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가 가진 종교적 믿음과 상관없다. 크리스마스는 우리 피 속에 이미 각인된 낭만의 이름이다. 내가 추억하는 크리스마스는 낭만이라는 도우 위에 슬쩍 얹혀진 아련한 슬픔의 기억이다.
지금은 누군가의 권리를 위하여 사라져 버린 풍경이지만 그 옛날 크리스마스의 거리는 그 자체로 낭만이었다. 거리마다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 캐럴. 추운 겨울, 군고구마를 팔아야 하는 아저씨에게도, 세상을 다 가진듯한 사랑에 겨운 연인들에게도, 부모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다리는 철딱서니 아이에게도, 햇살이 모두에게 내리쬐듯 그 시절 거리는 모두에게 크리스마스의 낭만을 음악으로 전파시켰다.
어린 시절의 나는 부모님의 친구들 댁에서 돌아가며 크리스마스의 시절을 보냈다. 어린 우리들은 부모님이 주신 용돈으로 동네 문방구에 가서 살았더랬지. 초록, 빨강, 은빛, 금빛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장식품들은 어린 우리들의 볼을 분홍빛으로 만들어주었다. 두 눈이 휘둥그레져 그 아름다운 장식들을 구경하다가 매달지도 못할 포인세티아 꽃잎 장식을 사기도 했고, 형형색색의 오너먼트와 트리 토퍼며 장식볼들을 사다 나르며 그저 행복했었다. 산타와 루돌프가 그려진 크리스마스 카드도 좋았지만 나는 유독 흰 눈이 덮은 고요한 밤이 그려진 크리스마스 카드를 고르곤 했다. 사소하고 귀여운 이유들로 서로를 이겨먹겠다고 싸우기도 했던 우리는 또 서로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전해주며 그저 행복했던 나날이었다.
문방구에 펼쳐진 크리스마스 세상, 그리고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는 거리, 엄마가 사주신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똑순이 캐럴을 따라 부르며 손꼽아 크리스마스를 기다렸던 시간들이 나에겐 크리스마스의 낭만이었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 생각해 보니 나의 크리스마스 추억 속에는 조금은 슬픈 동화들이 스며있었다.
어린 시절의 어느 해 크리스마스. 그 시절 많은 아버지들이 그랬을 테지. 요즘 젊은 부부처럼 주말이라도 함께 쇼핑을 하는 세대는 아니었으니. 나의 아버지도 역시 직장에 매여 우리와 소소한 일상을 함께 하긴 어려웠다. 어린 우리와 시간을 보내고 필요한 무언가를 사주는 일은 엄마의 몫이었다. 그러나 그 해 크리스마스 아침. 엄마는 어디에 계셨던 걸까.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 집에 놀러 와 하룻밤을 함께 지냈던 아부지 친구딸과 함께 나는 난생처음 아부지랑 쇼핑을 갔더랬다. 아버지를 따라 쫄랑쫄랑 들떠서 걷던 우리, 앞서 걷던 아부지의 뒷모습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크리스마스의 백화점은 얼마나 아이들을 유혹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들뜨고 설렌 마음으로 갖고 싶은 것을 골랐다. 팔뚝만큼의 길이로 만들어진 연두색 개구리 손인형. 우리는 둘 다 그것을 골랐다. 그 개구리 뱃속엔 오만가지 맛의 달콤한 사탕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어린아이들은 그렇지 않나. 그 많은 달콤함 중 하나를 고르는 것, 그 순간순간이 다 설렘이고 행복이었지. 나는 크리스마스가 지나고도 한참을 그 개구리 뱃속의 사탕을 골라먹는 재미로 내내 행복에 겨웠다.
그 개구리 크리스마스 선물의 기억이 떠오른 어느 날, 어른이 다 된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그때 어쩌다가 아빠가 우리를 백화점에 데리고 갔을까? 그저 아빠는 돈을 벌러 직장에 다녔고, 우리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사주는 일들은 엄마가 했을 텐데, 그날은 무슨 사연으로 아빠가? 나의 질문에 엄마의 짧은 대답. 그때 느그 아부지, 또 회사에 사표 던지고 놀 때 아이가!
우리 집은 평범한 중산층의 겉모습으로 살아왔지만 아버지는 사업을 하셨고 또 실패를 맛보기도 하였으며, 좋은 직장을 구해도 자주 사표를 던지고, 새 직장을 만나기 전에 휴식기가 있곤 했었다. 엄마의 짧은 대답은 달콤하기 그지없던 개구리 손인형 선물의 낭만을 훅 날려버렸다. 그때 아부지는 얼마나 심란한 마음이었을까. 사업으로 생긴 빚도 있었다. 월급쟁이가 월급을 못 받는 휴식기가 길어질 때 나날이 돌아오는 그 지출을 어찌 감당했을까. 백화점으로 향하던 그 기억 속에 앞서 걷던 아부지의 뒷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커가는 우리들을 키워야 하는 젊은 아부지,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었던 그날의 아부지는 무슨 생각에 잠겨 걷고 계셨을까. 행복으로 기억되던 그날의 아부지 뒷모습은 너무나 애틋하였다.
그런 시절의 연장선. 어린 오빠와 나는 철 모르고 그저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산타할아버지는 없다고 오빠가 말했다. 산타할아버지가 아니라 엄마랑 아빠가 선물을 사주시는 거라고. 그것도 모르냐고 구박을 하면서 오빠는 나의 낭만을 깨버렸다. 지금도 극 T성향의 오빠는 감성파괴자라 불리고 있다. 그 어느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깨어진 낭만 한 조각을 붙잡고 싶었던 나. 나는 산타를 대신한 부모님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고 있었다. 크리스마스이브날, 우리는 이불을 덮고 누웠다. 빨리 잠을 자야 산타는 아니더라도 엄마 아빠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머리맡에 놔두시니까.
나는 오빠에게 조용히 물었다. 엄마 아빠가 선물을 준비하셨을까? 어린 오빠가 대답했다. 자기가 봤다고. 엄마가 부스럭부스럭 베란다에 무엇을 숨기는 것을 봤다고. 자고 일어나면 그 선물이 우리 머리맡에 있을 거라고. 나는 내 양말이 작아서 그 안에 선물을 담지 못할까 봐 걱정을 하며 잠이 들었다. 그런데 다음 날, 기다리던 선물이 없었다. 너무나 실망하여 눈물이 났던 나는 오빠에게 짜증을 부린다. 오빠가 봤다면서! 투닥거리는 우리를 보며 엄마가 조용히 말씀하셨다. 된장찌개 끓이려고 바지락을 샀는데 냉장고가 가득 차서 넣을 곳이 없었다고, 그래서 추운 겨울이니 베란다에 바지락이 담긴 비닐봉지를 가져다 두었다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던 어린 우리의 기대와 실망을 지켜보던 젊은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래, 지금의 나보다도 젊었던 우리 엄마는 실망으로 울어대는 나를 보며 어떤 생각에 잠기셨을까.
크리스마스의 환상은 그렇게 그렇게 희미해져 가기 마련이다.
그렇게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나는 연애를 시작했고 환상이 아닌 실체를 갖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낼 시간들에 그저 설레는 마음으로 그 해의 크리스마스를 손꼽아 기다린다. 장거리 연애를 하던 우리는 크리스마스가 아니라도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에는 줄기차게 만나곤 했다. 굳이 약속하지 않아도 방학이면 나날이 만나야 했다. 크리스마스이브, 나는 샤워를 한다. 크리스마스의 거리를 누비고 다닐 옷도 골라두었다. 눈이라도 오는 크리스마스라면 모자도 필요할까.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내 마음속 분주함처럼 내 방도 설레고 분주한 모습이었을 테지. 평소엔 하지 않던 살구빛 볼터치로 화장도 하며 그의 전화를 기다렸었다.
그리 자주 울려대던 그로부터의 전화가 오지 않는다. 어둑어둑해질 저녁 무렵, 그에게서 전화가 온다. 긴 기다림에 서운했지만 그 마음을 살짝 덮어둔 나는 몇 시에 만날지 물었다. 그는 오늘 만나지 못한다고 한다. 오늘이 엄마 생신이라고. 엄마도 오빠도 크리스마스이브에 바람맞았다면서 자꾸만 나를 놀렸다.
엄마 생신은 갑자기 정해진단 말인가. 만나지 못하면 미리 말을 해주었어야 했다. 아니 내가 설레발치고 먼저 준비한 것이 문제였을까. 혼자 계신 엄마 생신, 지금 생각하면 그럴 수 있다 싶지만 20대의 나는 못내 그 선택이 서운하였다. 긴 하루 중에 낮에든 저녁에든 시간을 나누어 만날 순 없었을까. 혼자 계시는 엄마를 애틋해하는 그가 미웠다.
그렇게 크리스마스이브에 바람을 맞고 속상해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던 밤, 전화가 왔다. 그 시절엔 핸드폰이 없었다. 우리 집 근처 공중전화박스에서 전화를 한 이 남자. 뾰로통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 나에게 지금 나오라고 한다. 시간이 너무 늦었다. 그리고 화도 났다. 이렇게 올 수 있었으면 미리 얘기라도 하던가. 늘어져 누웠던 내가 그 밤에 나가기도 눈치가 보였고, 추운데 기다리는 사람을 놔두고 변신을 할 시간을 벌기도 어려웠다. 나는 그냥 그런 답답한 선택을 한 그가 더 미웠고, 추운데 얼어있을 그가 또 미웠다. 그렇게 나는 결국 나가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그에게서 또 전화가 왔다. 어젯밤 우리 집 공중전화박스 근처 어딘가에 선물을 놓아두고 왔다고. 없어지면 어쩌려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서둘러 옷을 입고 공중전화 근처를 헤맸다. 인사동 거리에서 내가 탐냈던 신랑 신부 도자기 인형이 있었다. 스쳐 지나가며 인사동 골목 유리창 안에 있던 그 인형이 우리인 듯 그와 행복할 앞으로의 시간들을 꿈꾸며 바라보았던 그 인형. 서로 사랑했으니 결혼을 꿈꾸었고 그 파스텔톤 도자기 인형이 꼭 우리 같았다. 그는 그 밤에 도자기 인형을 풀숲에 숨겨두었다.
그 선물은 미리 준비했을까. 아니면 토라진 나를 달래러 늦은 시간 혼자서 인사동 골목을 헤매며 샀던 것일까.
그때의 우리, 지금 생각하면 아직 아무것도 모를 그저 어린 스무 살 무렵의 애송이들이었다. 서로 충돌하던 마음들이 있었을 테지. 혼자 계신 엄마를 챙겨드려야 하는 아들의 마음, 그리고 나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던 연인의 마음. 내가 그 밤 나가지 않아 추운 겨울에 되돌아갔을 그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아픈 만큼 화가 났다. 왜 그런 선택을 하였는지.
섭섭했던 시간은 또 다른 일들로 덮어져 잊혀지고, 풀숲에서 찾아낸 그 신랑신부 도자기 인형은 나의 방 피아노 위에 예쁘게 장식되었다. 우리는 오래 사랑했으며, 그 인형은 오래 사랑받았다. 그러나 어느 날, 나의 실수로 피아노 위 먼지를 닦다가 그 도자기 인형을 떨어뜨렸다. 신랑 인형의 목이 깨어져 나갔다. 어떤 사물에 마음을 담으면 안 되는 것. 나는 온갖 종류의 본드로 그 인형을 다시 붙여놨지만 내내 찜찜한 마음은 가실 줄 몰랐다. 그리고 우리는 결국 헤어졌다.
누구에게나 각인된 낭만의 이름. 올해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는 왔다. 나는 여전히 크리스마스의 낭만을 어린 시절 문방구의 반짝이던 오너먼트 사이에서 또 거리에 울려 퍼지던 캐럴 속에서 찾는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 빛나던 세상이 황홀하게 펼쳐지던 문방구에 들락거리는 나이가 아니다. 그리고 요즘의 거리는 크리스마스 캐럴의 향연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나에게 있었던 일들은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러나 시간은 그 기억을 다르게 비추어 낸다. 달콤했던 개구리 뱃속 사탕은 달콤함이 아니었다. 어린 남매의 설렘은 젊은 엄마를 아프게 만든 눈치 없음이었다.
그저 우유부단하게만 느껴졌던 그의 선택은 애틋함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