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
일정 하나만으로도 벅찬 하루였다. 집에 들어오기 무섭게 TV 앞에 앉았다. TV를 켜면 무료영화가 나를 찾아와 홍보하는 시대. '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 무려 뤽 베송이 감독한 영화다. 집중할 여력도 없는데 마침 잘 되었다 싶었다. 미간 찌푸려가며 생각할 필요 없이 화려한 액션들의 향연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겠지.
영화는 지금 우리가 아는 우주정거장에 입주하는 국가가 하나씩 추가되다가 외계의 생명체들까지 가세해 진정한 의미의 코스모폴리탄 도시로 성장해버린 28세기의 우주정거장에서 시작한다. 집약적인 공간에서 각 종족의 대표선수들과 그들의 지식이 모여 시너지를 일으켜 문명을 더욱 고도로 발전시켜가는 공존공영의 파라다이스! 여기서 누가 봐도 주인공이라고 여겨지는 능력출중한 미남미녀가 모종의 미션을 수행하다가 비밀을 발견하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대략의 서사 틀거리다.
비밀이 펼쳐지는 공간은 영화 '아바타'의 오마주 같다. 반짝이고 지나치게 아름답고 평화로운 행성 뮐. 핵에너지보다 더 우월한 진주를 동력으로 삼고, 컨버터라는 귀여운 동물이 그 진주를 무한정 재생산하여 무한동력이 제공되는 곳이다. 지구의 호모 사피엔스들이 원주민이었다면 무한정 제공되는 동력을 독점하기 위한 투쟁이 끊이지 않았을 터. 그러나 심지어 뮐의 생명들은 지속가능성을 위해 남는 진주들을 다시 땅으로 돌려보내고 소수의 공동체를 이뤄 분쟁없이 살아가시는 깨인 분들이다.
지구인들에게는 이런 파라다이스가 있으면 부숴버리고 싶은 욕망이 내재되어 있는 것인지. 예상했던 대로 돈의 냄새를 맡고 찾아와 뮐 종족의 씨를 말리려 든다. 일단 작전상 후퇴. 그들은 방공호 캡슐을 타고 살아남아 코스모폴리탄 씨티, 우주정거장으로 몰래 망명한다. 쥐처럼 숨어 살며 권토중래를 도모하던 그들은 마침내 소중한 진주와 컨버터를 되찾고 다시 그들의 새로운 터전을 찾아 떠난다. 주인공 남녀 요원의 미션은 그 컨버터와 진주를 뺏어오는 것이었지만, 뮐 종족에게 탄복하여 오히려 그들의 탈출을 돕게 되고, 결국 모두가 예상할 수 있는 그 해피엔딩이 이어진다.
좀 뻔한 감이 있는 이야기의 전개 중에 내 눈길을 끈 것은 바로 우주정거장에 몰래 터잡은 뮐 행성 종족들을 인식하는 인간의 시선이다. 뮐 종족은 전자파 방해를 걸어놓아 자신의 존재를 남들이 인식하지 못하도록 숨긴다. 우주정거장의 군대를 총괄하는 지구인들은 뮐 종족이 터 잡은 공간을 우주정거장의 '암덩어리'로 인식하고, 그들을 파괴하고 멸절하기 위해 총공격을 감행한다.
암덩어리라니. 물론 자신의 행성에서 안분지족하는 뮐 종족은 악성 신생물과는 전혀 다른 특성을 가졌기에 그 비유가 부당한 것임은 물론이지만, 가뜩이나 정치인이나 언론인들이 '암덩어리'라느니, ’말기 암환자‘라느니 하는 비유를 할 때마다 바짝 날이서곤 했던 터라 표현 자체가 너무 거슬렸다.
지구인의 총공격은 비유하자면 표준치료의 항암 화학요법이나 방사선 치료를 닮았다. 영화에서야 총공격이 비난받아 마땅하고 그들과 함께 살아갈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당연해 보이지만, 내 몸을 치료하는 방법의 갈래 앞에 서면 선택이 쉽지 않다.
나는 총공격을 택했다. 현대의학의 방식으로 수술받았고, 항암 화학치료를 받고 있으며 그게 현재의 최선임을 믿는다. 하지만 요즘 자연치유 사례나 암을 극복한 이들의 에세이를 읽다보면, 암과 동행한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현대의학의 치료 방법은 자신 내면의 치유력을 무너뜨리고, 암의 내성을 강화시키거나 화만 더 돋우는 것으로 간주되곤 한다.
물론 앞으로 그럴 일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지만, 수많은 이들이 지금도 그 갈래 앞에서 선택을 강요받는다. 영화에선 선악의 구도가 분명하지만, 실제 암세포에게는 선과 악이 없다. 그저 부단히 살고 확장하기 위해 노력할 뿐인데, 그게 결국 자신의 숙주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는 사실을 모를 뿐이다. 달래야 할지, 박멸해야 할지. 참 어려운 선택임은 분명하다.
지금 내가 할 일들을 생각해 본다. 암세포가 거기 또아리를 틀고 살게 된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겠다. 내가 세포들이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을 주었기 때문이든, 유전자 자체가 취약하게 타고났든, 암으로 변화하여 폭주하기 시작한 것은 그 세포에게 어쩔 수 없었던 일이다.
그러니 미워하지 말고 우선 미안해야겠다. 수술 전후로는 간이 있던 자리를 만지며 한참을 사과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은 좀 뜸했지만, 결국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도 그런 것 아닐까. 그 세포들이 화를 거두기를, 내 사과를 받아주길. 나 이제 너한테 잘할게.
(2021. 5. 18.)