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그대로
내가 주는 건 좋은데 남한테 받는 건 싫은 게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간섭'입니다. 우리는 보통 간섭받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른 아이 상관없는 것 같습니다.
한식이 주 메뉴인 우리 가게 주방에는 반찬만을 담당하는 분과 메인 요리를 담당하는 분이 따로 있었습니다. 찬모님과 실장님으로 불리는데 매우 중요한 자리입니다. 본인들 음식에 사장이 아닌 다른 사람이 지적하는 걸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사장이 말해도 쉽게 수긍하지 않기도 합니다. 두 사람 사이도 그렇지만 다른 사람과도 마찬가지입니다. 홀에서 반찬을 담아서 나가는데 찬모님은 본인 일로 바쁜데도 홀 직원이 반찬 담는 걸 유심히 지켜보며 양이 많다 적다, 촉촉하게 담아라, 모양이 이쁘지 않다 등 잔소리를 합니다. 심지어 집게를 뺏어서 직접 담기도 합니다. 때로는 그런 말이나 행동이 과해서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때도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찬모님의 지적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당신이 직접 담았을 때도 그리 큰 차이는 나지 않았습니다.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고 내가 바라는 걸 똑같이 해줄 수도 없습니다. 내 손을 떠난 것에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마시고 그냥 좀 냅두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쉽게 바뀌진 않았습니다.
분명 성인이 되고 난 후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야한 걸 기대하고 보았다가 인생 영화 중 하나로 저장된 영화가 있습니다. 시한부 알코올중독자인 남자와 거리의 여자인 매춘부 사이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입니다. 주인공들은 우연히 만나 서로의 처지를 알고 간섭하지 않는 조건으로 동거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금세 서로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동거의 조건을 깨고 간섭 하게 되고 결국 관계도 깨지게 됩니다. 영화 마지막에는 여자가 남자에게 어디서든 편하게 마실 수 있도록 휴대용 술병을 선물합니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상징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진정한 사랑뿐만이 아니고 모든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상대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영화였습니다.
개그프로에서 할머니 분장을 하고 관객들의 고민 상담을 해주는 코너가 있습니다. 남편이 아기를 씻길 때 계속 울린다는 고민, 아들이 연애만 하고 결혼을 안 한다는 고민 등을 이야기하는데 공통적인 대답이 그냥 좀 냅두라는 것이었습니다. 집에서는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아들에게 다 너 잘되라는 마음밖에 없다는 이유로 잔소리하고 다그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말이 심해지면 아들은 좀 내버려 두라고 살짝 반항하기도 하는데 그땐 또 멈칫하게 됩니다.
걱정한다는 이유로, 생각해서 한다는 이유로 좋은 의도니까 간섭이 아니라는 믿음으로 간섭합니다. 하지만 상대방의 개선을 위해서라기보다 내 안의 불안을 해소하려는 마음이 사실 더 큰 것 같기도 합니다. 기다리고 지켜보는 건 어려운 일이고, 바쁜 세상에서 비효율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좀 내버려두길 나도 바라고 대부분이 바라는 것입니다. 특히 내 손을 떠난 일에는 내버려두어야 합니다. 그게 사랑과 평화를 지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