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의 겨울잠 기능이라도 있는 것처럼 요즘 수산물을 미리 먹어두느라 난리다. 며칠 전 기사에서 보았던 마을 주민간 소금 도난사건을 상기했다. 몇 주 전만 해도 마트에서 서로 쉬쉬하며 미리미리 소금 쟁여둬야 하지 않겠냐며 덕담하고 사양하던 풍경이었는데.
아침뉴스를 듣는 사내는 이제 좀 지겹다. 인간은 핵이 유출된 환경을 장기간 살아본 적이 없는데 거기에 문제가 없다고 하는 것은 믿음이고 신앙이다. 증거가 나오면 언제든 부정될 수 있다고 전제하는 한에서 그것이 과학인 법.
하지만 그렇다고 근거 없는 공포에 흔들리지도 말아야겠고, 무엇보다 오늘은 생선을 좀 먹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다른 대안이 딱히 없기도 하거니와, 남이 사는 밥이니까. 해양생태계가 그렇게 쉽사리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신앙'은 있으니까. 깊고 드넓은 것만 믿고 호모사피엔스가 바닷속으로 퍼부은 것들을 생각하면 바다의 되새김질이 두렵긴 하지만, 그것이 원데이 투데이의 일인가 말이다.
점심시간, 사내는 입장하는 생선들을 바라보며 측은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먹거리가 풍부하던 튀르키예 어느 지방을 여행하며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터키 사람들은 다리 없는 것들은 굳이 찾아먹질 않는다고. 다리 달린 것들도 사방 천지인데, 굳이 어렵게 잡으러 다닐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거긴 혹시 내륙 아니었냐고? 참고로 해안지방이었다. 이제 이 생선녀석들도 외면당하겠지. 한때 어려운 주머니 사정 따라 고갈비라 불리며 육것 대접도 받았고, 오메가 6와 불포화지방산이 많아 건강에 좋다며 환대도 받았지만. 누가 찾겠는가 말이다. 개체 수가 모자라 메뚜기를 먹지 않는 것이 아니듯.
아니지, 사실 측은한 마음은 거기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물고기 입장도 좀 생각해보라. 식인종들이 사라진다는데, 이제 천수를 누린다는데 그들 입장에서야 복음 아닌가. 고기 낚는 어부들이 사라지고 이제 생선 안 먹겠다는데 더 좋은 것 아니겠어? 그런데 이게 뭐야. 자기 터전에 알 수 없는 물질들을 품고 있는 뜨거운 물들이 솟구쳐 나온다니. 새로운 핵연료 온천이 개발된 것이다.
대체 누가 허가를 내주었는가. 도롱뇽도, 검은머리물떼새도 다시 일어서라. 물고기의 원고적격을 인정하라. (우리나라에서는 천성산 도롱뇽과 군산화력 검은머리물떼새의 원고적격을 칼같이 거부해서 소가 각하되었지만, 미국에서는 시민단체 등이 자연물과 공동원고가 된 경우 인용된 사례가 일부 있단다. 직접 확인은 못 했고 어디서 봤다.). 물고기와 연대하여 핵연료 온천 허가 무효 소송을 제기하자.
이런 생각을 하며 사내는 가시를 살뜰하게 발라가며 점심 식사를 잘 마쳤다. 식후 커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