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떼 모는 보더콜리 같은

혼자 쓰는 일기 2026. 1.

by 봄비

브런치팀의 알림음. 글쓰기는 운동과 같아서 매일 한 문장이라도 글을 쓰라고.. 친히 나의 게으름을 일깨워주는 오늘. 가만히 나를 생각해 보았다. 나는 대체 왜 이러는지.


밀린 숙제처럼 글을 쓰지 않겠다고 생각한 이후 나는 게을러졌다. 아니 그냥 풍선처럼 이쪽 말고 다른 쪽이 부풀어 올랐다. 그러고 보니 나는 늘 나를 어떤 식으로든 몰아치는 사람인 것 같다. 양 떼 모는 보더콜리처럼, 나는 나를 이리저리로 몰아대는 사람.


어느 에세이 속 대화가 떠오른다. "망가지는 게 뭔가요?" 물으니 그냥 되는 대로 막살고 싶어지는 것이라던 작가의 대답. 나의 그런 시절에 내가 나를 또 얼마나 몰아댔는가. 하루도 쉴 새 없이 놀아야 했다. 술 마시고, 여행 가고, 여행 가서 술 마시고, 폭풍우 속 바다에 뛰어들고 난리법석. 테니스 치고 술 마시고, 술 깨려고 테니스 치고. 하루도 놀 약속이 없으면 안 되던 시간을 철저히 만들었던 보더콜리.


나는 "무위" 또한 철저한 사람이다. 격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순간, 정말 나는 침대와 한 몸이 되어버리는. 생존을 위한 출근 외에 어떤 것에도 즐거움과 의미를 두지 않고 넷플릭스와 과자 조각으로도 살아낼 수 있는.


그러다 또 일로 나를 몰아대는 내 안의 그놈. 연구부장이던 나는 방학 내내 새로운 변화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나의 일이 곧 너의 일로 이어지는 구조. 나의 '부지런한' 페이스가 마땅치 않았던 직장 동료들은 내가 좀 놀았으면 싶다고, 방학 동안 연애도 하고 여행도 다니며 좀 놀았으면 좋겠다고 슬쩍 쓴소리를 돌려하곤 했다. 그러나 그때 나는 또 철저한 계획 아래 나날이 일할 리스트를 적어두고, 그 일을 마치며 연필로 두 줄 긋는 것이 하루의 낙이었다. 그렇게 할 일이 없으면 안 되도록 또 나를 몰아쳤다.


글을 쓰고 싶어 졌던 어느 날부터 나는 또 그 세계로 나를 몰아댄다. 거의 매일 한 편씩 글을 써서 발행하도록 만들어놓고 그 약속을 놓치지 않으려 발을 동동 구른다. 앞으로 발행할 수 있을만한 글이 몇 편은 되어야 안심을 하며. 아무도 내 글을 애타게 기다리지 않는데도 나는 그렇게 한다. 하루하루 내가 써야 할 글도, 읽어야 할 글도 내 시간을 다 잡아먹어 버린다. 브런치 알림음이 나를 구속하고 나는 또 지친다.


이젠 또 읽어야겠다 싶어 져 또 책을 읽는다. 아니, 정확히 읽어댄다는 표현이 더 맞을 듯. 이 시대의 지성도 그러지 않았다는데 나는 대체 이 시대의 무엇이 되고 싶어 이러는지 참 모를 일이다. 그 책들 다 먹어버릴 기세로. 그러자니 여유 있는 이 방학의 시간도 책꽂이의 책들이 나를 몰아댄다. 부지런히 읽은 책보다 읽어야할 책들만 나에게 말을 건다. 시간이 없다고, 빨리 서두르라고.


그러나 오늘 아침, 브런치의 친절한 메시지. 갑자기 나를 멈춰 세운다.


가방 속 책 두권. 그건 숙제가 아니잖아. 나의 이 몰아침이 어떤 의미인지 한 번 생각해 보는 게 어떨까 싶어졌다. 최지희는 나의 성향을 제 나름으로 분석했지만 나는 격한 그녀의 표현에 동의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내 안에 무언가 채워지지 못한 욕구가 있다는 생각은 분명히 든다. 공허함을 채우고자 하는 방식이 시시때때로 달라졌을 뿐. 다 좋다. 하지만 좀 로테이션해 가며 허기를 채우는 세련되고 융통성 있는 지천명이 되어보면 어떨까 싶다.


이것도 했다가 저것도 했다가.

쓰고 싶은 무언가가 떠오르면 쓰고 없으면 말고.

좀 늦으면 어떻고 오늘 일을 내일 일로 미루면 어떤가.

읽던 책의 마지막 챕터를 꼭 오늘 읽어야 하는가 이 말이다.


이번에 또 미친 듯이 읽어대던 글 속에 "내버려 둬"의 해석이 문득 떠오른다. 버리는 것과 두는 것의 합일. 그 내버려 둬의 문화 속에 묵은지가 태어난다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레이존 속에서 새로운 의미가 나올 수 있음을. 노는 것이냐 일하는 것이냐, 쓰는 것이냐 읽는 것이냐. 이쪽과 저쪽으로 몰아치는 내 세상 속에선 묵은지가 안 나올 것이라는 뼈때리는 깨달음.


보더콜리야, 가끔은 양 떼도 내버려 둬.

가끔은 들판에 그냥 엎드려봐.

풀냄새도 맡고 바람 한줄기 느끼다 허리 아프면 일어나 양 떼를 돌봐.

또 양 떼를 몰다가 또 나만의 숲 속으로 마실도 가 보고..

좀 그래 봐. 요리조리, 태세전환을 빠르게 해 보라고.


아하.. 내일은 양떼목장에나 어슬렁거리며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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