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하루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돌아보자. 좀 어렵게 말해서, 돈이 나오고 쌀이 나오게 하는 행위가 노동이라면, 그 노동력이 계속 원활하게 제공될 수 있게 돕는 행위는 노동의 재생산이다. 재생산. 예전의 내 머릿속 재생산이란 이런 거였다. 먹고, 자고, 싸고, 씻고. 아차, 가족과의 유대를 도모하고(소박맞지 않은 게 다행이다).
예전엔 가급적 재생산에 투여하는 시간을 아끼고 줄여 노동에 재투입 시키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러다 인생에 세게 한 대 얻어맞고 생각을 바꾸었다. 좀 급진적으로, 정반대로. 어떻게든 노동에 투입되는 시간을 줄이고 매일매일 나를 재생산하는 시간에 정성을 들여야 한다.
잘 먹고 자고 싸는 자체가 목표가 되니 운동이 그 목표 달성에 필요한 필수 재생산 노동이었다. 운동한다고 돈이 나오고 쌀이 나오는 것은 아니어서 그간 쉽사리 생략하고 말았던 것이 뼈아프지 않았는가. 그래서 지금도 운동을 몸서리치도록 싫어하지만 거르진 않는다.
책 이야기를 하려다 도입이 길었다. 책을 읽는 행위에 어떤 의미를 갖다 붙여야 내가 받아들일까 요즘 골똘히 고민했었다. 돈이 나오고 쌀이 나오지 않는데, 노동 외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입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머릿속에서 뭔가 명분을 요구했다. 그러다 오늘 운동하고 돌아와 삶은 달걀을 먹으며 동시에 책을 펴다가 깨달았다. 이것은 운동과 먹는 것과 동급의 재생산 활동이구나.
마음이 얹힌 거라고 책을 써놓고도 모르고 있었네. 쓸개 빠진 놈이 소화를 잘 시키기 위해서는 걸어야 하듯, 쓸개 빠진 놈이 얹히지 않기 위해서는 정량을 읽어줘야 하는 것이었다. 읽기는 재생산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