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는 것은 일종의 여행이다. 대한민국의 서비스 수지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고, 즉 국경 밖으로 나가 우리나라에는 마이너스의, 여행지엔 플러스의 경제효과를 가져오지 않고 여행하는 법이다. 게다가 탄소 배출도 않고 싸기까지. 책값, 그리고 좀 더 몰입하기 위해 필요할 땐 커피 한 잔이면 족하다.
이 생각은 물론 내가 창안한 것이 아니다. 수많은 이들이 부르짖었겠지만, 난 특별히 이 분에게 배웠다. 문지혁 작가님. 처음엔 그분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들었지만, 소설 <중급 한국어>에서 그 가르침을 다시 만났다.
하지만 '진짜' 여행이라고 부르려면 요건이 한 가지 더 추가된단다. 일상에서 비일상으로 건너갔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돌아온 그 자리는 아까 그 자리가 아닌. 작지만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 변화가 없다면 가짜 여행이다. 작가의 친절한 예시에 따르면 하고 싶은 말이 없는 이야기, 끝끝내 주인공이 달라지지 않는 이야기, 패키지여행 같은 것들이 가짜 여행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차라리 가짜여행이 그 정도면 나쁘진 않겠다 싶다. 대개 시간의 진행에 따라 되려 자아의 울타리가 더 쪼그라들거나 확증편향이 공고해지지 않나? 더 완고해지고, 남의 말에 귀가 더 닫히고, 유튜브에서 권하는 내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는 표준 분포의 중간에서 극으로 점점 옮겨가지 않는가?
왜 이렇게 사람은 계속 좁아지는가 싶다. 정해진 것이 없던 학생 시절에는 어디든 옮겨 다닐 수 있었다. 자취방 짐도 리어카 하나면 충분했고, 문학에서 정치학으로, 경제학으로 어디든 기웃거려도 어차피 배운 것이 얼마 없어 매몰비용이 거의 없었다. 방 한구석에 앉아 쉽게 인생을 얘기하려 해도 꾸짖는 이는 드물었다. 하긴, 그럴 수 있는 게 학생이란 정처 없는 존재 자체의 특권이라 생각했다.
직업이 생기자 할 수 있는 말도 줄어들고, 둘러볼 여력도 없다. 집은 없어도 짐은 많아졌고, 하고픈 일보단 해야 할 일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하는 일마다 새로운 여행이었지 싶다. 신기했고, 궁금했다. 알고 싶은 것과 함께 몰라도 되는 것과, 알고 싶지 않은 것도 알게 되고, 알게 된 만큼 무언가를 상실하는 기분이었지만.
하지만 오래지 않아 권태가 찾아올 것을 안다. 궁금하지 않은 단계, 삶에서 더 매운맛을 봤기에 드라마도 심드렁하고, 얼추 음식 맛도 거기서 거기고. 어제 같은 오늘과 오늘 같은 내일에 튀는 불꽃이라곤 담뱃불을 붙이기 위한 라이터 부싯돌 외에는 없는 그런 아재의 삶. 물론 세상은 정신없이 변화하지만 따라가지 않기로 마음먹고 내 자리에 웅크리고 나면 그저 그뿐인.
일기에 집착했던 이유가 이것이었지 싶다. 권태까지는 가지 않으려고.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점점 좁은 지름의 동심원을 그리며 중심으로 수렴해가며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그런 삶이 무서워서. 어제와 한끝 달랐던 오늘을 어떻게든 발견해서 오늘이 가짜가 아니라 진짜 여행이었음을 적어도 나에게 입증하려고. 어디서 먹고, 어디서 자고, 어디서 사진 찍을지 다 정해져 있는 패키지여행이 아니라 자유여행이었다고 말하고 싶어서. 그래서 어떻게든 내가 찍은 사진으로 내가 머무른 자리를 말하고 싶었구나.
내일도 오늘과 같은 시각, 같은 자세로 같은 문을 열고 같은 침소에 돌아오는 하루겠지만, 같은 자리가 아니려면 사실 필요한 건 사진이 아니라 다른 선택일 것이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선택. 진짜여행은 거기서 시작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