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이유

나는 너의 위로다

by 차진호

새해를 맞이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날, 친구 부부가 가게에 찾아왔습니다.

25년간 일했던 회사에서 퇴직 한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뭐든 일찍 시작했기에 은퇴도 가장 먼저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친구는 생일도 가장 빠르고, 취직도 제일 먼저 하였습니다. 결혼도 일찍 해서 딸은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2~3년 전부터 출근하는 게 무서울 정도로 회사 일이 버거웠다고 했습니다. 과중한 업무와 함께 술도 많이 늘어서 건강이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느 날에는 횡단보도 앞에 서 있다가 지나가는 차에 뛰어들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도 했습니다. 친구의 아내는 남편의 그런 상황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고, 잘 챙겨주지 못했다는 자책의 말도 했지만, 가족을 위해 더 버텨주지 못한 남편에 대한 원망의 마음을 내내 비추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테이블 위에는 술병이 쌓여 가고 있었습니다. 부부는 대화 중간중간 감정에 북받쳐 울기도 했고, 옛이야기에 웃기도 했습니다. 감정을 쏟아내면서 퇴직이 없는 자영업자인 나를 부러워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제 형편이 친구보다 나은 게 별로 없었고, 나 역시 일에 대한 고민이 마음속에 많이 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친구의 무너진 마음과 안색을 최대한 살펴 주었고, 예전의 유쾌하고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돌아오길 바랐습니다.


지난 4월, 코로나 시기에 이혼한 친구는 아버지의 부고를 알려왔습니다. 이혼이라는 인생의 파고에서 벗어나지도 못한 것 같은데 또 한 번 찾아온 시련에 안타까운 마음이었습니다. 주변 가족들은 슬퍼했지만 오랜 시간 병으로 고생하셨기 때문에 친구와 그의 어머님은 애써 시원하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친구는 20년 전 나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가 떠올랐다고 했습니다. 성인이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어렸었기에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슬픔과 아픔을 잘 몰랐었다고, 그러면서 그 당시에 제대로 전하지 못했던 위로의 말을 오히려 나에게 해주었습니다. 장례의 과정을 함께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긴 연휴가 있었던 10월에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퇴직한 친구도 다시 보았습니다.

실수로 떨어뜨려 깨진 술잔을 보며 자기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할 정도로 자존감을 상실했었기 때문에 그동안 걱정도 많이 되었고 궁금했습니다. 가끔 안부 카톡을 하긴 했지만, 긴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그의 아내는 1월에 보았을 때보다 다행히 많이 밝아 보였습니다. 여행을 몇 군데 다녀왔고, 부부가 함께 거의 매일 운동과 산책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지난번 가게로 찾아와서 나누었던 대화로 인해 많이 위로받았다며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무너진 마음으로 친구가 찾아왔을 때, 저는 사실 나의 상황을 전하며 네가 나보다 낫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들어주었고 같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식당을 하는 친구로서 밥 한 끼 대접한 것 밖에는 특별하게 해 준 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편 든 생각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게 앞에는 아스팔트를 깔아놓은 주차장이 있습니다. 우연히 그곳에서 어느 숲 속 나무에서나 있어야 할 것 같은 커다란 장수풍뎅이가 어디론가 가기 위해 느리지만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차장 아스팔트 위에 떨어졌을 것이고, 살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듯 보였습니다. 장수풍뎅이의 몸짓을 보며 어떤 면에서는 우리와 처지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의지와 상관없이 지구별에 태어나서 끝이 보이지 않는 아스팔트처럼 아득한 길을 가는 것이 천상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합니다. 사람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주변의 모든 것으로부터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위로도 받고 사는 것 같습니다. 세상의 모든 주체인 ‘나’들은 당신에게 위로의 존재입니다. 무얼 해서도 아니고 어떤 모습이어서도 아닙니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굳어있던 마음이 말랑해질 때가 있고, 눈과 비, 산과 바다를 보면서도 감동받고 평안을 얻을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사소하게 느꼈던 어느 벌레의 움직임을 통해서도 누군가는 위로를 받습니다.


나는 너의 위로다.

내 나이 50이 되고서 문득 세상 모든 것들의 존재의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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