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내내 배움의 시간이었다. 아침에는 집에 있는 고수에게 한 수 배웠다. 바둑고수 혁이. 이미 애비 정도는 몇 점 깔아주고 시작할지 고민한다. 애비에게 바둑 배우기 시작한게 엊그제 같은데, 점점 어이없다가 약오르다가 열받다가 이제 아들에게 정중하게 예를 갖춘다. 처참하게 깨져가며 배운다. 오늘도 잘 배웠습니다.
전주에서 만난 나의 성악 은사님이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근처 살아서 소싯적 자주 놀던 이종사촌동생이 심심해 하길래 알까기와 장기를 가르쳐주고 놀았는데, 어쩌다 바둑의 기초를 가르쳤더니 흠뻑 빠져들더란다. 동네바둑 학원을 나가기 시작하더니만 순식간에 자기가 놀아줄 수 없게 되고, 내친 김에 서울로 가더란다.
그 동생의 이름은 이창호다. 어쨋든 자기는 바둑둘 줄 모르는 사람이지만, 그를 바둑에 입문하게 한 것은 자기라고 힘주어 말한다. 참, 오늘 그 은사님이 원포인트 레슨 나오라고 했는듸.
오후에는 성악고수가 전주에 방문한다기에 가서 배움을 청한다. 마스터 클래스. 이번 주말 전주에서 있을 마지막 발표회를 앞두고 실력을 점검해 본다. 역시 고수의 향기는 다르다. 깐깐한 수업을 예상했건만 너무 친절하고 너무 시원하다.
배워서 뭣에 써먹으려고 하는 것까지는 생각 못해봤다. 그냥 자기만족이다. 어떤 것을 연마하여 많은 시간을 응축한 사람이 막강한 위치에너지를 내려보내는 것을 받아들이며 샤워하는 느낌. 권하고 싶다. 나도 다른 분야에서 누군가를 가르치기도 하는데,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다보면 나란 사람의 쓸모도 느껴지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