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구석
더위가 절정일수록 식당의 손님도 많아집니다. 손님이 많으면 좋기도 하지만 더운 날 특히 주방은 뜨거운 열기로 사우나처럼 되어서 일하기가 어렵습니다. 유난히 더웠고, 손님도 많았던 날 영업시간이 끝나가고 마지막 정리를 하던 중에 주방에서 쿵 소리와 함께 짧고 심각한 비명 소리가 들렸습니다. 깜짝 놀라서 들어가 보니 실장님이 바닥에 누워 고통스러워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직원이 말하길 환풍시설인 덕트를 닦기 위해서 업소용 가스레인지 위에 올라갔다가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위에서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처음 하는 일도 아니고 수년째 가게 마감하면서 반복했던 일인데 그날은 본인도 이해할 수 없는 실수였다고 며칠이 지나고 말을 했습니다.
높이 1미터 남짓한 곳에서 중심을 잃고 그대로 떨어졌으니 걱정이 되었습니다. 다음날 병원에 가보니 꼬리뼈에 금이 갔고 온몸에 멍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회복을 위해서는 2달 정도 입원을 하든지 통원치료를 받으면서 최대한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실장님의 몸상태도 걱정이지만 식당에서 제일 중요한 음식을 책임지는 사람이었고 여름휴가철은 일 년 중에서 5월만큼이나 바쁜 시기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사고가 났던 순간을 cctv로 확인해 보았습니다. 영상을 보면 더 크게 다쳤어도 이상하지 않은 사고였습니다. 만약 머리가 먼저 닿았으면 너무나 심각해질 만한 상황이었습니다. 중요한 사람이 빠져서 일이 힘겨워지거나 음식에 문제가 생기는 것보다 실장님의 몸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6년 전 인도배낭여행이 떠올랐습니다. 그때를 기억하면 여전히 생생한 말이 “No, Problem!”입니다.
어떤 문제가 생겨도 그들은 ‘노 프라블럼’을 말하며 미소 지었습니다. 문제가 있는데 없다고 말하는 것이 짜증 날때도 있었지만 사실 지나고 보면 그냥 그렇게 해결이 되기도 하고 큰 문제가 아니기도 했습니다. 그 말은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일을 하며 문득문득 내뱉고 싶은 말이 되었습니다. 서비스업이라는 것이 작은 실수도 용납할 수 없는 예민함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고객에게 질타를 받거나 할 때 ‘노 프라블럼’이라고 말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말이 용납될 수가 없을 겁니다. 말의 본래 의미보다 불편한 사람을 놀리는 뉘앙스가 있기 때문입니다. 힌두신을 숭배하는 인도인들은 어떤 상황이라도 신의 은총으로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믿는 구석이 있어야 가능한 말이라 생각합니다.
실장님이 2달 남짓 못 나오는 동안 보조 역할을 하던 분이 실장님의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본인의 주된 일이 아니었고 일도 많아져서 처음엔 불평도 하고 실수도 있었지만 금세 책임감이 장착되고 몸도 적응하며 기대 이상으로 잘해주어서 바쁜 시기를 잘 보낼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순간순간 문제들이 숱하게 발생하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 때가 있었습니다. 올해만 해도 가게에서, 집에서 그리고 일상에서 작은 사건 사고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그런대로 잘 흘러왔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글을 쓰면서 아픈데 없이 소박하고 건강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앞으로도 잘 흘러갈 것입니다. 인도인들에게는 ‘노 프라블럼’이 있지만 나에겐 ‘그나마 다행’일 거라는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끔 아내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면 속편한 소리라고 핀잔을 주기도 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