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 없어 즐거운 무명의 블로거인 나도 글 하나 쓰면 굴비 반찬 다루듯 블로그, 브런치, 심지어 인스타와 페이스북에도 올린다. 물론 기본은 복붙이지만 오타도 손보고 혹시나 보실 분들 고려해가며 조금씩 고치다 보면 무엇이 진본인지 모르게 된다. 그럴 필요도 없겠지만. 그런데 셰익스피어의 작품도 그랬다네. 쪽대본이 난무했을 글로브 극장에서 반응 좋았던 애드리브에 두운과 각운을 맞추면서 더해지고 빠지고. 영어사전의 경계가 된 그의 텍스트도 그렇게 만들어졌단다. 가짜가 모여 만든 진짜.
얼마 전 변리사를 하는 친구를 만나 사는 이야기를 나누다 chat GPT가 쓰는 글에 저작권 소송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냐고 물었더니 금시초문이란다. 그땐 문제 삼으면 돈 벌 기회가 되지 않겠냐고 한번 알아보라고 했는데, <중급 한국어>를 읽다가 이 대목을 접하고 나니 생각이 좀 더 복잡해진다. 어라? GPT가 만들어 내는 게 딱 그거 아냐? 가짜를 모아 만든 진짜?가짜? 아니지. 진짜를 모아 만든 가짜?
인공지능 관련 뉴스 따라가기는 진즉 포기했지만, 이른바 튜링 테스트로 이야기의 저자가 인공지능인지 사람인지를 걸러내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는 소식 정도는 알아들었다. 여기에도 가짜와 진짜의 경계가 없어졌다는 말을 붙일 수 있으려나. 그리고 인공지능이 영혼 없이 확률로 단어를 조합하는 데 출처를 밝히지도 않고 밝힐 방법도 없단다. 이로 인해 가짜와 진짜를 가리기 어려워진 측면도 있겠다. 물론 둘은 좀 다른 말이다. 전자는 순수 인간의 창작물인지의 여부이고, 후자는 사실이냐 거짓이냐의 영역. 그렇지만 두 속성이 합쳐져 작가라는 직업군의 기반을 무너뜨릴 가능성을 품고 있다. 남이 힘들여 쓴 이야기를 대가 없이(?) 가져다가 섞고 흔든 뒤 그럴듯하게 마구 찍어낼 테니까.
작가는, 아니 인간은 대체 어디에 자리를 잡아야 할까. 가짜 뉴스와 팩트의 대결만 갈수록 날이 서는 것을 보아하니 관심은 진짜와 가짜의 감별에 가 있는 듯하다. 하지만 <중급 한국어>가 말하고 있는 '가짜들이 모여 진짜가 되는 과정'을 읽고 나니, 우리의 자리가 가짜에 포위된 채 점점 좁아지는 진짜의 성채만은 아니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