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한 세대 전에 경험한 민족상잔의 역사를 직면하기 좀 부담스러웠던 탓일까. 현충일이 늘 좀 부담스러웠는데, 이번엔 좀 덜 부담스럽게 천년 전 먼 옛날로 우회했다. 그때의 아우성 위엔 두터운 흙이 덮이고 개망초가 무념하게 피어 있었다.
우연찮게 업무 겸 겸사겸사 어제 전주 동고산성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전주시에서 힘주어 밀고 있는 곳이다. 견훤이 품었던 새로운 나라의 뜻이 펼쳐졌던 땅. 불과 30여 년 호령했지만, 기개는 컸다. 동고산성 내에 있는 건물의 터를 발굴해 놓고 보니 종묘보다 크더란다. 길쭉한 모양을 보면 제의적 기능의 건축물일 가능성이 높다지만, 역으로 천년 전 전란 중에 완산주 산꼭대기까지 그가 동원할 수 있었던 물적 인적 자원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30여 년 치열한 공방이 오갔을 성터에 서서, 그 짧은 시간을 전하려고 천년을 건너 지금도 저 개망초 밑에서 기다리고 있는 존재들을 보니, 함께 간 아재들은 머리가 막 간지러운지 저마다 한마디씩 한다.
그래봐야 견훤 하면 자동으로 탤런트 서인석 씨가 떠오르고, 그 상대역이었던 궁예 김영철 씨의 '누가 소리를 내었는가'가 떠오르는 수준. 함께 간 아재들끼리 빈약한 우리들의 스토리를 아쉬워했다. 지금은 허허벌판이지만, 천년 전 이곳에서 분명 엄청난 꿈과 꿈이, 힘과 힘이 부딪고 있었는데 우린 너무 모른다.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잘 모르고 있는 동학을 비롯, 견훤의 꿈, 잠깐 존재했다 사라진 나라들의 이야기. 반역의 계보. 서양보다 100년 앞서 공화정을 꿈꾸었던 정여립 등 수많은 이야깃거리들이 전라도에 숨 쉬고 있다. 아니, 잠자고 있다. 내가 타고난 이야기꾼이 못 되는 것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