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직장에서 가까운 도서관으로 간다. 민트색 표지의 <마음이 얹힌 거야>가 신간 코너에 꽂혀있다. 부끄럽지만 내가 연초에 구매를 신청했었기에 그게 도착한 줄 알았더니 지인이 신청한 것이었다. 감사한 그 지인은 이미 전주를 떠나고 없다.
헌데 들여다볼 엄두가 나질 않는다. 저 책을 묶을 때만 해도 쓰는 것이 즐거웠고 날마다 신선했건만, 요즘은 무언가 쓰기 전 매일 링에 오르는 기분이다. <중급 한국어>에 나오는 표현에 의하면 소위 그냥 '책 낸 사람'(등단하지 않은 작가)인 나도 이런 기분인데, 정상에 이미 한번 올라 의무방어전을 치러야 하는 작가들의 부담은 대체 어떨까. 왜 매일에 집착하냐고? 이게 쓸수록 솜씨가 날카롭게 벼려지는 것을 바라 그러는 것은 아니다. 그냥, 끼니와 달라서 한번 안 하기 시작하면 계속 안 하게 되거든. 그래서 하는 거다.
먹이고 놀아주고 치우고 재우는 하루. 그렇게 되풀이로 감각되는 하루를 글 쓰는 이도 느낀다. 비로소 내가 여기에 와 있구나 실감이 든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첫 책을 쓰고 두 번째 책을 써보려 끙끙대는 '책 낸 사람'. 문지혁 작가님이 베이스캠프에 남기고 간 흔적 같다. 내가 여기 머물던 흔적을 남기고 가니, 너도 여기까지 왔다면 이 낙서를 보게 될 거라고.
하지만 반복되는 되풀이에 낙담하다가도 설렌다. 그의 글쓰기 강의 덕분에 내 일기에 하나씩 이름을 붙일 수 있었음을 상기해 본다. 그냥 뭉뜽그려 쓰는 'diary' 말고, 초점이 맞춰진 '무엇에 관한 일기'를 써보라는 문지혁 작가님의 권고 덕에, 내 일기는 식단 일기, 단상, 독서일기 등등 '무엇에 관한 일기'로 분화해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하나 추가해 본다. '기후 일기' 방향은 아직 모르겠다. 언제나 그랬듯, 일단 결심부터 하고 쓰면서 종잡아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