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을 잊으면 내 모든 것이 사라질 것 같은 그곳으로....
여행이란 건 가고 싶어 가는 것.
그러나 이번 나의 여행은 그렇지 않았다.
내 안의 내가 떠미는 여행, 용기가 필요했다.
꼭 한 번은 떠나야 할 것 같은 압박감.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혼자라 외로운가, 둘이라 괴로운가...
내 인생은 내내 그게 문제였다.
이 여행도 그렇다.
출발 전부터 내 마음은 그래서 혼란스럽다.
어디서, 무엇을, 왜.
답은 정해져 있었다. 누구와 어떻게만 빼고.
이름만 들어도,
표지판만 봐도 마음 설레고 또 아린 곳.
한 번은 꼭 혼자서 마주하고 정리해야 했던 공간과 시간들.
하지만 덮어두고, 미뤄두고, 외면했던 그곳.
빛나던 시절과 이별이 공존한 채 지금까지 내 인생을 지배했던,
포항으로 가야만 했다.
모든 빛나던 시절이 있던 그곳이었다.
그래서 그곳을 잊으면 내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 같은 그곳으로.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하겠다는 딸.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엄마지만, 그게 더 무섭다.
나도 아무 설명도 하지 않고 여행을 떠난다.
일찍 맞은 갱년기거나 늦어도 너무 늦게 온 사춘기.
20년이나 지났다.
일부러 덮어뒀는지,
일부러 힘든 기억만 떠올리며 그리워할 여지를 남기지 않았는지,
정말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는지는 모르겠다.
지난겨울 엄마랑 포항에 다녀온 다음부터인 것 같다.
갈증이 난 사람처럼..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고 온 사람처럼..
꼭 다시 혼자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기억을 다 떠올려보고
모든 곳을 다 찾아보고
덮어뒀던 시간을 마주하기로 했다.
7번 국도를 따라가던 길에 만난 강릉 이정표.
스무 살 내가 K를 처음 만난 곳.
뜨거운 여름, 접시꽃을 볼 때면 생각나던 경포대.
이번에 안 가면 평생 못 가볼 것 같은 마음이 들어 방향을 돌린다.
계획에도 없던 경포대를 들렀다가
계획에도 없던 눈물이 흘렀다.
괜찮을 줄 알았다.
접시꽃이 있던 그 골목도
숙소에서 밤바다로 향하던 길 언저리도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어디에도 우리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다시 포항으로 향하는 길에 접어들며 나에게 묻는다.
내 마음을 아리게 하는 것의 실체는 무엇인가.
눈물이 났다. 7번 국도를 달리다 포항 157km라는 표지판을 보는 순간.
내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그곳에 있다.
그런데 지금.
빛나던 그 시절의 사람들을 만날 수 없다.
K가 그리운 걸까.
아니,
나는 싱싱하고, 순수하고, 빛나던 그 시절의 우리가 그저 그리웠다.
그리고 그저 궁금했고, 묻고 싶었다.
우리가 머물던 그 민박은 어디쯤이었을까?
그런데 물을 수 없는 지금.
오랜 시간 나의 세상이었던 사람에게
이런 것도 물을 수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콱 막혔다.
그동안 잠자고 있던 무언가가 내 마음속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계획에도 없고,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던 경포대를 들르면서부터.
이 여행을 시작하면서부터 내 안에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포항은 나에게 이런 곳이었다.
개울에서 신나게 놀다 오면 설탕 가득 탄 미숫가루를 타주셨던 할머니가 계신 곳.
유난히도 뜨거웠던 그곳 여름 햇볕 속에서
할머니랑 연둣빛 연한 콩잎을 땄다.
콩잎에 강된장, 멸치볶음만 있어도 꿀맛이었던 할머니 밥.
저녁노을질 무렵, 어김없이 엄마 보고 싶다고 할머니집 대문 앞에 쪼그려 울던 나.
그렇게 엄마 그리워 울 줄 알면서도
방학이면 당연히 가고 싶었던 할머니집.
공부가 버겁던 고등학생 시절.
교실 창밖에 미루나무 세 그루는 할머니집에 들어가는 장동 버스길을 소환한다.
미루나무가 늘어선 그 길에 내 마음이 가 있다.
연애를 시작한 대학시절에도
방학을 하면 할머니집에 갈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늦잠 자는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계시던 할머니.
K를 만나러 나간다는 나에게 포항 샛바람은 춥다고
옷 든든히 입으라며 토닥토닥해주던 할머니.
속닥거리며 연애를 하다 저녁이면 K랑 같이 할머니집에 간다.
송동에서 탕수육을 사간다.
동네 할머니들 사랑방, 우리 할머니 방에 할머니들이 집합한다.
손녀가 와서 부러운 할머니들 사이에 탕수육까지 사온 손녀를 둔 우리 할머니.
직장을 다니면서도 한 달에 한 번 비행기를 타고 포항에 갔다.
눈이 푹푹 쌓여 걸음을 걷기도 힘든 새벽에 포항을 가겠다고 집을 나서는 딸.
엄마는 딸이 마음에 안 든다.
하지만 하고 싶은 것은 꼭 해야 하는 고집 센 딸.
엄마의 못마땅한 표정을 뒤로하고
무릎까지 쌓인 눈을 뚫고 걷던 그 새벽을 기억한다.
일요일이면 다시 비행기를 타러 K와 함께 공항으로 향했다.
헤어지는 게 아쉬운 우리는 공항 근처 바닷가에 앉는다.
K는 담배를 피운다. 나는 그 모든 것이 좋았다.
내 할머니가 있는 포항에 그 시절 내 세상이었던 K가 있었다.
나에게 포항을 그런 곳이었다.
매 순간 모든 마음이 향하고 내 마음이 완벽하게 충족되는 곳.
할머니가 심은 수국은 그대로다.
잠시 머물다 가는 손녀를 배웅하던 할머니
할머니를 혼자 두고 버스를 탄다.
눈물이 핑 돌아 뒤를 돌아봐도
거기 그 자리에서 손 흔들고 있었던 할머니.
먼지 풀풀 날리던 그 버스정류장에도 할머니는 없다.
할머니는 언제까지 거기 서 계셨을까.
할머니도 나처럼 눈물이 났어? 묻고 싶었다.
추억이 가득한 이 공간은 이제 우리 할머니집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던 할머니집 앞 개울엔 흉물스러운 담이 세워져 있고
풀만 무성하게 자란 그곳에 이제 물도 말라버렸다.
대문에 달려있는 그 풍경은 언제부터 거기 있었을까.
내가 어릴 적에도 거기 있었을까.
사소한 것들이 기억나지 않아 슬펐다.
흉물스럽게 쳐진 바리케이드 안으로 들어가 볼 수가 없었다.
열 걸음만 걸으면 할머니랑 같이 자던 방에도 들어갈 수 있을 텐데..
할머니가 주신 용돈을 몰래 세보곤 했던 쪽방문도 닿을 듯 보이는데..
아무도 몰래 숨겨놓은 보물창고를 한동안 잊고 있다가 열어보니
보물은 어디에도 없다.
텅 빈 보물창고처럼 내 마음에도 구멍이 뚫린 것 같다.
포항에 숨겨뒀던 그 소중한 것들이 이제 다 없다.
충만한 행복이었던 그것들이 이젠 내 것이 아니다.
이제 아무것도 없다는 상실감이 새삼스레 밀려온다.
엄마에게 카톡이 왔다. 어디고?
할머니집. 내 감정이 전해질까 봐 짧은 대답을 하는 나.
아이고, 할매를 우야노, 할매도 우리 ○○이가 거기 간 줄 알라나. 하늘에서 보고 있을라나.
엄마의 카톡에 참고 있던 눈물이 흐른다.
눈물이 나는데 울 수가 없다.
그렇게 울기 시작하면 내 마음을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아서.
버스정류장에서 손 흔들며 배웅해 주던 할머니가...
헤어지기 아쉬워 공항 근처 바닷가에 앉아 담배를 피우던 K가 그리웠다.
여행을 떠나기 얼마 전, 인문학 연수를 듣던 내가 이렇게 낙서를 하고 있었다.
나는 정말로 K를 사랑했던 걸까.
장거리 연애 6년. 전화 없이는 안 되는 연애.
핸드폰도 없던 시절, K는 공중전화 카드를 얼마나 썼는지.
어디야? 물으면 ○○회관.. 대답하던 K.
어디야? ○○계단..
함께 오르락내리락했던 ○○계단을 올라가 본다..
무슨 얘기를 하며 걸었을까.
내가 포항에 가면 기숙사 같이 쓰던 친구를 내쫓았던 K.
내가 사랑하는 K의 그 공간이 너무 좋았다.
여기서 자는구나... 이층침대에서 속삭거리며 연애를 했다.
그런데 저 많은 기숙사 중 K의 기숙사가 어디었지.
옛날 니가 살던 기숙사가 7동이야? 묻고 싶었다.
연못가 벤치에 앉아 오리 얘기를 했었지,
혼자 벤치에 앉아본다.
그런데 그 벤치가 여기가 맞아? 그때 오리에 대해서 뭐라고 했었더라?
또 묻고 싶었다. 중요하지도 않은 것들.
K는 없다. 물을 수 없다. 국가기밀도 아닌 것들을 물을 수 없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경포대 밤바다에서
나는 W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이후 W는 나에게 편지를 보냈지만, 나는 K가 좋았다.
우리는 경포대에서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는데.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그저 K를 슬쩍 바라봤을 뿐.
왜 K에게 끌렸는지.
무슨 용기로.... 난 K를 만나겠다고 그의 학교에 갔다.
내가 찾아왔던 그날 밤, 우리가 만난 곳이 여기였던 것 같은데...
떨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함께 앉았던 스무살의 우리를 떠올렸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렇게 아름답고 빛나는 순간들을 잊고 살았다.
사소하고 중요하지도 않은 것들이 낱낱이 떠오르며
K에게 물음표를 던진다. 알아내지 못하면 발을 동동 구를 것 같은 마음으로.
우리가 헤어진 뒤
10년은 방황을 했고, 10년은 잊고 살았다.
내 인생이 너 때문에 망가졌어.
좌절감, 우울함, 피해의식에 갇힌 채로.
빛나던 우리의 시절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내일을 생각하면 견딜 수 없었던 시간들이었다.
앞이 내다보이지 않았다.
하루하루. 눈앞에 닥친 작은 일들만 생각하기로 한다.
하루를 무사히 보내면 다행이다 하면서.
마음에 휘몰아치던 태풍이 조금씩 잠잠해지던 시간에도
나는 그냥 과거도 미래도 생각하지 않는 하루살이처럼 살았다.
이번 생은 망했어.. 그렇게 그렇게 또 잠잠한 10년을 보냈다.
우리가 헤어지던 그때, 나는 진짜 이별을 하지 못했다.
혼자서 떠난 이 여행을 하며
나는 이제서야 헤어지는 중이다.
20년 동안 덮어두어 먼지가 쌓인
길기도 했던 내 젊은 시절들과의 건강한 이별을 하는 중이다.
하지만
반짝이던 순간순간의 기억을 놓쳐버려 아프고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또 아프다.
욕심 많고 애살많은 내가 발을 동동 구른다.
20년 만에 마음에 또 태풍 속 파도가 휘몰아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