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급 한국어>는 <초급 한국어>에 이어지는 이른바, 오토 픽션이다. 덕분에문지혁 작가가 젊은 시절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소설을 읽으며 아주 자연스레, 조금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덕분에, 오토픽션이란 장르의 매력에도 흠뻑 빠지게 되었다. 크나우스고르의 <나의 투쟁>이며, 아니 에르노의 작품들을 연달아 읽게 된 것도 그의 <한국어> 시리즈 영향이다.
<초급 한국어>가 이방인으로서 낯선 땅 뉴욕에서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작가를 그렸다면, <중급 한국어>는 국내로 돌아와 좀 더 본격적인 한국어, 글쓰기를 가르치는 모습을 그린다. 물론 소설 속에선 여러 선율이 교차하며 복합적인 감정을 환기시키지만, 그중 <초급 한국어>에서 느껴졌던 '낯섦'의 감정은 <중급 한국어>에서 '두려움'으로 확장되어 나타난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앞에서 숱한 선택을 할 때마다 우회할 수 없는 그 감정. 기대고 부빌 가족들은 점점 늘어가지만 고독함도 두려움도 함께 짙어지는 까닭은 그 선택의 순간과 가짓수가 늘어가기만 하기 때문이겠다. 이른 바 시간 강사로 서울과 동해바다를 넘나들며 밀려오는 밥벌이의 고단함, 글을 계속 쓰고 낙방하는 반복이 주는 지독한 회의감. 그는 그 두텁고 흐릿한 감정을 묵묵히 뚫고 간다. '악' 하고 소리라도 지를 법한 시간들이었겠지만, 그는 강의 첫 시간부터 학생들에게 되려 이렇게 주문한다.
돈 텔, 벗 쇼. 말하지 말고 보여줘라. 직접 들이밀지 말고 간접적으로 넌지시.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소설이란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하지 않는 거예요. <중급 한국어>, 38p.
돈텔벗쇼. 모호했던 감정의 이름을 끝끝내 찾아 붙여주고 일기장에 방처럼 써 붙이고 나서야 그날을 소화하고, 하루를 닫고, 잠들 수 있었던 내게 새로운 장을 열어주는 열어주는 열쇳말이 되었다. 그의 첫 수업에서도 아마 나 같은 학생들이 앉아 있었으리라. 이어질 그의 글쓰기 수업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