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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혁이아빠 Apr 19. 2023

어머니는 꽃이 싫다고 하셨어

문지혁의 <중급 한국어>3

엄마는 꽃이 싫다고 했다. (중략) 근데 그게 꽃이랑 무슨 상관이냐고? 상관 있지. 학교 가는 길에 부자 동네가 있었어. 우리 집은 다 쓰러져 가는 옛날 한옥인데 거기는 새로 지은 양옥주택이야. 걷다가 쳐다보면 그 발코니 같은 데 있잖아. 항상 꽃이 피어 있어. 환하게, 울긋불긋하게. 그게 얼마나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줄 아니? 저 집에서는 꽃도 저렇게 싱싱하게 자기 색깔을 내는데, 나는......

<중급 한국어> 70p. 3장 유년 중

꽃이 싫다. <중급 한국어>의 주인공 지혁의 어머니의 일갈이다. 그 이유를 듣자하니 더 슬프다. 미처 가리지 못한 가난의 무채색이 더 돋보이니까.

내가 아는 어떤 이도 생일이면 아깝게 꽃 사지 말고 돈을 달라 했다. 꽃은 어떤 교환가치 없이, 심지어 기능도 없이 순수하게 사치같아서. 돈이 아깝다고 했다. 당시엔 돈으로 환산되는 모든 것의 절대적 궁핍 아래서 자랐던 그녀의 어린 시절을, 내가 그런 궁핍을 모르고 자라게 해 준 그녀의 기여를 부정할 수 없어서 실제로 그녀에게 꽃을 선물하지 못했다. 하지만 요즘 드는 생각은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어서는 안되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30년쯤 잡고 있던 드라이기를 놓자마자 지점토 공예를 시작했는데, 하필 제일 처음 만든 것이 해바라기 모양 시계였다. 주위의 지인들이 지점토 해바라기 시계를 하나씩 다 갖게 되자 그녀는 베란다에 분재를 들이기 시작했다. 꽃을 틔우는 그 짧은 시기를 몇년을 기다렸다. 이사를 가면서 베란다를 잃기 전까지. 당시엔 지점토나 분재 가꾸기가 중산층 여성 취미의 상징이기도 했기에, 난 그저 그것이 그녀의 한풀이이려니 했다. 물론 '꽃=잉여'라는 공식도 여전히 믿고 있었다.

사실 꽃은 식물의 성기다. 그 짧은 시간 화려하게 피어나 향을 뿜어내어 꽃과 나비를 꾀어내지 않으면 재생산에 실패하고 만다. 대를 이으려는 유전자의 절체절명의 몸부림인 것이다. 그 절박함에서 잉여와 사치만을 읽었던 내 생각이 바뀐 건, 결혼 전 그녀와 함께 살던 마지막 해 어느 봄. 간만에 정시퇴근해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아파트 조경을 감상하며 산책하던 중이었다. 꽃을 골똘하게 바라보며 걸음을 떼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자신이 꽃피워 맺은 열매를 떠나보내며, 그제사 느껴진 눈가의 텅빈 자리에 꽃을 채워넣고 있었다. 꽃은 안간힘이었다.

올해는 꽃이 특별히 슬프다. 꽃은 피었으되 벌과 나비가 없어 모란이 아닌가 싶지만, 실은 기후변화로 인해 드물다. 짝을 짓지 못한 채 수그러든 꽃들이 많을 터이다. 떨어지는 꽃잎들이 절규에 가깝다고 느껴지는 만큼, 꽃동산에 올라 벌과 나비가 깨어나기까지 조금만 더 버티라고 응원하고 싶었다.  



<중급 한국어>에서 지혁의 어머니도, 사실은 기다린다. 매년 반복해서. 꽃을.

엄마는 그 후 매년 생일 때가 되면 나에게 반복해서 말했다.

- 그 때 꽃 사다 주던 지혁이는 어디로 갔을까?

<중급 한국어> 7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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