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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혁이아빠 Jun 04. 2023

무명의 존재가 보여주는 단단하고 황량한 얼굴

얍삽하지 않은 사람,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

이 사람을 보라. 영웅도 민초(民草)도 아닌 딸깍발이 같은 이 재미없는 대학교수를. 사실 나도 그래서 봤다. 자꾸 사람들이, 심지어 알고리즘과 인공지능까지 읽어 보라길래. 작가의 사후 50년이 지나 차트 역주행한 소설이라느니. 며칠간 여운이 가시질 않았다는 상찬까지 붙어 다니길래. 남들 다 읽었다는데 안 읽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건 부끄러워하는 성격이기도 하니까.

그래도 베스트셀러라면 또 덮어놓고 의심하는 비주류답게 읽기 전에 좀 찾아보니, 감성의 미사여구를 걷어내면 '평범한 주인공의 소박한 실패담'이라 오늘에 와서 공감을 얻지 않았나 하는 평가가 주류였다. 어라, 좀 망설여지는데. 그래도 평범한데 어딘가 비범하니까 이야기가 되었겠지? 그런데 어디가 비범하다는 건지 당최 누가 써놓질 않았다. 그냥 출판사는 '우리는 누구나 스토너'라고 딱 써놨다. 하, '우리는 누구나 ***', '우리는 모두 뫼르소 아닙니꽈' 류의 공감 강제 마케팅도, 독후감도  싫어하는데. 읽으라는 이도, 읽지 말라는 이도 없는 이 책을 두고 한참 망설였다. 결국 읽어봤다고 말하고 싶은 허영이 이겼다.

난 그저 이 책에 대한 기록을 이렇게 시작하고 싶다.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는 '얍삽하지 않은 사람이다.' 이 말은 기존의 평가들을 의문에 부쳐보고 싶다는 말이다. 매운맛이 범람하는 시대에 보기 드문 순한 맛 소설이라서? 아니다. 모두가 성공을 좇는 시대에 평범해도 좋고 실패해도 좋다고 힐링해줘서도 아니다. 하긴 기존 아메리칸 드림의 스케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살짝 작아보일 뿐, 소설 속 스토너는 미국 미주리 주립대학의 종신교수로 살았다. 평생을 강단에 서다 정년 즈음하여 암으로 죽었다. 그 삶을 어떻게 실패로 읽는지 원. 대체 얼마나 어마어마하게 대단해야 성공한 삶인 것인가? 사실 스토너의 삶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어지간한 삶은 우습게 보는 대한민국의 잣대부터 의문에 부쳐야 하지 않겠는가 싶다.

삶의 곡절마다 그가 내린 선택의 맥락을 보자. 1차대전, 2차대전에서 그는 징병에 응하지 않았다. 전쟁에서 영웅이 되거나 생의 지평을 넓히려는 욕심도 낼 법했지만, 그는 문학도로서 생이 짓밟히는 무의미 앞에 몸서리치는 스승을 따랐고, 비겁자라는 오명은 감수했다. 결혼생활, 히스테리 증세가 심해지는 아내, 도망치고 싶을 법도 했지만 자신의 선택이었기에 끝까지 져버리지 않았다. 대학 내 강사 캐서린과 진실한 사랑도 했지만, 형식은 바람이었고, 결국 그 강사가 학교를 떠났다. 지금의 기준으론 아쉬움이 많은 대목이나, 본인도 손절하거나 비난을 회피하지는 않았다. 교육철학도 분명했다. 자료조사 없이 임기응변으로만 세미나에 임하는 학생에게 낙제점을 주는 일로 평생 학과장과 원수가 되어 저학년 교양과목만 맡게 되는 오욕을 당하지만, 타협하지 않고 역시 감수한다. 유일한 딸자식 원치 않는 임신에 알콜중독자 되지 않았냐고? 자식농사 망하지 않았냐고? 손주 잘 크고 있다. 되려 달라는 술 줘가면서 죽기 전에 못다 했던 대화에 성공한다. 묵은 감정 다 풀고 가더라.

우직한 그를 답답하다 느끼면서도, 그 순간 그와 눈을 마주친다면 먼저 피하지 않을 자신은 없다. 그는 아마 무표정하고 황량한 얼굴을 가졌을 것이기에. 그가 무명의 선조로부터 대대로 물려받은 유산처럼. 답답하면서도 쫄리는 나의 감정은 거기서 시작되지 싶다. 상황에 따른 처세의 변화가 없어서다. 그런 류의 인간은 선택의 순간마다 손익을 따지거나 게임이론에 따른 전략을 구상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럿을 낳아 장남에게 기회와 자원을 올인하고 나머지와 여성이 희생했다. 영웅과 희생의 서사가 공존했다. 그리고 그다음 세대는 둘만 낳아, 혹은 하나만 낳아 안전한 정답을 찾거나 약삭빠르게 경쟁하고 변화에 올라타고, 남보다 앞서 잘 먹고 잘 살았다. 실패해선 안되었고 손해 보면 억울했다. 얍삽이 시대정신이었다. 인구구조상 어쩔 수 없지 않았냐고? 참고로 소설 속 스토너는 외동아들이다.

이런 정통파의 인간형을 현실에서 자주 마주치진 못할 듯 싶으니 소설로 섭취할 수밖에 없을까. 양손에 가득 쥐어놓고도 마저 갖지 못한 것이 아쉬워 미련이 남을 때, 단단하고 황량한 무표정한 얼굴의 스토너를 떠올려 볼 일이다. '넌 삶에 무엇을 기대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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