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관계는 늘 생각보다 깊게 남는다
어릴때는 “착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말을 잘 들어서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그저 분위기를 흐리지 않았고, 굳이 나서지 않았을 뿐이었다.
관계 속에서 착한 사람은 늘 마지막에 남는다.
모두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돌아간 자리에서,
말하지 않은 마음만 고스란히 떠안은 채 혼자 남는다.
“괜찮아.”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
“내가 좀 더 이해하면 돼.”
이 말들은 상대를 배려하는 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나 자신을 뒤로 미루는 말이기도 하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서야 알게 된다.
‘나는 또 한 번 나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구나…’
착하다는 말 뒤에는 종종 이런 문장이 숨는다.
‘나는 괜찮아도 돼.’
바보 같은 말이다.
내 마음은 그런 계약을 한 적이 없다.
계속해서 무시당한 마음은 결국 신호를 보낸다.
잠이 오지 않거나, 이유 없이 서운해지거나,
아무 일도 없던 하루가 유난히 피곤해진다.
그 밤에 남은 건,
상대를 이해한 나와
이해받지 못한 나였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잘 지내는 사람이 되려고 애썼을까.
조금 불편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너무 오래 나를 비워온 건 아닐까.
착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저 버려지지 않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하지만, 동시에 이런 마음도 따라왔다.
이렇게까지 애써왔다는 건
그만큼 관계를 소중히 여겨왔다는 것 아닐까.
나는 무례해서 참아온 게 아니라,
다정해서 말하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밤은 조금 덜 초라해졌다.
다음번에도 나는, 여전히 쉽게 착한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이해가 나의 몫일 필요는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언젠가는 누군가를 이해하기 전에
나를 먼저 부르는 밤이 올 거라는 것도 안다.
그때의 나는 혼자가 아닐 것이다.
적어도, 나 자신과는 함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