 퇴근 이후에는 죽은 것처럼 연락이 두절돼야 하며, 휴가 중엔 당연히 연락을 무시하여야 하고, 체력이고 뭐고 내일 출근하지만, 오늘 미친 것처럼 놀아야 하는가?

  

나에게 이런 행동은 참으로 바보 같은 행동일 뿐이다. 만약 그게 정상이고, 내가 워커홀릭이라면 난 그냥 워커홀릭을 택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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